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섭지코지의 아름다운 길목, 성산일출봉과 마주하는 최적의 조망 지점에 자리 잡은 현대적인 건축물. 거친 해안선과 대비되는 인공의 벽이 못내 눈에 거슬린다.
전갑남
산책로를 따라 등대로 향하는 도중, 못내 아쉬운 장면과 마주한다. 시야를 가로막고 서 있는 건물 때문이다. 탁 트인 바다와 코뿔소를 닮은 성산의 장엄한 뷰를 가로막은 그 인공의 벽은 못내 눈에 거슬린다. 자연이 선물한 완벽한 화폭 위에 굳이 이런 건물이 들어서야 했을까. 하필 아름다운 길목에 건축물이 들어선 까닭이 무엇인지, 여행자의 시선에는 씁쓸한 물음표가 남는다.
그럼에도 붉은오름 정상에 오르면 하얀 '방두포등대'가 반긴다. 푸른 하늘과 대비되는 선명한 흰색 등대는 섭지코지 풍경을 완성하는 화룡점정이다. 등대 곁에 서면 섭지코지의 전경이 다시금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거친 해안선과 끝없는 수평선, 그리고 그 사이를 묵묵히 밝히는 등대는 길 잃은 배들뿐만 아니라 여행자의 흐트러진 마음까지 평온하게 비춰주는 듯하다.
생명이 머무는 길목, 먼 인연의 확인
섭지코지는 단순히 경치만 아름다운 곳이 아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성산포 벌판은 드물게나마 저어새가 머물다 가는 생태의 길목이다. 우리가 사는 강화도 갯벌에서 여름내 부지런히 먹이사냥을 하던 그 저어새들을, 이곳 제주에서도 마주할 수 있을까? 막연한 생각에 수평선을 바라본다.
대다수의 저어새가 더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났겠지만, 간혹 이곳 제주에 남아 겨울을 견디는 강인한 생명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강화도에서 온 여행자에게 묘한 동질감을 준다. 강화와 제주를 잇는 생명의 보이지 않는 선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훈훈해진다.
용암이 흘러 굳어진 검은 현무암과 그 위에 층층이 쌓인 화산재 지층 단면은 제주도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웅변한다. "여행은 아는 만큼 즐겁고, 제주는 아는 만큼 속살을 보여준다"는 말을 섭지코지는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경이로운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또 다른 세상, 섭지코지에서의 시간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붉은 낙조로 남아 있을 것 같다.

▲ 섭지코지는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울림으로 가득 찬다. 편안한 산책길에서 제주의 멋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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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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