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8월 9일 <부천군민애국기>를 헌납하였다는 매일신보 기사 이가윤세(李家允世) 부천군수는 1942년 8월 8일 제8회 대조봉대일을 맞이하여 군애국부를 방문하여 260번째 애국기를 부천군민을 대표하여 헌납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대한민국신문아카이브)
그렇다면 왜 이가 부천군수는 왜 8월 8일 방문했을까?
8일이 대조봉대일(大詔奉戴日)이었기 때문이다. 일제는 1941년 12월 8일 미국의 해군기지가 있는 하와이 진주만과 필리핀에 있는 클라크공군기지 그리고 영국령말레이반도를 침략하며 '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매달 8일 마다 국운(國運)을 건 전쟁에 대한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잡는다는 명목으로 대조봉대일(大詔奉戴日)을 만들었다. 1942년 1월 8일 처음 진행하였으며 8월 8일은 8회를 맞이한 날이었다.
그렇다면 제9대 부천군수를 역임했던 이윤세(1942.6~1943.3)는 어떠한 친일행위를 했을까? 다른 군수들보다 재임기간은 짧았지만 그 활동은 굵고 강렬했다. 이를 잘 나타내주는 기사가 있으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제목 : 전형적 목민관 이가군수(李家郡守)
결전하 신도실천직역봉공에 탄신하야 녕일(寧日)이 업는(편한 날 없는) 이가군수는 다년 관해에서 실제로 체득한 바를 종횡으로 유감업시 발휘하야 부천군이 가진바 특이성을 간파하자 착임이래 다음과 가튼 3대항목하에서
1. 도시상공업의 발전
2. 농촌생산력 확충
3. 서해안 수산업의 진전
등 3대 항목을 시정의 기본강령으로 삼고 착착 그 실(實)을 거양하고 잇는 바 취임한지 일천함에도 불구하고 제반시설이 면목일신하야 불원한 장래에 대부천을 기약하고 남음이 잇슴은 오로지 이가군수(李家郡守)의 진췌한 공적이라하겟스니 시국하 전형적 순국탄신의 목민관이라하겟다 (출처 - 1943년 1월 13일 매일신보)
한마디로 부천군수가 된지 6~7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병참기지화로 날로 그 역할이 중요해진 부천의 전시행정을 잘 이끌었다는 것이다.
농업보국운동(農業報國運動)의 전개
이윤세는 구체적으로 농업의 생산량을 늘리는 사업을 진행하였다. '농업보국운동'이라는 명목으로 보리의 비료관리, 비료의 증산, 가을에도 경작할 수 있도록 독려, 농수로의 수리 및 준설, 제방의 보수, 농기구의 수리 등을 구체적으로 실행하였다. 특히 이윤세는 권업과장과 함께 각 읍면에 못자리 개량을 적극적으로 장려하여, 적합한 토지와 묘대개량 등에 집중하였다.
이러한 사업을 통해 증산된 쌀, 보리, 면화, 목탄의 공출이 원활하도록 하였다. 실제로 1942년 부천군에 할당된 수량은 6만근이었지만 부천군은 이보다 6천근 많은 6만6천근을 출하였다. 쌀 또한 공출하였는데 부천군은 서울과 인천 사이에 위치하여 쌀 확보가 어려운 상황임에도 이를 거의 달성했다. 일제는 1943년 3월 15일에는 미곡 공출우량부락과 이에 공적이 현저한 부락지도자를 표창하였다. 부천군에서는 13개 마을과 42명의 사람이 표창을 받았다.
금속류 회수
일제는 군수용품을 만들 수 있는 금속류를 지속적으로 회수하였다. 특히 1942년 8월에는 특별회수로 지정하여 각부락(마을)연맹 이사장회를 개최하여 소사읍에서는 25일, 오정면에서는 26일 진행하여 많은 금속류를 회수하였다.
藁工品(고공품)과 신탄(薪炭)생산 장려
藁工品(고공품)은 볏짚으로 만든 제품으로 가마니, 새끼줄, 망태기, 짚신, 멍석 등을 말한다. 신탄(薪炭)은 땔나무 또는 숯을 의미한다. 조선총독부는 비상시국에 고공품과 신탄이 많이 필요하여 적극 장려하였다.
저축장려
일제는 전쟁 비용을 보충하기 위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저축을 독려하고 심지어 할당까지 하였다. 1942년 한해 3백만 경기도민에게 할당된 저축액은 2억 6100만 원으로 일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말고 이 금액을 채우라고 강요하였다. 이 당시 9월말 저축액이 1억 2732만 9519원으로 48% 밖에 되지 않는다고 각 지역에 독려하였다.
소사경방단 검열식
이윤세는 1942년 11월 20일 소사읍 북국민학교에서 소사읍, 오정면, 소래면, 계양면의 육지 4개읍면의 방어단 검열식을 진행하였다. 경방단은 지역에서의 방어와 경계를 담당하는 단체로써 방공 침투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었다.
이윤세는 9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부천군수를 했지만 이 당시 세계2차대전을 일으켜 침략전쟁을 진행했던 일제의 공출과 수탈이 심해던 시기였다. 일제강점기 부천군 역사를 통틀어 가장 큰 금액의 국방헌금이 '부천군민애국기'로 쓰인 것이다. 애국기 헌납이 이윤세의 친일행위를 대표한다고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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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의 항일독립운동을 기념하고 일제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역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약사로서 한약 처방, 야생화, 한약재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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