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트레일레이스 사두봉 사두봉 구간 능선을 달린다.
본인
장수 종합경기장에서 출발하여 첫 번째 만나는 길은 승마 로드이다. 승마체험장 근처로 경기 서막을 여는 완만한 구간이다. 비가 많이 내렸기 때문에 느릿하지만 꾸준히 달리며 경기를 즐기자고 다짐하였다. 이어서 와룡자연휴양림의 와룡은 '누워 있는 용'이라는 뜻. 지형이 용이 누워 있는 형상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본격 오르막이 시작되기 전이다. 치열하고 힘든 구간을 준비한다.
첫 번째 봉우리인 천상데미봉의 '데미'는 전라 방언으로 '더미(무더기)'를 뜻한다. 이름 그대로 '하늘 위 봉우리 더미'로 서서히 고도가 올라가며 선수들을 점점 힘들게 만드는 구간이다. 다음에는 이번 경기 중 가장 높은 팔공산(八公山). 갓바위 석불상으로 유명한 대구 팔공산과 이름이 같다. 여덟 명의 성인이 태어날 명당이라 하여 붙여졌다는데, 과연 운무가 지나는 산 능선을 달릴 때마다 산신령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느껴진다. 대회 38km 종목 정식 명칭은 '38K-P'이고 여기서 P가 바로 팔공산을 뜻한다.
팔공산 자락을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신선들이 내려와 춤을 췄다는 신무산(神舞山)을 지난다. 전설 속 신선처럼 나 또한 춤추듯 신나게 달리고 싶지만, 깊고 거친 산세를 거쳐오며 지쳐버린 몸과 마음이라 쉽지 않았다.
팔공산과 신무산 등 힘들었던 길을 지나 숨 고를만할 때쯤 뜬봉샘 자작나무 숲으로 들어가게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었다. 야트막한 경사를 따라 구불구불 내리막이 이어지며 하얀 나무숲이 펼쳐지고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만든다.
'뜬봉'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전설에서 유래하였다. 이곳에서 기도를 하는데, 봉황이 무지개를 타고 나타나 '새 나라를 세우라'는 계시를 내렸다고 한다. 이름 그대로 '봉황이 떴다'는 의미이다. 뜬봉샘에는 '샘'이 붙어 있는데, 이 글자가 자못 의미심장하다. 바로 금강 발원지이기 때문이다.
뜬봉샘을 지나면 수분마을이다. '물이 나누어지는 마을'. 뜬봉샘에서 시작된 물이 이 마을을 통과하며 남쪽으로 흐르는 물은 섬진강이 되고 북쪽은 금강이 된다. 내가 달리는 이 길 따라 우리나라 큰 강의 두 줄기로 갈라진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색다르다. 산 좋고 물 맑은 장수의 매력이다.
트레일 러닝 대회에는 체크포인트(CP)가 있다. 선수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하고, 주최 측에서 준비한 다채로운 먹거리들을 먹으며 나머지 경기를 이어가기 위한 힘을 보충하는 곳이다.
출발지이자 도착지인 장수 종합경기장까지 약 12km 남은 지점, 이번 대회 마지막 체크포인트에서 주먹밥과 초코칩을 먹고 물을 보충한 다음, 가장 힘든 구간 중 하나인 사두봉을 오른다. 길 안내 표지판에는 '가도 가도 끝없는 사두봉'이라고 큼지막한 글씨로 적혀 있다. 그 설명 만큼이나 힘들었다.
장수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
사두봉은 '네 개의 봉우리'라는 뜻이 아니라 산 모양이 '뱀의 머리' 형체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팔공산 만큼 고도가 높지는 않지만 체력이 고갈된 시점에 만나기 때문에 그 어떤 곳보다 발걸음이 무겁다.
사두봉 정상을 지나고 능선과 오솔길을 따라 달리며 만나는 논개활공장은 의암 논개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논개 생가 근처이자 패러글라이딩 출발지. 시야가 탁 트여 장수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이날은 아쉽게도 흐린 날씨로 구름과 안개에 갇혀 그 경치를 온전히 즐길 수는 없었다.
오르막도 힘들지만 내리막은 더 힘든 사두봉에서 가야 고분군으로 가는 길, 마봉산을 지나간다. 말과 봉황의 기운이 서린 산이라는데, 크고 작은 언덕을 걷고 뛰길 수없이 반복했다.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힘든 발걸음을 이어가지만 마음 한편으로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희망을 품고 달리는 구간이다.
동촌리 가야 고분군. 철의 왕국인 가야(장수 가야)의 흔적이다. 마지막까지 2km가 채 남지 않은 거리. 저 멀리 도착지 종합경기장에서 장내 아나운서가 경기를 마치는 선수의 번호와 이름을 외치고 축하하는 목소리가 스피커 음악 소리와 함께 들려온다. 1500년 전 무덤들이 줄지어 있는 이곳을 통과하며 경기를 마무리하는 것은, 마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승전고를 울리고 개선하는 고대 왕국 전사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장수트레일레이스 결승점 장수 종합경기장 도착지
본인
드디어 기다리던 장수 종합경기장. 종을 치며 응원하는 트레일 러닝 대회 특유의 문화 덕분에 시끌벅적한 환대 속에서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궂은 날씨로 출발은 두 시간 지연되었고 땅은 온통 진흙 바닥이었지만, 아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달리고 무사히 마쳤다.
전 세계 트레일 러닝의 성지로 꼽히는 곳, 프랑스 샤모니. 겨울 운동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제1회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유명한 도시이다. 알프스를 품에 안고 있는 샤모니에서는 매년 8월 세계에서 가장 큰 트레일 러닝 대회인 '울트라 트레일 몽블랑(UTMB, Ultra Trail de Mont Blanc)'이 열린다.
'장수트레일레이스'는 한국의 샤모니를 꿈꾼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직접 대회에 참가해 보니 그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열정 가득한 청년 사업가의 발상과 실행으로 시작된 대회임에도 지방자치단체의 역점 사업처럼 보일 정도로 '트레일 러닝' 열기가 가득하였다.
코스 곳곳에는 대회 로고가 인쇄된 안내판이 등산로와 함께 표시되어 있다. 봄 대회 뿐 아니라 3일간 스테이지 투어 그리고 가을 대회가 연달아 열리며 1년 내내 온 마을이 대회 분위기를 이어간다. 참가했던 선수들은 가을에도, 내년에도 다시 찾아와 또 달리겠다며 재참가 의지를 다진다. 일부 마니아들이 즐기는 트레일 러닝이라고 생각했던 입장에서는 생소한 풍경이지만 기분 좋은 경험 가득한 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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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무 지나는 능선을 달리는, 이 기분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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