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초는 2011년, 강정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소중한 걸 지키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도 열리고 있는 강정평화 미사의 모습.
강정찬구들
멋진 사람들을 좇아 강정마을뿐 아니라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군산 새만금공항 백지화 투쟁 등 많은 저항의 현장을 찾아다녔다. 학교생활도 잘은 했지만 "재미는 없었"다.
"좀 무료했어요. 왜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서 그런 걸 외우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강정이나 다른 현장에서 배우는 게 더 크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학교에 있으면 빨리 강정에 가고 싶었죠."
학교보다 세상 속에서 배우고 싶던 해초는 고등학교에 가는 대신 세상을 여행하고 싶었다. 그런데 늘 "알아서 해"라던 부모님이 이때만큼은 달랐다. "입학시험만 보자"고 설득하셨다. 떨어지면 맘대로 해도 된다는 말에 시험을 대충 봤다. 하지만 산청간디학교는 학생보다 부모님의 교육관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교였다. 부모님 '덕분에'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때문에'보다는 '덕분에'에 가까운 고교생활이었다.
"사실 저는 지금도 '그 시간에 여행을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는데요. 어쨌든 거기서 만난 선생님들이랑 친구들이 참 좋았어요. 사실 그게 살면서 얻을 수 있는 다이잖아요. 좋은 친구들을 잘 만났으니 그걸로 됐다 싶어요."
고등학교에 입학한 2014년 봄, 한 살 많은 단원고 학생들이 탄 세월호가 침몰한 사건이 벌어졌다. 울음을 참을 수 없는 고교 시절이었다. 세월호 참사를 시작으로 박근혜 탄핵까지 여러 집회에 참여하면서 역시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많은 것들을 배웠다.
척박한 도시 생활을 돌고돌아 다시 찾아간 꿈
눈물이 많던 해초가 이제는 잘 안 우는 어른이 됐단다. 도시의 한기를 맛본 후부터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보니 같이 졸업한 산청간디학교 학생 중 대학에 안 간 사람은 해초와 친구 한 명뿐이었다. 앞날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던" 해초는 서울에 간다는 친구 따라 함께 올라왔다. 그렇게 일종의 대안대학인 지식순환협동조합(지순협)의 조합원이 되었다. 그런데 너무 추웠다.
"처음 서울살이를 하는데 너무 척박하고 추운 거예요. 조금 길을 잃은 상태였던 것 같아요."
처음 느껴보는 추위였다. 그나마 도시에서 공동체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지만 두 학기도 다 마치지 못하고 지순협을 그만뒀다.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서"였다. 그 뒤론 거의 6개월마다 옮겨 다녔다. 덴마크로 건너가 비공식 성인대학인 폴케호이스콜레(시민대학)에서 예술을 공부하기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예술을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아주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던 꿈은 변한 적이 없었다. 돌고 돌며 길을 찾아가다 보니 그 꿈에 닿았다. 미술 작가가 되고 싶어서 1년 넘게 아침부터 밤까지 그림 그리고 공부하는 생활을 이어갔다.
"마음먹고 간 거여서 되게 열심히 했어요. 진짜 밥 먹고 자고 그림 그리고 공부하는 일밖에 안 했어요. 힘든 건 매일 하고 있는 그 생활이 힘들다기보다는 내가 설정한 목표는 동의하지만 내가 매일 하고 있는 이 생활은 의미 있다고 느껴지지 않아서, 그게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뒤늦게 대한민국 입시에 뛰어들었지만 의지로 밀어붙이니 20대 중반의 나이로 대학생이 되었다.
섬들의 이야기를 연결해 평화항해에 이르기까지
이제 다시 바다 이야기로 넘어가자. 대학에 다니던 중 강정에서 부름을 받고 내려갔다. 그때가 한창 돛을 사용해 바람으로 가는 세일링 요트에 빠져있던 중이었다. 요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서 다른 섬들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평화의 바다를 위한 섬들의 연대' 활동에 결합했다. 2021년 처음 요트 타는 법을 배운 뒤, 2023년엔 요트 '요나스 웨일'호를 타고 제주에서 시작해 오키나와와 일본 열도의 여러 섬, 대만을 잇는 107일 간의 '평화항해'까지 마쳤다. 해초에게 항해의 첫 시작을 물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랐고 아빠가 섬사람이어서 인생에 한 번은 바다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또, 바다라는 장소가 가진 특징이 굉장히 흥미로웠고요. 육지는 정지된 세계이고 벽으로 둘러싸인 세계라면 바다는 항상 움직이고 쫙 펼쳐진 세계이잖아요."
그렇다면 항해와 평화 운동은 어떻게 연결될까. 말을 고르던 해초는 "항해는 그 자체가 체제에 저항하는 방식"이라고 답했다. 육지가 중력이 작용해 뿌리내리는 공간이라면 바다는 바람에 따라서만 갈 수 있다. 민중이 좀 더 주도적으로 방향을 설정해서 이동한다는 점에서 항해운동은 과정 자체가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저항하는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 동아시아를 잇는 107일 항해와 제주에서 임진각까지 가는 평화 항해 때 탔던 요트 ‘요나스 웨일’호
개척자들
바다, 그중에서도 섬은 또 특별하다. 섬은 바다로 연결돼 있지만 동시에 고립된 공간이다. 찾아가지 않으면 섬들의 이야기는 밖으로 나오기 쉽지 않다. 평화항해는 섬과 섬을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일이자 서로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오키나와에서 대만까지 이르는 류큐 열도에 섬이 엄청 많은데 거의 모든 섬에 군사 기지가 있거든요. 어떤 섬은 주민 대다수가 기지 건설을 반대해도 주민 수가 너무 적으니까 이곳의 이야기를 아무도 모르고 있고요."
해초를 비롯한 평화항해가들이 그들을 찾아가 섬에 갇힌 이야기를 세상에 퍼뜨리는 일을 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돛 하나에만 의지한 채 망망대해에 떠 있을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어쨌든 위험한 일이 아닌가. 해초는 다소 동의하면서도 어떤 종류의 위험이냐에 따라서 위험은 언제 어디서나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연에서 맞닥뜨리는 위험은 많은 태도를 가능하게 해 준다"면서 한 일화를 들려줬다.
"한번은 저희 배보다 훨씬 높은 3미터는 됨직한 파도를 맞닥뜨린 적이 있어요. 그때 저는 공포스럽다기보다는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내가 맞닥뜨리는 일에 대해서 내가 어떤 태도를 지니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그런 위험이나 공포에 대해서 집중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나 우리의 의지나 희망에 집중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또, 같이 배를 타고 있는 이들과 서로 믿고 의지할 수도 있고요."
아직은 항해가 무서운 적이 별로 없었다면서 그는 항해를 잘하는 사람의 특징도 설명했다.
"바람과 파도가 시시각각 변하니까 그런 변화에 바로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이 항해를 잘하는 사람이에요. 지금 어떤 바람이 불고 별은 어디로 이동하는지를 보면서 어떤 돛을 펼칠지를 바로 아는 사람이요. 도시에 사는 사람이 배를 타면 이런 자연의 변화가 너무도 미세해서 안 보이고 아무 할 일이 없다고 느낄 거예요. 그래서 항해를 잘하는 일은 관찰하는 일에 가깝죠."
요트를 탄 뒤로 해초가 오래 관찰한 바다의 빛깔들이 다양해졌다. 107일간의 동아시아 항해를 한 다음 해에는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두 달 동안 골든룰(Golden Rule)호에 탑승하기도 했다. 골든룰호는 1958년 미국의 핵무기 실험을 저지하기 위해 항해했던 역사상 최초의 환경·평화 직접 행동 항의선이다. 2015년 복원돼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의 많은 항구들을 돌면서 핵무기 철폐, 평화, 환경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미국에서 돌아와 해초는 2025년 5월, 아예 '요나스 웨일'호의 선장까지 맡았다. 제주에서 진도, 광주를 거쳐 임진각 앞까지 가는 평화의 항해를 이끌었다.
가장 닿고 싶은 섬, 가자로 향하다
용기의 원천을 따라온 길, 이제 팔레스타인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저항의 항해를 해온 해초에게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의 항해는 어쩌면 필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가자지구는 지금 해초가 가장 닿고 싶은 섬이기 때문이다.
"다른 세계에서 일어나는 분쟁이나 전쟁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지고, 팔레스타인의 투쟁도 지켜보고 있었고요. 섬이 고립된 장소라고 했을 때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된 섬은 가자지구 같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어요."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묻는다. 그렇다고 그렇게 먼 팔레스타인까지 갈 필요가 있느냐고. 이미 여러 번 많은 사람과 매체에 답했겠지만 그래도 답을 듣고 싶었다. 해초는 그곳이 전혀 멀리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면서 그런 질문을 하는 이들에게 "그렇다면 가까운 곳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한단다.
"팔레스타인은 멀다면 오키나와나 제주는 가깝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광주나 군산, 혹은 자신이 살고 있는 땅과는 가깝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어요. 그곳이 멀다고 느끼는 이유는 거기서 일어나는 상황을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이 땅의 역사와 연결되는 감각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는 "(이스라엘에 무기를 팔고, 이스라엘의 대량학살에 침묵하는) 한국도 가해국과 같아서 책임이 있고, 식민 지배를 당한 역사를 미루어 봐서도 팔레스타인에 연대해야 할 이유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그러하기에 봉쇄된 채 대량 학살을 당하고 있는 가자지구로 향하는 '천 개의 매들린' 구호선단에 함께할 기회가 왔을 때 주저하지 않았다. 유서까지 쓰고 2025년 9월 17일,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가자지구로의 항해를 위해 출국하기 직전의 해초
개척자들
가기 전부터 해초는 가자지구와 맞닿아 있는 지중해를 자주 상상했다. 침몰한 난민선과 함께 무수한 난민의 희망도 함께 잠들어 있는 가장 슬픈 바다 중 하나인 지중해를 건너 가자지구에 닿게 된다면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래서 최소한으로 챙긴 짐꾸러미 안에 일회용 필름 카메라도 넣었다.
"우리가 닿는다면 정말 오랜만에 평범한 시민들이 가자지구에 가는 일일 테잖아요. 고립된 지가 너무 오래 됐으니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게 가장 필요한 구호 중 하나일 것 같았어요. 미디어 기자들의 눈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의 눈으로 그 장면을 담고 싶었고요."
하지만 해초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10월 8일, 가자지구로부터 120해리 떨어진 곳에서 그가 탔던 '알라 알 나자르'호 선원들을 비롯해 30개 국적의 150여 명이 모두 이스라엘군에 나포됐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주권이 미치는 영해에 해당하는 12해리보다 10배나 먼 바다였지만 이스라엘군은 개의치 않았다. 다른 짐들과 함께 카메라도 빼앗긴 채 이스라엘 감옥에 갇혔다. 그곳에서 해초는 자유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가 지금 약간 구타도 당하고 조롱도 듣고 막혀 있는 상황이지만 과연 감옥 바깥 세계를 상상하지 못하는 저 군인들이 더 자유롭다고 할 수 있는가.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세계가 얼마나 넓으냐에 따라 자유가 정의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인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을 때 해초는 "더 많은 상상력과 더 많은 용기를 가지고 사셨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함께 갇혔던 구호선단원에는 운동선수, 연예인, 청소년, 국회의원, 농민 등 다양한 시민들이 있었다. 그들은 구호활동을 대량 학살이 벌어지는 세계에 살아가는 시민의 의무라고들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팔레스타인으로 이목이 쏠리길 바라며 배에 타는 일이 그들에겐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 해초와 함께 가자지구로 향한 ‘천 개의 매들린’ 구호선단
개척자들
소중한 걸 지키는 이들을 영상에 담고 싶어
상상력이 나왔으니 예술 이야기를 해야겠다. 해초와 만난 세 시간이 넘는 시간 중 상당 시간은 지아장커 감독의 영화 등 예술 이야기를 하는 데 썼다. 전공이 조형예술과라고 해서 조각, 공예 등만 생각했는데 영상, 설치미술까지를 포괄하는 분야란다. 그래서 미술작가를 꿈꾸던 해초는 지금은 영상 작업에 더 힘을 쏟고 있다고. 강정마을에 관한 좋은 다큐멘터리도 만들고, 돈이 많다면 진짜 멋있는 무협 영화도 만들고 싶단다. 다큐멘터리는 예상했는데 무협 영화라니 내 상상력을 벗어났다.
"싸우는 게 무협 영화가 아니에요. 무협인들은 싸우기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니라 소원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요. 그래서 자신의 가치에 반하면 스스로 죽기도 하잖아요.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힘을 기르는 사람이 무협인이죠."
눈을 빛내면서 이야기하는 해초가 바로 그런 무협인 같아서 한참을 쳐다봤다. 1월에 만났는데 해초는 내년부터는 학교에 열심히 다니려고 한다는 2027년의 계획을 들려줬다. 그렇다면 2026년은? 세상을 좀더 여행하고 싶단다.
"미디어 등에서는 꼭 세계가 몰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목소리 작은 어떤 곳에서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음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바다 건너에서도 같은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꼭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무엇보다도 경이로운 자연을 보고 싶고요."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가자지구'를 검색하니 2월 5일, 휴전 중임에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11세 여자아이를 비롯한 가자지구 주민 23명이 사망했다는 기사와 함께 내달에 구호선단이 다시 출항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세상의 울음에 눈감지 않을 용기를 들려준 해초에게 더없이 감사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이야기의 힘을 믿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