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내가 쓴 글이 교과서에 실렸다, 나도 모르게

저자의 지적 소유권을 소홀히 하는 국내 저작권법 유감

등록 2026.04.08 11:19수정 2026.04.08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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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떠난 지도 벌써 10년이 되었다. 옛말로는 강산이 변할만한 세월이다. 교직에 있는 동안 세 권의 교육산문집을 냈다. <오마이뉴스>에 '안준철의 시와 아이들'이란 제목으로 연재해 온 교단일기 형태의 글이다. 글감이 있어야 글을 쓰는 건데 고맙게도(?) 아이들이 때를 맞추어 일을 저질러주곤 했었다.

첫 산문집인 <그 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우리교육. 2004년)에 수록된 글의 일부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화법과 언어, 천재교과서)에 실린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그것도 내게 메일을 보내온 저작권 관리업체 직원을 통해 말이다.

처음에는 자세한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직접 만나서 상세히 설명해 드리겠다고 해서 혹시 보이스피싱이 아닐까 하고 의심하기도 했다. 만약 내 글이 교과서에 실렸다면 당연히 교육부나 관련 단체에서 저자인 나에게 연락할 것이 아니냐는 물음에 그는 이런 답을 주었다.

"국내 저작권법상 교과서 등 교육목적으로 이용할 때에는 저작권자 별도의 허락없이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 에이전시가 작가님들께서 모르고 놓치시는 부분이 없도록 관리를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저희가 찾아뵙고 자세히 안내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리 교육목적이라도 해도 저자의 허락도 없이 책 내용의 일부를 교과서에 수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보이스피싱에 대한 의심도 완전히는 가시지 않아 교과서에 시가 실린 후배 시인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니 직원의 말이 맞았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의심은 풀렸고 담당 직원에게 사과의 메일을 보내기도 했지만 저자의 지적 소유권을 소홀이 하고 있는 현행 국내 저작권법에 대한 아쉬움은 남아 있다.

그건 그렇고. 세상에 내가 쓴 글이 교과서에 실리다니!


의심이 풀리자 교과서에 실린 내용이 궁금해졌다. 그가 사진을 찍어 보내온 내용을 확인해 보니 종호(가명) 이야기였다. 종호는 입학식부터 얼굴을 보이지 않더니 일주일 내내 결석을 했던 아이다. 입학원서에 있는 전화번호도 불통이어서 속수무책 날짜만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더벅머리에 사복 차림을 한 학생이 교무실로 들어섰다. 누군가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러자 그는 어눌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저, 자퇴원서 쓰러 왔는데요."
"혹시 네 이름이 종호 아니냐?"
"저 종호 맞는데요"
"그래? 내가 네 담임이다."
"아, 안녕하세요?"


이런 어색한 대화가 오고 가자 교무실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나는 그에게 의자를 권하며 자퇴를 하려는 까닭을 물었다. 종호는 학교를 다닐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교가 걱정할 것 같아서 자퇴원서를 쓰러 왔다가 했다. 그 말에 한 가닥 희망을 느낀 나는 종호에게 이렇게 말을 걸었다.

"넌 참 예의가 바르구나. 학교를 그만두려면 그냥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 될 텐데 일부러 자퇴원서를 내려고 찾아 오다니. 너처럼 예의 바르고 훌륭한 아이를 그만두게 할 순 없다."

종호 아버지는 집을 자주 비울 수밖에 없는 관광버스 기사였다. 어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정식으로 결혼하지는 않았지만 함께 살게 된 새엄마와 정이 들기까지 종호에게 집은 낯설기만 했다. 오히려 어두운 밤거리가 다정한 공간이었던 종호는 결국 가출을 한다.

가출한 지 한 달만에 집에 돌아와 보니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했다. 임대 계약 기간이 끝나 집을 비워주어야 했던 종호 아버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종호에게 그 일은 깊은 상처로 남았다. 교과서에 실린 이야기는 그 다음 상황이었다.

다음 글을 읽고, 자아 개념이 의사소통 방식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해 보자.

<대화상황> 종호는 아버지와 관계가 서먹해지자 가출을 하기 일쑤였고, 학교생활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이를 본 '나(선생님)은 종호와 만나 이야기를 하고 3일 동안만 학교에 나와 달라고 부탁한다.

그날은 종호와 약속한 마지막 날이었다. 동산 벤치에서 잠시 말없이 있다가 나는 종호에게 눈을 감아 보라고 했다.
"눈을 감으니까 아무것도 안 보이지?"
"…예."
"네가 없으면 세상도 없는 거야. 눈을 떠 봐. 세상이 다시 생겨났지?"
"예? 예."

"네가 눈을 감으면 세상이 없어지고 눈을 뜨면 다시 생기고 너 참 대단하다."
"아이, 그건 누구나 다 그렇잖아요."
"누구나 다? 그래. 누구나 다 그렇지. 사람은 누구나 다 대단한 거야."
"전 대단하지 않은데요."

"선생님한테도 아들이 있어. 어떤 사람이 천억을 줄 테니 아들을 달라고 하면 내가 줄까? 아니, 이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내 아들을 내어줄까? 네 생각은 어때?"
"안 주지요."
"그럼 너의 아빠는?"
"…아빠도요."
"그러니까 대단하다는 거야. 이 세상하고도 안 바꿀 만큼."

종호는 뭐라 대꾸하려다 말고 허공에 눈을 둔 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대화가 다시 이어졌다.
"종호야. 내가 보기에 넌 좋은 아이야."
"아닌데요."

"넌 학교에 다닐 의사도 없으면서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3일이나 학교에 나왔잖아. 내가 아는 아이들 가운데 너처럼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아이는 몇이나 될까? 내일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더라도 약속을 지켜준 것은 고맙게 생각할 거야."
"고마운 건 저지요. 제가 뭔데 이렇게 신경을 써주시고…"

종호는 속울음을 삼키는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었다.
"저 선생님....저도 학교를 다니고 싶은데 선생님을 실망시킬까 봐… 제게 너무 기대하지는 마세요."
그날 종호는 학교를 다니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안준철(그 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중에서

교과서에 실린 내용은 여기까지다. 그 후 종호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음은 종호 이야기가 나오는 꼭지 글(인간에 대한 예의) 끝 부분이다.

"졸업식 날, 내 책상에는 작은 선물 꾸러미와 편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애석하게도 그 편지와 내가 종호에게 준 생일 축하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지만 아이가 주었던 편지의 한 대목과 내가 써 주었던 시의 한 구절만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저는 믿어주신 분은 이 세상에 선생님 한 분이셨습니다.
선생님을 배반하는 것은 저를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넌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아는 아이였지.
나도 너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싶었단다.

나는 지금도 그때 일을 떠올리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리고 무엇인가에 놀란 사람처럼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한다. 만약 어떤 그릇된 선입견에 사로잡혀 종호를 대했다면 아이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아는 보석 같은 아이를 흙 속에 그대로 파묻어 두었다면. 그날 학교에 날아온 한 마리 새를 무심코 날려 보냈다면."

종호는 학교를 졸업하고 통 소식이 없다가 몇 년이 지나 나에게 전화를 했다.

"선생님, 저 종혼데요. 여기 산부인과입니다. 제 처가 막 아들을 낳았어요!"

그도 나이가 꽤 들었겠다. 조만간 손주를 보았다고 전화가 올지도 모르겠다.
#저작권법 #천재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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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톡톡 6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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