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작품을 재해석한 그림으로, 마르크 샤갈 특별전이 열리고 있음을 홍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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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공간은 넓지 않지만, 관람 동선은 주제에 맞도록 구성되어 있다.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르크 샤갈의 작품 세계가 정리되는 느낌이다. 작품에 예술가의 세계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진대, A4 용지 크기의 작은 삽화와 소묘 하나조차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전시실은 총 6개의 주제로 구분되어 있다. '사랑을 노래하다', '환상의 세계', '파리, 파리, 파리', '신에게 다가가다', '빛과 색채', 그리고 '영원한 이방인'. 그의 인생 앨범과도 같은 작은 방들을 하나씩 건너갈 때마다 그의 신산했던 삶과 그림으로 승화시킨 몸부림이 전해진다.
마르크 샤갈은 보기 드물게 장수한 예술가다. 19세기 말인 1887년에 태어나 1985년까지 살았다. 세계사적 혼돈 속에 휘말렸지만, 거의 한 세기를 살았다. 그는 제국주의의 발흥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몸소 겪었고,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핍박당했던 디아스포라의 삶을 견뎌냈다.
전쟁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고,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는 등 그의 삶은 고통으로 점철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야 그가 예술을 배운 프랑스에 다시 돌아왔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한 그를 프랑스 사람으로 흔히 착각하는 이유다.
어릴 적 가난과 전쟁의 포화를 견뎌낸 경험, 청년기 연인의 죽음과 유대인에 대한 정치적 편견과 종교적 핍박은 외려 그를 '거장'으로 거듭나게 만든 동력이 됐다. 그의 예술혼은 가족과 고향, 종교와 사랑으로부터 비롯됐다. 그의 작품 속 화려한 빛깔과 색채 속에 토속적이고 종교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건 그래서다.

▲ 전시실 내부 모습. 마르크 샤갈의 작품들이 주제별로 정지 화면 넘어가듯 배열되어 있다. 천천히 감상하다 보면, 전시 주제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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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는 달라도 그의 작품엔 거의 공통으로 보이는 '소재'가 있다. 파리의 랜드마크인 에펠탑과 노트르담 대성당이 배경으로 쓰이고, 염소와 닭이 생뚱맞게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당시 예술의 중심지였던 파리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고, 두 동물은 유대교의 교리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어쩔 수 없이 파리를 떠나야 했다. 예술에 눈을 뜨게 해준 파리는 그에게 '제2의 고향'과도 같았고, 전쟁이 끝나자마자 연어가 회귀하듯 파리로 돌아왔다. 예술에서도 전체주의적 획일성이 강요되던 때에 파리는 그에게 자유와 사랑을 선물했다.
유대교에서 염소와 닭은 '희생양'과 '속죄'를 표상하는 동물로,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체라고 여긴다. 신의 섭리는 인간의 기도 속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자연과 동물, 음악과 문학 속에도 깃든다고 믿는다. 유대교에선 염소와 닭도 인간처럼 신의 영성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 평범한 꽃병 그림이지만, 그의 그림에 공통으로 쓰이는 소재가 모두 담겨 있다. 파리를 배경으로, 염소와 닭, 포옹하는 연인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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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이방인'으로 살다 간 마르크 샤갈은 유대인으로서 정체성이 예술 활동의 원천이었던 셈이다. 그의 그림엔 유독 성서의 내용에 관한 묘사가 많은데, 그의 성서 삽화 연작은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남았다. 그런 그에게 러시아니, 프랑스니 하는 국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엇보다 그의 작품 속에 도드라지는 건, 포옹하거나 입 맞추고 있는 연인의 모습이다. 무한한 사랑과 더없는 행복을 표현하려는 의도인지, 그들은 땅에 발을 딛지 않고 공중에 붕 떠 있다. 흔히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연인 벨라 로젠펠트와의 추억을 표현한 것이라 해석한다.
하지만, 연인과의 사랑만으로 한정하기엔 작품의 색채와 배경이 너무 '환상적'이다. 상상의 세계를 의식의 흐름에 따라 캔버스에 옮겨놓은 듯 초현실주의적인 느낌이 물씬 난다. 차라리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거라는 해석이 더 합리적일 성싶다.
혹자는 연인이 포옹하고 입 맞추는 자세보다 붕 떠 있는 모습에 주목한다. 둘은 연인이 아니라 천사와 인간의 만남을 형상화했다는 해석이다. 평생을 혹독한 가난과 전쟁, 종교적 박해를 견디며 살아왔지만, 그 와중에도 그가 인류애적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상징한다는 거다.

▲ 프랑스 혁명이 태동한 파리의 바스티유 광장의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혁명의 광장에 유대교와 사랑을 덧입혀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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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을 돌아 나오면, 그제야 깨닫게 된다. 작품 앞에서 마음속으로 던졌던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을 구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그는 평생 이방인으로 살았고, 동료들과도 잘 섞이지 못했다. 오로지 유대교의 신앙심에 기대어 사랑을 갈구하며 희망을 노래한 여린 예술가였다.
'영원한 이방인'으로서, '빛과 색채'라는 도구로 '환상의 세계'를 묘사하며, '신에게 다가가' 가호를 빌며 '사랑을 노래한' 마르크 샤갈.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보니, 각 전시실의 이름을 붙여놓은 것과 같다. 이번 특별전을 준비한 큐레이터의 의도가 이러하지 않았을까 싶다.
'팔복 예술공장'을 나오는 길에, 뒷북처럼 마르크 샤갈에 묻고 싶은 게 하나 더 생겼다. 그의 모든 작품에서 엿볼 수 있는 유대교와 사랑에 관한 질문이다. 하긴 이 질문은 개별 작품과 '말하지 않는 대화'도 불가능할 뿐더러 그가 직접 답할 문제도 아닌 성싶긴 하다.

▲ 1관의 마지막 전시실엔 호머의 오딧세이를 소재로 한 삽화가 전시되어 있다. 영원한 이방인으로서 시련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전시실 가운데에 설치된 종이배 모양의 예술품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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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초정통파 유대인 가정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사랑을 노래한 원천이 유대교라는 점은 당연해 보인다. 최근 자연과 동물의 영성까지 존재를 인정하는 유대교의 교리가 무색해지는 상황이 중동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촉발한 이란 전쟁이 그것이다.
유대인들이 건국한 유대교 국가인 이스라엘이 자국을 위협하는 무장 세력을 소탕한다는 이유로 주변 국가를 무차별적으로 폭격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미국과 이란의 휴전에도 반대하며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유대교가 마르크 샤갈엔 사랑의 원천이었지만, 지금 이스라엘 정부엔 증오와 폭력의 기반이 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수백만 명이 학살당한 유대인에게 그들의 신앙인 유대교는 그 자체로 용서와 화해, 그리고 사랑이었다. 그가 유대교를 통해 사랑을 노래할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다.
그러나 지금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의 이름에서 홀로코스트의 참혹한 역사를 되새길지언정 용서와 화해, 사랑을 떠올리는 이들은 거의 없다. 주변엔 홀로코스트에 대한 앙갚음 같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적어도 증오가 증오를 낳는 악순환 속에 그들도 책임을 면키 어렵다.
절망 속에서도 사랑을 노래한 마르크 샤갈이 세상을 떠난 지 40여 년이 흘렀다. 요즘 아이들조차 '다윗의 별'이 그려진 이스라엘 국기를 보면 '극우'라는 단어부터 떠올리게 된다고 한다.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건대, 그들의 인식이 잘못됐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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