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9년 4월 29일. 부산의 여인숙에서 조바로 일하던 춘자씨는 심부름을 시켜 서울 오목교 신정동 판자촌에서 홀아비 조씨와 살던 3형제를 찍어오게 한 사진입니다. 첫째 아들은 2년 전에 사망했고, 둘째 아들은 위기 청소년 돕는 일을 하고, 셋째 아들은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됐습니다.
조호진
가출한 춘자씨는 부산의 여인숙에서 '조바'(여인숙 종업원)로 일하다가 "전라도에 가면 떼 돈 번다고 하더라!"는 소문을 듣고 여천공단 공사판에서 노가다 인생들을 상대로 밥과 술을 파는 함바를 운영하다 일반 시민들은 무서워서 지나기를 꺼려하는 여수극장 휘파리 골목에서 '충청도집'이란 '색싯집'을 차렸습니다. 그리고는 신정동 오목교 판자촌에 살던 3형제를 급히 데려왔는데 그 까닭은 남편 조씨가 행방불명됐기 때문이었습니다. 행려병자로 발견된 조씨는 시립병원에서 1977년 사망했습니다.
춘자씨 큰아들은 어머니 떠난 후 고등공민학교를 때려치웠습니다. 그리고는 구두닦이와 신문팔이를 하고 불우 청소년들과 어울려 패싸움을 하고 물건을 훔쳤습니다. 소년원을 시작으로 경찰서와 교도소를 드나들던 그는 '법자'(법무부의 자식) 인생을 살았습니다. 술에 취하면 소주병과 유리창을 깨면서 "당신이 나를 버려서 내 인생이 이렇게 망가졌다"며 피투성이로 울부짖었습니다. 공소시효도, 특별 사면도, 가석방도 없는 '자식 버린 죄의 감옥'에 평생 갇혀 살던 장기수 춘자씨는 2026년 3월 28일 봄 밤에 석방됐습니다.
순천에서 홀로 살던 춘자씨가 인천 검단의 한 요양원에 입소한 2026년 1월 19일, 춘자씨가 담배 한 대 피우게 해 달라 요청하자 원장이 "공동체 생활에서는 규칙을 지켜야 된다"면서 거듭 안 된다고 하자 춘자씨가 느닷없이 교도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감방 생활을 경험했으니 요양원 규칙을 따르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란 의도로 말한 것인데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될 흑역사를 까 버린 것입니다.
독고다이로 떠돌며 살아온 춘자씨는 타관 객지 세상에서 누군가 텃세를 부리면 '젠장,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며 맞짱을 떴고, '어디서 굴러왔냐!'고 시비 걸면 '버려진 짱돌처럼 구르고 깨지며 살아왔다'며 들이 박았고, 누군가 '거칠게 산 인생'이라고 깔보면 '내 인생이 어때서!'라며 당당했습니다.
춘자씨는 1980년 전두환의 삼청교육대 명단에 포함되면서 순천교도소로 끌려갔습니다. '오찌'(뇌물)가 판을 치던 당시, 휘파리 골목 술집에서 삥을 뜯고 봐주면서 공생하던 경찰들이 삼청교육대 할당량 지시가 떨어지자 검거 실적을 채우기 위해 마구잡이로 검거하는 속칭 '후리가리'에 나섰습니다. 휘파리 골목 건달들도 삼청교육대에 끌려 갔는데 무슨 죄가 있어서 잡혀간 것이 아니라 전과자라는 이유로, 술값을 갚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보원 노릇을 소홀히 했다는 등의 이유로 끌려갔습니다.
사전 정보를 입수한 춘자씨 큰아들이
도망쳐 검거에 실패하자 약이 오른 경찰들이 약점 많은 술집 주인 춘자씨를 순천교도소로 넘겼던 것입니다. 악으로 깡으로 살아온 춘자씨는 자신의 생존 투쟁 이력을 숨기거나 쪽팔려 하지 않았습니다. 휘파리 골목 건달들이 춘자씨를 큰 누님이라 부른 까닭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숨김도 거침도 없는 화끈한 성격으로 건달들을 감싸주면서, 보증까지 서주다 망하기까지 하면서 한 식구처럼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아온 춘자씨는 '늙고 병들었다고 가오를 버리겠느냐!', '내 인생이 뭐가 어때서 살아온 세월을 감추겠냐!'라면서 당당했습니다.
무빈소-가족장 장례비용 27만5000원... 유가족 "신선하고 좋았어요"

▲ 무빈소 장례 비용 내역서
조호진
"사람들 귀찮게 하지 마라!"
춘자씨의 짧지만 굵직한 유언이었습니다. 유가족은 고인의 유언대로 '사람들 귀찮게 하는' 부고를 발송하지 않기로 하고 무빈소와 가족장으로 장례를 진행하면서 조문과 조의금을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그랬더니 첫째, 근조 화환으로 위세를 떨거나 기죽을 일이 없었고 둘째, 조문과 조의금 때문에 인간관계가 훼손되는 일이 없었고 셋째 조의금과 장례비 문제로 다투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일반 장례는 임종 직후에 영안실 시신 안치 → 장례식장 입실 및 빈소 준비 → 부고 문자 발송 등 장례 안내 → 조의금 접수 및 방명록 서명 → 조문객 접대 → 입관 → 발인 → 화장 또는 장지 이동 → 마무리 정산 등의 절차를 거칩니다. 하지만 춘자씨 장례는 영안실에 시신 안치 → 가정 추도 예배 및 발인 예배 → 시신 운구와 인도(경희대학교 의학계열실습지원센터) 등의 간소화 절차로 마무리됐습니다.
"어머니(할머니)를 이제 하나님 품으로 보내드립니다. 슬픔 가운데 있는 가족의 마음을 위로해주시고 평안으로 함께하여 주옵소서. 고인의 삶을 기억하며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게 하시고 남은 날들을 더욱 의미 있게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둘째 아들(66. 공익활동가) 자택에서 진행된 춘자씨 추도 가정 예배에서 둘째 며느리(69·공익활동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이어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한복음 1~3절)라는 성경 봉독을 한 뒤에 아들, 손자, 며느리 등이 춘자씨에 대한 기억과 감사의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추도 예배를 마치고는 작은 손자(33·소년희망공장 대표)가 위기 청소년에게 일터로 제공하는 커피숍으로 이동해 커피 등의 음료를 마시면서 부모 형제 간의 우애를 다졌습니다.
큰 손자(36·UNIST 연구교수)는 무빈소 가족장에 대해 "제가 짧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경험하고 주위에서 들은 장례란 복잡하고, 힘들고, 돈이 많이 드는 것으로 알았다"라면서 "그런데 할머니 장례는 첫째 신선한 방식이었고, 둘째 복잡하거나 힘들지 않았고 셋째 할머니 추모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큰 손자뿐 아니라 며느리를 비롯한 가족 모두가 "좋았다"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평균 장례 비용은 1000~2000만 원이라고 합니다. 서민에게는 부담스러운 장례 비용입니다. 춘자씨가 안치된 장례식장에서 발생한 비용은 안치실 사용료(175,000원)와 시신 이송료(100,000원) 합쳐서 27만5000원이었습니다. 장례 비용을 최소화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첫째, 상조회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장례 절차를 진행한 점 둘째, 시신 기증에 의해 승화원 화장 비용과 값비싼 수의와 관과 상복 등을 생략한 점 셋째, 빈소를 빌리지 않고 가정에서 평상복 차림으로 가족 장례를 한 덕분이었습니다.
[에필로그] 해피 엔딩을 선물로 주고 떠나신 어머니!

▲ 춘자씨와 둘째 며느리 그리고, 반려견 진순이와 햇살이가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는 모습입니다.
조호진
마지막 주거지 '전남 순천시 주암면 창촌 마을', 시골 교회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 채 외톨이로 지낸 춘자씨는 늙고 병든 몸으로 객지에서 홀로 사느라 외롭고 쓸쓸했음에도 외로움과 쓸쓸함에 기죽지 않았습니다. 반려견 진순이와 반려묘 마루가 죽었을 때도 죽음에 흔들리지 않았으며 자식들이 잠시 왔다가 떠났을 때도 애틋한 눈빛으로 배웅하거나 쓸쓸한 손을 흔든 적도 없었습니다.
춘자씨 인생은 결코 훌륭한 인생이 아니었습니다. 부모 형제를 일찍 여읜 춘자씨는 가난과 불화에 못 견뎌 자식을 버린 적도 있었고, 비윤리적인 색싯집 술 장사로 거칠고 모난 세상을 살았고, 교회 집사가 됐음에도 성경보다 텔레비전을 더 사랑했고, 천식으로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담배를 끊지 않았고, 자식 손자들에게 존경 받거나 사랑 받은 적 없었던 춘자씨가 이대로 최후를 마쳤다면 가련한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춘자씨의 인생은 해피 엔딩,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격언처럼 아픔과 고통의 세월을 훌훌 털어버린 마지막은 훌륭했습니다. 훌륭한 죽음으로 최후를 장식한 춘자씨, 모자지간의 오랜 상처와 불화를 치유와 화해로 녹인 선물 같은 죽음 덕분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담배 끊지 않고 왔다고 천국 입성을 거부하실 리 없으므로 안춘자 집사의 영혼은 버림도 버려짐도 없고, 아픔과 슬픔도 없는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실 것입니다. 어머니, 하늘 나라에서 평안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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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신장을 20대 청년에게 떼어줬습니다 http://bit.ly/FUWh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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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 기증, 장례비용 27만5천원... 여수 홍등가 큰누님 춘자씨의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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