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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주교 대구대교구, 인혁당 사건 51년 만에 "부족함 돌아봐"

    조환길 대주교, 추모사 통해 "고통 곁에 충분히 머물지 못해"... 유족들 "역사 되풀이돼선 안 돼"

    등록 2026.04.09 15:08수정 2026.04.19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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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대구 현대공원 열사묘역에서 열린 4.9인혁열사 추모제에서 한 유족이 헌화하고 있다.
    ▲ 9일 대구 현대공원 열사묘역에서 열린 4.9인혁열사 추모제에서 한 유족이 헌화하고 있다. 조정훈

    박정희 유신정권의 사법살인으로 희생된 '인민혁명당 재건위(인혁당) 사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4.9통일열사 51주기 추모제'가 9일 대구 북구 현대공원 열사묘역에서 열렸다.

    추모제가 열린 묘역 인근에는 '박정희 동상 철거하라', '침략전쟁 중단, 파병 반대, 사드 철거' 등의 현수막이 걸리고 비가 내리는데도 열사들의 후손과 지역 시민사회단체, 정당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추모제에서는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사건 발생 51년 만에 처음으로 추모제를 통해 과거의 아픔을 성찰하고 나아갈 방향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해 의미를 더했다.

    조환길 타대오 천주교 대구대교구장은 이관홍 신부(천주교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가 대독한 추모사를 통해 "유신의 어두운 시간 속에서 이유조차 알지 못한 채 끌려가 생을 마감하신 그분들의 죽음은 단지 한 사건의 비극이 아니라 국가 권력이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깊이 새겨 놓았다"고 말했다.

    이어 "세상은 이 일을 두고 법과 정의를 말하고 인권을 논하며 권력의 정당함을 묻는다"면서 "저와 우리 교회는 이 기억 앞에 조금 더 근본적이고 조금 더 무거운 질문을 되새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거짓이 진실의 자리를 대신할 때, 침묵이 진실을 가리는 방식이 될 때 그 앞에서 끝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그것이 증거"라며 "저는 그 증거의 시간을 함께 기억하고자 한다"고 추모했다.

    또 "함께해야 할 고통 곁에 충분히 머물지 못했다. 그 부족함을 오늘 이 자리에서 돌아본다"며 "유가족과 증거자들의 마음을 온전히 위로하기에는 우리의 기도와 말이 여전히 부족했음을 무겁게 받아 들인다"고 고개를 숙였다.

    "'박정희'를 끄집어내는 것에 분노가 치민다"


     9일 오전 대구 현대공원 열사묘역에서 열린 '4.9인혁열사 추모제에서 이관홍 신부(천주교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가 조환길 대구대교구장의 추모사를 대독하고 있다.
    ▲ 9일 오전 대구 현대공원 열사묘역에서 열린 '4.9인혁열사 추모제에서 이관홍 신부(천주교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가 조환길 대구대교구장의 추모사를 대독하고 있다. 조정훈

    김찬수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이사장은 "인혁당 사건이 일어나고 1년여 간 이들의 무죄 탄원과 구명을 위해 많은 운동이 있었다"며 "그 과정에서 특히 종교계가 우리 가족들의 손을 잡고 많은 양심세력들이 함께 해줬기 때문에 그 투쟁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그 과정에서 유독 (천주교) 대구대교구는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연루되었음에도 인혁당 사건과 여타 다른 정치적 사건에 대해 함께하거나 교회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 역사가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게나마 함께 해주시고 진정어린 기도와 평화의 목소리를 전해주신데 대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 회장은 "1946년 10월항쟁이 발생하고 30여 년 후 인혁당 사건 희생자들이 조작과 고문으로 돌아가셨다"며 "세상은 변하고 있지만 희생된 분들과 유가족들의 아픔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추모했다.

    채 회장은 "저는 세상을 떠날 때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피해자로서의 싸움은 모두 버리고 이제 증거자로서의 삶을 살고 싶다"며 "부모님의 사상과 이념이 희생의 대가로 돌아왔지만 우리가 당했던 고통, 엄마들의 피눈물 나는 삶, 가혹행위와 성폭력 등 모든 것을 기록할 것"이라고 했다.

    유족들은 아직도 그날의 아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더구나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부 후보들이 '박정희'를 거론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도예종 열사의 장남인 도한구(80)씨는 "아무리 역사가 수레바퀴처럼 돈다고 하더라도 무고한 목숨을 빼앗은 독재자의 이름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은 문제"라며 "그런 아픈 역사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라경일 선생의 외아들인 라문석(70)씨는 "아무리 선거를 앞두고는 있다고 하지만 '박정희'를 끄집어내는 것에 분노가 치민다"며 "그들이 조금이라도 역사의식을 갖고 있다면 그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9일 오전 대구 현대공원 열사묘역에서 열린 4.9인혁열사 추모제에서 유족들이 절을 올리고 있다.
    ▲ 9일 오전 대구 현대공원 열사묘역에서 열린 4.9인혁열사 추모제에서 유족들이 절을 올리고 있다. 조정훈

    이날 추모제와 별도로 대구 현대미술단체 '리카(RICA)'와 '로컬포스트(Local Post)'가 만든 대안 문화예술공간 '공간리상춘'에서는 오는 26일까지 인혁당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열린다. 장봉주 작가의 개인전인 '기념비 7549'는 인혁당 사건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들의 이름을 네온사인에 새겼다.

    또 (사)4.9인혁열사계승사업회는 오는 18일 '인혁열사들과 함께 걷는 대구민주주의길'을 주제로 역사기행을 진행한다. 역사기행은 대구 중구 옛 중앙파출소 앞에서 시작해 반월당, 진골목, 종로, 만경관, 여정남 생가, 중앙네거리, 노보텔, 대구역까지 답사한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박정희 독재정권 시기인 1974년 중앙정보부가 유신 반대 투쟁을 벌였던 민청학련을 수사하면서 배후·조종세력으로 '인혁당 재건위'를 지목해 '북한의 지령을 받은 남한 내 지하조직'이라고 규정한 사건이다.

    당시 인혁당 관련자 21명과 민청학련 관련자 27명 등 180여 명이 긴급조치 4호·국가보안법·내란예비음모·내란선동 등의 죄명으로 비상보통군법회의에 기소됐고 대법원은 1975년 4월 8일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8명에 대한 사형을 확정했다. 국제법학자협회는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사형 판결을 받은 지 불과 18시간 만인 4월 9일 도예종, 서도원,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우홍선, 송상진, 여정남 등 8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고, 이들의 시신은 유족들의 확인도 없이 화장됐다. 사형집행 소식은 이틀이 지난 후 언론에 보도되었다.
    #인혁당사건 #인혁당재건위 #통일열사추모제 #천주교대구대교구 #조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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