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 는 목소리를 채굴하기(이라영 지음)
동녘
지금도 진행 중인 '탄광 사람들의 역사'
오래 전, 가족이 지나온 시간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여름 휴가 때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갔던 철암을 다시 찾은 적이 있다. 작가는 태백석탄박물관에서 형형색색 빛을 발하는 원석들에 감탄했다고 했지만, 내 시선이 머문 곳은 달랐다.
구석에 작게 전시된 산업재해 사망 기록, 유족 증서, 그리고 한자로 쓰인 빛바랜 합의서를 보며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갑작스러운 가장의 죽음과 지옥 같았을 슬픔, 경황없이 찍었을 합의서의 도장, 그리고 이어지는 이주와 남은 이들의 고된 생존. 그것은 다름 아닌 나의 어머니와 우리 가족이 온몸으로 겪어낸 서사였기에, 내게 그것은 결코 단순한 종잇장이 아니었다. 기록은 단순히 서류로 남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의 삶과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온전히 담아낼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수많은 노동자와 가족들의 진실한 '목소리'를 토대로 쓰였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4부 '목소리들, 들을 수 있을 때 듣기'가 내게는 가장 깊숙이 와 닿았다. 광부로 살았고 지금도 현장을 지키는 이들, 그리고 그들의 곁을 지킨 '광부댁'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 기록이 과거의 비극에 박제 되지 않고, 현재의 다양한 삶과 어떻게 따스하게 연결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의 고단했던 삶과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마주하며, 여전히 현장을 꿋꿋하게 지키는 이들과 못다 이룬 배움의 열정을 불태우는 이들을 본다. 그 치열한 삶의 궤적 앞에서 나는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가'를 자문하며, 내 삶의 부족함을 겸허히 되돌아보게 된다.
결국, 이 책은 '과거의 광산'에서 잊힌 노동자들의 삶을 되짚는 것을 넘어, 서로 연대하며 이어지는 '평범한 사람들의 역사'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일깨워준다. 나아가 그들이 꿈꾸는 새로운 내일에 대한 작지만 소중한 희망을 보여준다. 640페이지라는 묵직한 기록의 무게를 이 짧은 글로 다 담아낼 수는 없겠지만, 이토록 주옥 같은 목소리를 세상에 길어 올려준 작가에게 깊은 경의와 감사를 표하고 싶다.
세상은 '막장'이라 불렀지만, 그들에게는 삶의 터전이자 '안방'이었던 광산. 그 어둠 속에서 빛을 캐 올렸던 모든 노동자에게 존경의 마음을 바치며, 우리 시대의 필독서로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쇳돌 -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
이라영 (지은이),
동녘,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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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수 있을 때' 들어야 할, 검은 산에 묻힌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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