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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민학교의 마지막 인사입니다, 기억해주세요

4일 시행된 검정고시 시험을 끝으로 문 닫아... 10년 가르친 교사의 소회

등록 2026.04.06 15:20수정 2026.04.0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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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국 야학운동사

우리동리 야학선생 공장아저씨
몸이 아파 공장에는 못오시지만
매밤마다 야학에는 와주신다오
아프신 몸 더해지면 엇지할가요
몃츨동안 쉬시래도 말슴안들어
우리들도 할수업시 매밤 온다우
우리보며 벙글벙글 늘웃던 얼굴
지금에는 산한 얼굴 쓸쓸한 얼굴
매밤마다 바라보면 눈물진다우
- [중앙일보] 1932년 1월 4일 '야학선생님'. 김형목, <대한제국기 야학운동>에서 재인용

이 시는 1930년대 불린 동요인데, 2026년 현재 야학 교사로 있는 제가 지금 읽어도 공감이 됩니다. 몸이 아픈데도 야학에 오는 교사는 배우려는 학생들의 눈빛을 보면 힘이 나거든요. 야학에서는 교사와 학생이 서로를 가르치고 배우며 에너지를 채웁니다.


한국 야학 운동은 일제 강점기 애국 계몽 운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지식인과 종교계가 주도하여 '글을 알아야 나라를 찾는다'는 신념으로 운영되었습니다.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는 전쟁 직후 혼란 속에서 배움의 기회를 놓친 청소년들을 위해 기초 교육을 실시하여 공교육의 빈자리를 채웠습니다.

1970년대~1980년대에는 '공돌이', '공순이'라고 불리던 도시로 올라온 어린 노동자들이 대학생과 지식인이 만든 야학에서 단순 교육을 넘어 노동법, 사회학을 학습하였습니다. 1990년대에는 민주화가 진전되고 공교육이 보편화되면서 일반 시민과 소외 계층에게 학력 인정 검정 공시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야학은 학령기를 놓친 어르신들과 학교 밖 청소년들이 배움을 다시 시작하는 학교로 그 역할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수원시민학교의 역사

수원시민학교는 2013년 11월 1일에 개교한 시민을 위한 학교입니다. 수원시민학교는 제도권 교육에서 벗어나 배움의 기회를 놓친 청소년 및 시민들을 위해 무료로 배움을 나누는 비영리 민간단체입니다. 한글 문해교육부터 초중고 졸업 학력 취득을 위한 검정고시 과정을 교육합니다.

수원시민학교는 박무영 선생님이 기탁하신 명예퇴직금을 바탕으로 설립되어, '배움에 대한 모든 것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학교 운영비는 11명의 이사진과 전현직 교사, 시민들의 자발적 후원금으로 충당합니다.


'자신이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이 시민 의식의 첫걸음'이라는 교육 철학 아래, 무료로 배운 학생이 다시 돌아와 시민교사로 봉사하는 '배움과 나눔과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구현하는 학교입니다. 개교 후 10년 간 검정고시 합격자 227명을 배출하였고, 졸업생은 학교로 다시 돌아와 시민교사로 활동하거나 사회 각지에서 이전과 다른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수원시민학교 졸업식 사진 수원시민학교 교무실에 전시된 졸업식 사진들입니다.
▲수원시민학교 졸업식 사진 수원시민학교 교무실에 전시된 졸업식 사진들입니다. 정태윤

그러나 13년이 넘게 지켜온 우리학교는 2026년 4월 4일 시행된 검정고시 시험을 끝으로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올해 1월 열린 이사회에서 수원시민학교의 현재를 냉정하게 판단하면서 '마지막'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하였습니다.


설립자이자 운영의 주체였던 박무영 선생님이 4년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 역할을 남은 사람들이 메우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영속할 수 있는 생명체는 없다'는 숙명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흔적

누군가가 기억할 수 있게 우리의 발자국을 남기고 싶습니다. 남긴 흔적을 보고 다음 사람이 따라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쓴 글 여러 편을 소개합니다. 먼저 탈북민으로 우리학교에 다닌 학생은 '내 고향은 이북입니다'라는 시를 썼습니다.

내가 태어난 곳은
너무 멀고 가볼 수도 없는
그런 곳
기억만으로도 많이 슬픈 곳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고향
아빠와 엄마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지만
언제 다시 만날지
보고 싶어요
아빠, 엄마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나의 아빠와 엄마의 웃는 모습
너무 보고 싶어요

70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릴 적 배울 수 없었던 상황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친구가 교복을 입고 지나갈 때 학교를 못간 나는, 친구들이 지나갈 때까지 뒤에 숨어있던 생각이 가끔 난다. 나의 30대는 결혼 생활의 고달픔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 가슴앓이를 하던 시절이다. 무시당하기 싫어 초등학교만 나온 것을 시집 식구에게 내색할 수가 없었다. 그로 인해 말을 하지 않는 곰처럼 사는 삶을 살게 되었다.

학교에 와서 배우는 설렘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배우고 싶었던 공부였기에 내가 학문적인 용어들을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으면서 설레고 행복했습니다.

난생처음 글이란 걸 써보려고 합니다. 요즘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을 말하고 나니 홀가분한 마음이 듭니다. 늦은 공부를 하는 것이 부끄럽고 창피했거든요. 가슴에 담고 있던 것을 털어놓으니 자신감이 생겼어요. 앞으로도 이 마음 변하지 않게 노력하고 살려고 합니다.

중학교 2년을 중퇴하고 처음으로 학교에 오는 것이 너무나 설레였다. 4층까지 올라오는 것이 고되었지만 꾹 참고 매일 아픈 다리를 끌고 온다. 만학도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고 흰머리 선생님들이 열강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수원시민학교는 학생들에게 용기를 주는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공부 못한 게 죄는 아닌데 왜 그렇게 부끄럽고 움추리고 살았던지. 누구에게도 부탁하지 못하고 서투른 솜씨로 네이버에 검색을 하다 수원시민학교를 찾았습니다. 그럼에도 1년을 망설이다 학교에 왔습니다. 우리 학교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한다면 공부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주는 학교라고 말하고 싶어요.
학교 졸업장을 받아본 경험이 없는 제가 초등학교 검정고시 합격증과 수원시민학교에서 수여해주신 졸업장을 받으며 '무학자'라는 꼬리표를 떼어내었습니다. 지금도 선배 언니들과 마음을 주고 받으며 소소한 나눔을 하면서 공부를 하고 있어 학교를 오면 언제나 마음이 따뜻합니다.

이제 수원시민학교의 시계는 2026년 4월 4일, 마지막 검정고시 종소리와 함께 멈춥니다. 박무영 선생님의 숭고한 기탁으로 시작된 이 기적 같은 13년의 여정은 여기서 일단락되지만, 우리가 나눈 온기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수원시민학교 교실 수원시민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 어르신들의 모습입니다.
▲수원시민학교 교실 수원시민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 어르신들의 모습입니다. 정태윤
"무학자라는 꼬리표를 떼어냈다"던 어느 학생의 고백처럼, 이곳에서 얻은 자신감은 이제 각자의 삶 속에서 새로운 문장이 되어 쓰일 것입니다. 학교라는 울타리는 허물어지더라도,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함께 공부했던 그 뜨거운 시간은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꺼지지 않는 등불'로 남을 것입니다.

수원시민학교라는 이름으로 함께했던 모든 순간이 감동이었습니다. 비록 오늘 우리는 각자의 길로 흩어지지만, 배움 앞에 당당해진 여러분의 눈빛은 앞으로도 세상을 밝히는 가장 아름다운 별이 될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 고맙습니다.
#야학 #수원시민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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