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귀포=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10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서복공원에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2026.4.10
연합뉴스
명숙과 나는 같은 대학을 다녔고 글 쓰는 동업자였고, 함께 민주화 험로의 신산고초를 공유했다.
세상은 그녀가 영원히 잠들었다고 한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녀와 결코 작별하지 않는다.
명숙은 꽃가지 그늘로 이어진 끝없이 - 작은 길을 희롱하며 폴짝이는 동박새가 되어, 한라산 넘어 오는 바람의 뒷등과 몸을 섞는 치명적인 하얀 귤꽃향으로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올레길 어디서나 반짝이는 잎새로, 아! 제주바당 끝없는 수면에 햇볕 달빛받아 반짝이는 윤슬로 생동할 것이기에.
어찌 그녀가 우리를 떠났다고 말하는가!
천 개의 바람줄기 되어 만 개의 꽃잎으로, 올레길 비추이는 와랑와랑 햇살로 늘 거기에 있을 것이기에.
그녀가 잠들었노라고, 떠났노라고 말하지 말아다오.
영결식 끝나고 그녀의 몸이 화장장으로 간다고 했다.
난 가지 않았어.
배우 문소리 일행 등과 정원으로 갔다.
자목련 잎이 툭툭 떨어지는 꽃그늘에 앉아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는 대신 그녀가 우리를 놀래키던 그 깜찍발랄한 거짓말을 재연하며 웃었다.
나는 문소리 배우에게 언젠가 명숙의 영화에 주연을 맡으라고 권유했다.
영화 1987의 감독인 장준환에게는 영화 '쟝고'의 한국 버전을 만들어 달라고 간청했다. 민주화빌런을 야무지게 차례차례 조용히 복수해주는.
우리 일행은 그렇게 꽃그늘 아래서 명숙을 재연하다가 3시에 그녀가 잠든다는 묘지로 갔다.
명숙의 유골함은 무표정했다.
몇 줌의 하얀 가루로 돌아온 그녀의 유골함이 어떻게 명숙일 수가 있는가?
A4 용지 크기의 묘비명. *쉿! 여왕님 깨실라*.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버나드 쇼가 좋아하려나?
그러나 그 무심한 유골이 차갑고 굳은 돌 속에 갇히는 순간, 나는 외쳤다.
'안돼! 명숙은 좁은 공간에 갇히면 안돼!'
나는 온몸으로 울었다. 안은주, 최광기와 함께.
숨이 막혀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는 순간, 거기 명숙이 평소처럼 동백꽃 버프를 쓰고 오렌지색 현란한 원피스 차림으로 저 멀리 타이티섬 열대 여자처럼 가무잡잡하게 웃고 있었다!
그래. 너는 거기에 있어야 해!
어둡고 비좁은 그 차가운 돌 안에서 명숙은 민첩하게 벗어나 나비처럼 가볍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참 빠르기도 하여라!
9시.
제주공항은 어제의 결항으로 밀린 이들로 북적였다.
비행기는 지연해 10시 반에 이륙했으나 김포공항에 착륙하지 못하고 인천공항에 내려앉았다.
천신만고 끝에 귀가하니 밤 1시 넘었다. 짐을 정리하는데 방바닥에 길게 투둑 펼쳐진 것.
진혼무를 추었던 춤꾼이 숨막히게 울던 내게 건네준 명숙의 목도리이다.
돌고래 몇 마리가 해초들 사이에서 춤추는.
명숙이 내게 말한다.
"까꿍! 언니. 나 여기 있지롱. 내일 아침엔 시춘민박 조식메뉴가 모야?"
"응. 뭐해줄까? 양곰탕. 된장찌개. 해장국. 가자미조림 중에서"
"그거 다 먹고 싶은데"
"알써. 예스 맴"
나는 명숙과 수다를 떤다.
봄밤은 아롱아롱 깊어간다.
3시인데 정신이 은화처럼 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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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비추이는 와랑와랑 햇살로 늘 거기에 있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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