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감영 선화당 전라북도와 전주시에서 공개한 전라감영 선화당의 옛 모습이다.
전주시.전북특별자치도
전봉준은 전주성을 점령하자 농민군이 복수심에 불타서 살상과 약탈을 일삼는 것을 염려하여 12개조의 군율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이를 어긴 자는 가차없이 처단하였다.
-. 항복한 자는 대접을 받는다.
-. 곤궁한 자는 구제한다.
-. 탐학한 자는 몰아낸다.
-. 순종하는 자는 경복한다.
-. 도주하는 자는 쫓지 말라.
-. 굶주린 자는 먹인다.
-. 간교하고 교활한 자는 없애버린다.
-. 가난한 자는 구해주라.
-. 불충한 자는 없애버린다.
-. 거역하는 자는 효유하라.
-. 병자에게는 약을 준다.
-. 불효자는 죽인다.(김윤식, <속음청사(續陰晴史上)>, 국사편찬위원회.)
전봉준은 이날 오후 전주 부민들을 관아에 모아놓고 일장의 연설을 하였다.
"우리는 보국안민을 주장하는 자들이라 백성과 국가를 위하여 노력함이요, 결코 타의가 없으니 동포들은 각기 안심하라." 라고 위무한 다음, 관리들에게는,
"비록 관리라도 죄 없는 자는 논하지 않을 것이며, 설사 죄가 있다하더라도, 전과를 뉘우치고 의거에 합종(合從)하는 자는 특별히 용서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목을 베겠다." 라고 엄명을 내렸다.
이어서 방문을 남문에 게시하여 수구파 정부와 초토사 홍계훈의 죄를 물었다.
방문
방금의 사세(事勢)는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수 없는 형편이다. 웅병 맹장은 각각 그 믿는 땅에 있고 각군(郡)의 재사(才士)는 그를 먼 곳에 보내어 근왕(勤王)의 일을 한다. 대저 오늘날 우리들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형편으로 말하면, 집권대신들은 모두가 외척인데 주야로 하는 일이란 오로지 자기의 배만 부르게 하는 일이고, 자기의 당, 자기의 파 만을 각 읍에 널리 보내어 백성 해치기를 일삼고 있으니 백성들이 어찌 이를 감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초토사 홍계훈은 본래가 무식한 사람이라, 동학의 위세를 두려워하면서도 부득이 출병하였다. 망령되게도 공이 있는 김시풍을 죽이고 이것으로 공을 삼으려 하니 홍계훈은 반드시 사형을 받아 죽을 것이다. 가장 가석한 일은 3년 이내에 우리나라가 귀속될 것이므로 우리 동학이 의병을 일으켜 백성들을 편안케 함이니라.
갑오 4월 27일
홍계훈은 황룡촌 전투의 패전 소식에도 움직이려 하지 않다가 4월 25일에야 영광을 출발하였다. 그리고 27일 금구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농민군에게 처형당한 선전관 이주호, 종사관 이효응·배은환 등의 시체를 수습하고, 동학농민군이 전주성 근처에 진출한 것을 알면서도 밤이 늦었다는 이유로 금구에서 하루밤을 묵었다.
홍계훈이 28일 전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동학농민군이 전날에 성을 점령한 뒤였다. 홍계훈은 1,500명의 병졸을 지휘하여 전주성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완산에 포진하였다. 농민군도 이런 정황을 알고 전열을 갖추고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양측은 전주천을 사이에 두고 3일 동안이나 대치하였다.
한편 전주성의 탈환을 앞두고 홍계훈은 민심을 돌리기 위해 여러 가지 위무책을 썼다. 5월 초에 발표한 농민군 군사들에게 각자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요유문(曉諭文)>도 그 중의 하나였지만, 농민군은 이를 우습게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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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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