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보다는 힘을 주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인터뷰] 현대 민화로 소외된 존재를 말하는 이유주 작가

등록 2026.04.14 11:55수정 2026.04.1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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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5일, 봄 기운이 완연한 서울 종로구 삼청동 거리에서 이유주 작가를 만났다. 날카로운 눈빛과 단정한 태도 속에서도, 옷에 수놓인 동물들이 은근한 온기를 더했다. 그는 스스로를 특정 장르로 규정하지 않는다. '민화 작가'라는 호칭 역시 편의상 붙여진 이름일 뿐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장르가 아니라 표현 방식이다.

"전 특정 장르에 갇히는 게 별로예요. 그저 자유로운 영역에서 움직이고 싶을 뿐이죠. 중요한 건 '내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가장 잘 살릴 방법이 뭘까'거든요."


이유주 작가는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학창 시절 민화는 정규 미술 교육에서 주변부에 머물던 분야였다. 그러나 그는 일찍부터 민화에 관심을 가졌다. 이후 디자인 강의를 하던 중 학생들이 가져온 민화 도록을 통해 전환점을 맞았다.

이유주 작가 인터뷰 중인 이유주 작가
▲이유주 작가 인터뷰 중인 이유주 작가 노희진, 이원영

"전에는 고작해야 '까치 호랑이' 정도만 아는 줄 알았는데, 책을 보니까 완전히 다른 세계더라고요. '이거 뭐야? 왜 이렇게 소름 돋게 멋있어!' 그랬죠."

그가 민화에 끌린 이유는 '자유로움'이다. 궁중 회화처럼 규범과 형식이 엄격한 그림과 달리, 민화는 개인의 감정과 상상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특징은 오늘날 '현대 민화'로 이어진다. 현대 민화는 전통 도상과 상징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색채와 구성, 주제를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이유주 작가의 작업 역시 이 흐름 위에 놓여 있다.

"결국 '자유로움'이죠. 민화는 혼자서 자유롭게, 자기 상상력을 듬뿍 담아 그리던 그림이었으니까요. 그 특유의 자유로움이 제게는 너무 근사한 소스였어요."

그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는 '응시하는 눈'이다. 이는 전통 민화의 상징 체계를 현대적으로 변형한 장치다. 대표적인 전통 민화 '호작도' 속 호랑이는 권력과 수호의 상징이면서도 동시에 익살스럽게 그려지며 권력을 풍자하는 존재였다. 두려움과 웃음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이중성은 호작도의 핵심 특징이다. 이유주 작가는 이러한 구조를 확장해, 관객과 이미지의 관계를 뒤집는다.


"제 그림에서 가장 신경 쓰는 건 '눈'이에요.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들거든요. 당신만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그림도 당신을 보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달까."

그의 작품에는 결핍을 지닌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중심이 아닌 주변에 위치한 존재들이다. 그는 이들을 통해 사회에서 배제되거나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화면 위로 끌어올린다.


"저는 유독 '소외된 것', '비주류' 같은 단어가 붙는 것들에 마음이 가요. 세상이 감추고 싶어 해도 엄연히 존재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없애고 싶어도 안 없어지죠. 존재하니까."

이러한 시선은 민화의 본질과도 연결된다. 민화는 본래 서민의 삶과 소망을 담아낸 그림이다. 권위를 상징하는 이미지조차 풍자와 변형을 통해 재구성했다. 이유주 작가의 작업 역시 기존 질서와 시선을 전복 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재료 선택에서도 그의 태도는 일관된다. 그는 한지를 주요 매체로 사용한다. 한지는 습기와 압력에 반응하며 형태를 바꾸고, 구기고 두드릴수록 강해지는 물성을 지닌다. 이러한 특성은 변화와 지속, 그리고 회복을 상징하는 요소로 기능한다.

최근 예술계에서 논의되는 인공지능 기술에 대해서도 그는 수용적 입장을 보인다. 기술을 배제하기보다 새로운 표현 방식으로 활용하는 가능성에 주목한다. 관객과 작품이 직접 상호 작용하는 형태의 작업도 구상 중이다.

그의 작업이 향하는 방향은 명확하다.

"저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요. 사는 게 팍팍해도 우리에겐 판타지가 필요하잖아요. 절망보다는 힘을 주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민화는 한때 주변부 장르로 인식됐지만, 현재는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되며 확장되고 있다. 이유주 작가의 작업은 전통 형식을 바탕으로 동시대의 감각과 문제 의식을 결합하는 사례다.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태도처럼, 그의 작업 역시 하나의 범주로 고정되지 않는다.

내 안의 타자(The Other Within) Collage and coloring on paper, 145.3×112cm/ 2023
▲내 안의 타자(The Other Within) Collage and coloring on paper, 145.3×112cm/ 2023 이유주

그는 자신을 특정한 수식어로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작가 이유주'라는 이름으로 남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의 그림이 관객에게 '묘하게 재미있는 이미지'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작업 흐름은 현대 민화가 전통의 형식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상징을 현재의 맥락에서 다시 해석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민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해 온 호랑이는 권위와 수호의 상징이면서도 동시에 우스꽝스럽게 표현되며 권력을 비트는 존재였다. 무서움과 익살이 공존하는 이 이중적 이미지는 호작도의 핵심 구조이자, 오늘날에도 유효한 시각 언어다. 현대 민화는 이러한 상징을 그대로 유지하기보다, 새로운 관계와 시선 속에서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유주 작가의 작업 역시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그의 화면 속 존재들은 더 이상 일방적으로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관객을 응시하며 관계를 뒤집는 주체로 등장한다. 결국 현대 민화에서 호랑이는 단순한 도상이 아니라, 시선과 권력, 그리고 주변부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장치로 확장된다. 이러한 재해석은 전통 민화가 지닌 의미를 현재로 끌어오는 방식이자, 동시대 미술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이유주 #이유주작가 #현대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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