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 이스라엘의 공습을 당한 레바논 베이루트의 아인 알 무라이세 현장에서 9일 중장비가 가동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결국 문제는 하나로 수렴된다. 우리는 기억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기억을 통해 더 넓은 공감을 만들어낼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할 것인가.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진정으로 의미를 가지려면, 그 기억은 국경과 민족을 넘어 확장되어야 한다. 유대인의 고통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기억이 다른 민족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기억의 배신이다.
오늘날 이스라엘이 직면한 비판은 단순한 정치적 공격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 세운 윤리적 기준에 대한 질문이다. 과거의 피해를 기억하는 국가가 현재의 피해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될 때, 그 모순은 피할 수 없다. 동시에 국제사회 역시 자유롭지 않다.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인권의 기준, 선택적으로 작동하는 정의는 결국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 우리가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은 특정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이 던지는 보편적 교훈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 던진 메시지는 단순하다.
"내가 아프면 타인도 그만큼 아프다."
이 너무나 당연한 명제가 오늘날 국제 정치에서는 왜 이토록 낯설게 들리는가.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처한 현실의 비극이다. 기억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언제나 현재의 행동으로 증명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이름이 사라지고 있다. 그 이름들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기억을 통해 배워야 할 가장 기본적인 윤리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어져야 할 보편적 윤리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힘의 과시가 아니라 기억에 대한 성찰이다. 유대 민족이 역사 속에서 겪어온 극심한 고통, 특히 홀로코스트와 같은 비극은 인류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교훈이다. 그 기억은 단지 피해의 역사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 윤리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그 기억이 제대로 계승되고 있는지 되묻게 한다. 과거의 고통을 누구보다 깊이 알고 있는 공동체가, 이제는 다른 이들에게 끝없는 고통을 가하는 주체로 비친다면 이는 역사에 대한 배반이다.
안보와 생존의 논리가 아무리 절박하더라도, 그것이 타인의 삶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면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특히 현재와 같이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지도자의 언어와 선택은 더욱 엄중한 책임을 지닌다. 복수와 응징의 논리가 아니라 절제와 공존의 원칙이 요구된다. 과거의 상처를 기억한다면, 그 기억은 타인의 고통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윤리로 드러나야 한다. 이제는 멈춰야 한다. 자신들이 겪었던 고통을 망각한 채, 또 다른 고통을 재생산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야 한다. 역사적 기억은 정당화의 도구가 아니라 경계의 기준이어야 한다.
그 점에서 네타냐후의 선택과 발언은 다시금 깊이 성찰되어야 하며, 국제사회 역시 그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할 시점이다. 이중잣대는 결국 신뢰를 무너뜨린다. 그리고 신뢰를 잃은 정의는 더 이상 정의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무기가 아니라, 더 일관된 양심이다. 기억이 진정으로 구원의 비밀이 되기 위해서는, 그 기억이 모든 인간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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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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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프면 타인도 아프다" 대통령의 말이 가리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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