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보조기 어깨 탈구 치료 후 팔걸이를 하고 있는 모습
정일국
지난 겨울 밤, 길을 걷다 넘어졌다. 대수롭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오른팔을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동네 A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으니, 의사가 말했다. "큰 병원으로 가보셔야겠습니다." 어깨 탈구였다.
소개받은 B 병원에 도착했지만, 오전 진료는 이미 끝나 있었다. 통증을 참으며 몇 시간을 기다려 외래진료를 받았지만, 의사는 어깨를 여러 차례 맞추려 시도하다 실패했다. 그리고 말했다.
"전신마취가 가능한 대학병원으로 가셔야 합니다."
진료의뢰서가 내 왼손에 쥐어졌다.
정형외과 의사가 없습니다
택시에 타고 C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그런데 창구 직원이 말했다.
"지금 정형외과 당직 의사가 없어서 치료가 어렵습니다. 119 불러서 다른 병원으로 가보세요."
오른쪽 어깨가 빠져 꼼짝도 못 하는 환자에게, 응급실에서 나가라는 말이었다. 몸의 통증보다 그 말이 더 아팠다. 나는 간신히 왼손으로 B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사는 여러 곳을 수소문한 끝에 말해주었다.
"D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보세요. 미리 연락해 두었습니다."
그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제 손맛이 다르면 끼워질 수도 있습니다"
D 대학 병원 응급실 담당 의사는 진통제를 놓으며 농담처럼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빠졌던 어깨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전신마취 없이. 나는 그 순간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깊은 고마움을 느꼈다.
이후 MRI 검사에서 근육 손상이 심각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인공관절 수술까지 거론되었지만, 다른 병원에서 재 진료한 끝에 근육 봉합 수술로 결론을 내렸다. 수술 날짜를 잡고 나오는 길에 딸이 말했다.
"아빠, 일 년 벌었네요. 그동안 여행 많이 다니세요."
미안함과 고마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이번 일을 겪으며 나는 분명히 느꼈다. 한 명의 어깨 탈구 환자가 응급 처치를 받기 위해 응급실 세 곳을 돌아야 하는 현실은,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다. 당직 의사 공백, 병원 간 연계 부재, 홀로 남겨진 환자. 이것은 제도가 풀어야 할 숙제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이것도 느꼈다. 제도는 차가웠지만, 사람은 따뜻했다.
B 병원 상담사가 여러 곳에 연락해 길을 찾아주었고, D 병원 의사는 능숙한 손길로 내 어깨를 돌려놓았다. 히포크라테스는 떠났을지 모르지만, 그 정신을 지키는 사람들은 아직 우리 곁에 있었다.
그날 내 어깨를 맞춰준 그 의사의 손길을, 나는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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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임 후 KOICA해외봉사활동. 현재는 봉사활동경험과 배낭여행 강연가로 활동 중입니다. 77세의 나이에도 배낭을 메고 세상으로 나가는 '백발의 보헤미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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