▲올해 우리 동네 첫 수선화 겨울 내 아무것도 없는 듯한 땅을 뚫고 나온 노란 수선화가, 올해도 마을을 밝힙니다.
이영민
다음 날 아침, 첫 수업을 위해 나서는 길에 여러 송이의 수선화가 고개를 들었다. 3월 마지막 주, 늦은 개강의 첫 수업 날에도 아직 겨울 기운이 남았다. 배정받은 교실은 오래된 낡은 건물이었다. 학생들을 기다리는 중에 밝은 건물 교실에서 수업할 수 있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풀어 놓은 짐을 다시 챙기려는데, 한 여학생이 옆에 와서 가방 드는 모습을 흉내 낸다. 아직 한국어는 한 마디도 못하지만 내미는 그 손길에 긴장이 녹는다.
열세 명 학생들의 생글거림과 긴장이 묘하게 섞여 교실을 채운다. 마른 침을 삼키고, 오늘이 '내 생애 첫 한국어 수업'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겠노라 다짐을 해 본다.
"안니용하세요!"
씩씩하게 인사를 잘한다. 화면에 처음 띄운 '이영민 선생님(ইয়ংমিন ম্যাডাম)'도 크게 잘 읽는다. 준비해 간 방글라데시 표기 덕분인 줄 알았더니, 절반 정도가 지난 3개월간 한국어 수업을 들은 학생들이었다. 인사만 겨우 할까 말까 할 거라는 사전 정보와 달리 "이름이 뭐예요", "저는 하산입니다", "저는 압둘라입니다" 줄줄이 인사를 한다.
방글라데시 학생 11명, 네팔 학생 2명. 오늘 내가 맡은 첫 학생들이다. 경력자(?) 사이에 섞여 생애 첫 한국어 수업을 듣는 대여섯 명의 학생들을 유심히 살폈는데, 다행히 표정이 밝고 눈빛이 반짝거린다. 열심히 발음을 적고 따라 하는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피부색만 다를 뿐, 캐릭터가 다 읽혔다. 사람 좋아하는 웃음으로 시종일관 호감을 전하는 학생, 초롱초롱 큰 눈으로 언제든 선생님을 도와주려 대기하는 학생,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손과 입이 바쁜 학생, 수줍게 참여하는 학생. 첫 수업에서 각자의 성격과 매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순수함이 고마웠다.
"아, 어, 오, 우, 으, 이."
오늘 수업의 주인공 모음 여섯 개를 듣고 따라 하고, 읽고 또 따라했다. 칠판 앞을 좌우로 열심히 오가며 목청을 높이는 선생님에게 학생들은 더 큰 목소리로 화답했다. '우리 선생님 애쓰시네, 도와드려야겠다'라는 마음이었을까. 초보 선생은 그렇게 학생들의 배려 속에 첫 수업을 무사히 마쳤다. 웃으며 교실을 나서는 학생들의 뒷모습을 보고서야 '휴' 마음이 놓인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야 서서히 차오르는 감격을 마주했다. 전업 주부로 십여 년을 보냈고, 다시 내 일을 찾고 싶었다. 사오년 동안 고민했고, 공부했고, 자격을 얻었다. 같은 맥락에서 독서 지도, 글쓰기도 공부했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없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어느 날, 불쑥 새 진로의 대가 올라왔다.
'아직 겨울같기도 하겠지만, 지금은 분명히 봄이야' 알려주며 노란 불을 밝히는 수선화처럼, 아직은 미미하지만 새로운 챕터를 여는 노란 빛이, 오늘 내 삶에도 피었다.
기다림은 늘 어렵다. 빨리 갖고 싶고, 빨리 이루고 싶고, 빨리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오십을 맞이한 지금도 똑같다. 다만 준비와 기다림 없이 맞이할 새로움은 없다는 분명한 사실 앞에서 겸손히 움직일 뿐이다. 그 시간 앞에서는 이전의 경험과 경력도 큰 힘이 되지 못했다. 처음의 마음으로 준비하고 시도하며, 그 불안과 긴장의 시간을 버텨야 했다.

▲우리 동네 수선화 청초하면서도 화사한 수선화는 어느새 주변으로 번져갑니다.
이영민
그렇게 시작 앞에 섰더니, 이젠 잘 해 내고 싶은 욕심이 자꾸 고개를 든다. 잠잠히, 지난 기다림의 시간을 뒤돌아본다. 그 시간은 '빨리, 내가 원하는 모습과 방식'에 쏠린 힘을 빼 주었다. 작더라도 얻은 기회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선물해 주었다. 그 마음을 계속 기억하고 싶다.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연 오늘, '저기 높은 산보다, 여기 오름직한 동산(소원, 한웅재 가사)'으로 충분하다는 마음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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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제자들... 방글라데시 학생 11명, 네팔 학생 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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