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배터리 공장에서 고용노동부의 관리를 회피하려는 목적으로 납 노출이 높은 노동자에게 킬레이션 치료를 권장하고 검진 결과를 왜곡한 사례가 보고됐다.
킬레이션은 EDTA 등의 약물을 통해 중금속을 배출하는 치료로, 신장 손상 등 부작용 위험 때문에 만성 중독에서는 사용하지 않고, 급성 중독 시에만 제한적으로 시행된다. 특히 장기간 노출된 노동자의 경우 납의 90~95%가 뼈에 쌓여 있어, 혈중 납 농도는 작업환경과 건강 영향을 평가하는 척도로만 의미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행위는 사실상 검진 수치를 부적절하게 조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믿기 어려운 비윤리적 행위
작업환경 측정 기관, 특수건강진단 기관, 일부 의료진이 이러한 관행에 연루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전부터 일부 근거 없는 소문도 존재했으나, 이번 사건을 통해 일부 사실로 드러났다.
보고된 사례로는 회사가 작업환경과 직업병을 고용노동부에 들키지 않으려고 특수건강진단 대상자의 검체를 비노출자의 소변이나 혈액으로 바꾼다는 이야기, 작업환경 측정 결과가 좋게 나올 때까지 여러 차례 반복 측정, 공장이 쉬는 날 측정, 검진 기관의 2차 입력값을 수기로 수정, 설문지는 검진 영업팀이나 관리자가 대신 작성 등이다.
왜 이런 소문이 존재했을까? 그것은 노동자가 체감하는 현장의 위험과 서류상 '정상' 결과 사이의 괴리가 컸기 때문이다. 일부 불법과 편법이 있었음은 분명하며 이런 경험이 결국 우리의 안전장치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검진이나 측정을 수행하는 것만으로 제도를 충족할 수 있다. 현장을 평가하고 개선하며, 검진을 통해 질병을 예방하고 사후관리까지 연결될 수 있음에도, 단순 수행만으로는 회사에 불이익이 없다. 결과적으로 그 부담은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으로 이전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도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법에서 정한 최소한의 안전 장치라도, 제대로 작동하도록 개선하고 보완해 활용해야 한다.
일터건강을지키는직업환경의학과의사회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배터리 공장, 배터리 재생 공정, 비철금속 공장에서 납에 노출되는 근로자 사례를 정리했다. 배터리 공장, 배터리 재생 공정, 비철금속 공장에서 납에 노출되는 근로자 문제는 늘 존재해왔다. 혈중 납 농도가 높은 노동자들은 주로 보호구 착용이나 필요할 경우 업무 전환 등 개인적 관리에 의존하고 있었다.
일부 노동자들은 킬레이션 치료를 받아 혈중 납 수치를 일시적으로 낮추기도 했으나 뼈에 쌓여 있던 납이 다시 혈중으로 나오면서 큰 변화가 없다는 경험도 공유됐다. 고용노동부는 문제 해결에 강력히 나서지 않았지만, 환경부가 시정 명령을 강력히 발동한 사례에서는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이 실질적으로 개선된 사례도 있었다.
환경 관리와 실질적 개선
납 노출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환경 관리 조치를 강화해보았지만 단순히 청소를 자주 하는 정도로는 노출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고, 환기시설이나 집진 시설 등에 투자한 사례에서만 실질적인 개선이 확인됐다.
납 노출 유소견자나 요관찰자를 업무 전환하더라도 그 자리에 신입 노동자가 투입되면 그 사람의 혈중 납 수치가 다시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현장 개선 없이 사람만 바꾸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다.
또한 사무실 노동자의 혈중 납 수준이 높게 나온 사례도 있었는데, 이는 사무실이 작업장과 가까운 경우나 2차 오염으로 인해 옷과 신발 등을 제대로 분리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작업 현장 관리뿐 아니라 적절한 공간 분리와 위생 관리도 중요한 과제로 확인됐다.
집진 시설, 배기 시설, 환기 시설이 설치되어 있어도 용량과 유지 관리가 적절한지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검진과 측정 체계는 이러한 기술적 사후 관리와 제대로 연계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특수건강진단과 작업환경 측정이 별도로 이루어지는 경우, 의사들은 주로 검진 유소견자 개인에게 신장·혈압 등 건강 관리와 보호구 사용 중심으로 상담하지만, 특수건강진단 결과를 통해 작업환경 개선까지 연결할 수 있다면, 고용노동부와 연계해 현장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적극적인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 공감대가 형성됐다.
제도 개선 방향
그렇다면 앞으로 제도적으로 무엇을 해결해야 할까? 우선 사업주가 검진 결과와 작업환경 측정 결과를 왜곡하려는 시도는 반드시 공무집행방해 행위로 다뤄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인데, 이를 수치 조작으로 무력화하는 행위는 정당한 법 집행을 방해하는 것과 같다.
숫자만 바꿔서 넘어갈 일이라면 누가 현장을 개선하고, 시간과 자원을 들여 노동자의 건강을 관리하겠는가? 강력한 규제와 행정력이 현장을 바꾼다는 사실을 환경부가 이미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고용노동부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두 번째, 측정과 검진을 통해 위험을 정직하고 효과적으로 알려주는 기관을 사업장이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도록 보호해야 한다.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듯이 기업의 위험을 드러내는 기관은 신뢰할 만한 기관으로 보호해야 한다. 또한 한 기관이 사업장을 3~5년간 관리하면서 진짜로 개선하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시스템도 필요하지 않을까?
세 번째, 납 노출 기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생활환경에서 납 노출은 소아의 인지 기능과 성장 발달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고, 이에 따라 페인트에서 납이 사라지고 유연휘발유가 무연휘발유로 바뀌었다. 생활환경 속 납 노출 기준은 갈수록 엄격해져, 일반인의 평균 혈중 납 농도는 2μg/dL 미만(정상범위 10μg/dL 미만)로 관리된다.
그러나 특수건강진단 노동자의 유소견자(D1) 기준은 40μg/dL, 요관찰자(C1) 기준은 30μg/dL 이상이다. 즉, 작업환경 측정 기준이 생활환경 기준보다 약 100배 높기 때문에 노동자의 혈중 납 농도 기준도 비정상적으로 높게 설정되어 있는 셈이다.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현재 기준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관리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포기하면서 일자리를 유지하고, 이익을 보전하며, 감독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타협해온 한국 안전보건 업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검진 결과와 측정 결과만 깨끗하게 '세탁'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고용노동부의 관리 감독을 속이기도 하고 속아주기도 하면서 "우리는 안전하고 건강하다"라는 거짓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안전보건 방어막이 아니라 단순한 수치 기술자일 뿐이다.
주가조작만으로는 패가망신시킬 것이 아니라 검진 조작과 측정 결과 조작을 하는 사람도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는 곧 일하는 사람들을 죽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 모두 같이 망하지 않고 함께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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