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진 결혼 13주년을 맞아 강순희, 우홍선이 자녀들과 가족사진을 찍었다.
도서출판 은빛
강순희 여사가 비극에 맞선 방식은 눈물이 아니었다. 그녀는 면회를 갈 때 일부러 가장 좋은 옷을 입고 하이힐을 신었다. "이들이 사람 무시하니까 난 오히려 더 단단해야겠다"는 의지는 어린 시절 부당한 대우에 교장 선생님 앞에서도 기를 꺾지 않았던 어린 강순희의 인간적 줏대에서 나왔다.
그녀는 직접 도서관을 뒤지며 남편의 무죄를 입증할 근거를 찾아낸 전략가였고, 진실을 외면하는 기자들을 꾸짖던 투사였다. 강순희 여사의 90년 인생이 비극을 넘어 사랑의 역사로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곁을 지켰던 수많은 일상적 연대 덕분이다.
조지 오글 목사, 프라이스 신부, 지정환 신부 등 이방인의 눈으로 한국의 비극을 목격했던 종교인들의 헌신은 거창한 이념보다 강력했다. 이런 끈질긴 마음들이 모여 결국 사형 집행 32년 만에 재심 무죄 판결이라는 기적을 일궈낸 것이다.
'오늘의 강순희를 나는 철학자로 여긴다. 인생과 세상사에 대한 세부 정보를 거듭거듭 잃으면서도 삶의 큰 원칙은 더 확고하게 다져 나가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철학자 말고 어떤 단어를 쓰겠는가.…나도 아흔세 살까지 산다면 '아흔세 살의 강순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18시간의 사법살인은 한 가족의 삶을 파괴하려 했지만, 끝내 강순희 여사의 삶까지 훼손하지는 못했다.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라는 그녀의 고백은 가해자가 강요한 피해자라는 틀을 거부하고, 스스로 자기 삶을 '행복'이라고 정의 내린 위대한 승전보이다.
그녀에게 행복이란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주어진 운명을 피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극복해낸 자만이 누리는 자부심이다. 구십 평생을 관통하는 그녀의 역사가 나에게 물었다. 거대한 악 앞에서 증오를 선택할 것인가, 사랑을 선택할 것인가.
비극을 넘어 사랑으로 완성된 이 기록은, 고통스러운 삶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고민할 많은 이들에게 이정표가 될 것이다.
유시민: 사람들이 우 선생님과 인혁당 사건을 어떻게 알고 기억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십니까?
강순희: '몸은 비록 죽었으나 혁명정신 살아있다.' 이런 노래 가사가 있어요. 이북에서 학교 다닐 때 배웠어요.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 투사들이 불렀던 노래라는데, 이 노래처럼 그 사람들 몸은 죽었지만 꿈은 살아있어요. 그걸 기억해 주면 좋겠어요.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 강순희 말하고 유시민 듣다
유시민, 김세라 (지은이),
은빛,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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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고 난 다음에는 살릴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읽어도 절박한 호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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