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 중인 연주곡 한동안 본척도 하지 않았던 바로 연주했던 그곡 Gabriel's Oboe
정현순
그리고 배우고 싶은 곡이 있냐고 물어본다. 피아노를 배우면 꼭 치고 싶었던 '엘리제를 위하여'라고 했다. 선생님은 시범으로 한 번 쳐주고는 자세하고 천천히 가르쳐 주었다. 그 후로는 터키행진곡, 녹턴의 작품 9의 2번, 항가리무곡, 꽃노래, 쇼팽의 이별의곡, 은파, 비창 등을 쳤다. 우리 가요로는 바람이 분다, 걱정마세요, 어느60대노부부의 이야기, 이문세의 옛사랑, 봄날은 간다 등을 차례차례 배우기 시작했다. 난 익숙한 클래식을 배우고 잘 치고 싶었다.
어느 날 나와 상담을 했던 부원장이 "그 연세에 악보를 그렇게 보기 힘든데 현순님은 악보를 참 잘 보세요" 한다. 그 칭찬이 싫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은가요?" 하니 부원장은 웃는다. 악보에 반음 올림표인 #과 반음 내림표 b이 3개까지 붙은 것은 그런대로 무난하게 보고 있다. 높은음자리표와 낮은 음자리표도 잘 보고 있는 편이다.
부원장이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것도 그 학원에서 내가 나이가 제일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곳은 모두 성인이다. 대학생, 직장인, 주부 등 젊은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내가 그렇게 여러 곡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매일 가서 1시간 30분~ 2시간씩 연습을 꾸준히 했기 때문이란 생각이다. 그런 모습을 본 아이들이 내 생일에 디지털 피아노를 선물해주기도 했다.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라 나는 큰 감동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슨 선생님이 "현순님 얼마 있으며 피아노연주회가 있는데 한 번 참여해보세요" 한다. 난 깜짝 놀라서 "네? 연주회요?" "네 연주회요"한다. 내가 다니던 학원은 일 년에 한두 번씩 학원생을 대상으로 연주회를 열고 있다. 선생님의 갑작스런 제안에 난 아무 대답도 못 했다. 선생님은 아직 한 달 정도 남았으니 생각해보라고 했다.
며칠 지나 딸아이를 만났다. 딸아이에게 말을 하니 딸은 "못 하면 어때? 큰 경험이니깐 해봐요" 한다. 일단 참여하겠다고 말을 해놓고 곡 선정에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The Misslon (미션)'의 주제곡인 'Gabrie's Oboe'를 연습하고 있었다. 내게는 쉽지 않은 곡이었다. 하지만 그 곡을 하고 싶었다. 며칠 더 고민하다가 선생님한테 말했다. 선생님은 좋다고 한다.
연주회를 20일 정도 남겨놓고 그 곡만 연습했다. 어느 날은 잘 되고 어느 날은 안 되고를 되풀이했다. 생각만 해도 떨려왔다. 선생님한테 물어봤다. "선생님도 연주회 때 떨리나요?" 선생님은 피아노 전공이고 연주회를 셀 수 없이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선생님의 대답은 "그럼요. 떨리고 말고요. 제가 알기로는 안 떠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예요" 한다. 그리고 선생님의 당부는 틀린 부분을 계속 붙잡고 있지 말고 빨리 다음으로 넘어가라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연주회 날이 왔다. 나름 북적이는 분위기 속에서 연주회는 시작되었고 딸아이는 꽃다발을 사가지고 왔다. 3번이 내 차례. 앞에 두 사람은 젊기도 했지만 악보도 보지 않고 어찌나 잘 치던지. 더욱 떨리고 자신감이 떨어졌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동안 수없이 봐왔던 악보가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3~4분 정도의 시간이 마치 30분 이상 처럼 길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떻게 끝났는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몇 군데의 리듬도 틀렸고 박자도 맞지 않았다는 것이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끝나는 인사도 어떻게 했는지. 심장은 두근두근 손발은 덜덜 떨려왔다. 박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얼굴도 달아올랐다. 부끄러움은 내 몫이었다. 연주가 끝나고 학원관계자들도 잘했다고 하지만 위로의 말이란 것도 알고 있다. 딸아이가 꽃다발을 주면서 "엄마 그 나이에 이렇게 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야. 엄마 수고했어요" 한다.
연주회가 끝난 다음 날 학원에서 동영상 녹화를 보내주었지만 난 볼 수가 없었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연주회가 끝나고도 'Gabrie's Oboe' 곡이 많이 부족하기에 더 연습하고 싶었지만 한동안 할 수가 없었다. 피아노 앞에 앉아도 그 곡은 본 척도 안 하고 아예 건너뛰기가 일쑤였다. 내가 좋아하는 곡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잘하는 것을 연주해야 했는데. 그날 연주한 그 곡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모든 것이 어설펐지만 지금 생각하니 좋은 추억, 좋은 경험이었다. 앞으로 그런 기회는 오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무모했지만 한편으로는 뜻깊은 도전이란 생각도 든다. 그 곡이 나오면 언제 어디서나 그날의 풍경이 생생하게 생각날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후로 나는 4개월 더 다니고 힘에 버거워 그만두었다. 곡을 연습한다는 것은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집에서 하루에 20~30분 정도 매일 연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은퇴 전후의 6070 시니어들에게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요?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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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살 때 딸아이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던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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