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기를 밀고 가는 엄마의 뒷모습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 걸음. 엄마의 하루는 오늘도 보행기와 함께 이어진다.
이수정
멈춰버린 시간, 다시 이어진 시간들
수년 전부터 집 앞 놀이터는 엄마의 '전부'가 되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전이면 운동기구를 붙잡고 굳은 근육을 깨우며 놀이터를 열 바퀴씩 돈다. 처음에는 지팡이에 온몸을 의지했고, 요즘은 보행기를 밀면서 걷는다.
오후가 되면 그곳은 어르신들의 사랑방이 된다. 햇볕이 잘 드는 벤치 위에서 이야기가 오가고, 그 속에서 엄마는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총알, 꼬부랑, 김치네, 영암댁, 염소할매, 열두가지 병, 한 사장…" 엄마가 들려주는 어르신들의 별명은 들을 때마다 웃음이 난다.
엄마의 별명은 '여왕벌'이다. 사람들을 모으고, 웃게 만드는 사람. 엄마의 일상은 그렇게,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엄마가 다치신 이후, 나는 주말마다 친정에 간다. 이제는 그 시간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매일 퇴근길이면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내셨는지, 어디 불편한 곳은 없는지 묻는다. '괜찮다, 잘 지냈다'는 말을 들으면 그제야 내 마음도 조금 놓인다. 하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으실 때면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동안 마음이 편치 않다.
몸이 유난히 무거운 날이면 잠시 망설이기도 한다.
'이번 주는 그냥 쉴까.'
하지만 그럴 때마다 창가에서 바깥을 내다보고 있을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차 소리 하나에도 고개를 들어 확인했을 엄마의 시간들. 그 생각이 들면, 결국 나는 다시 시동을 건다.
요즘 또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비슷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부모의 병원, 약, 넘어짐, 혼자 계시는 것에 대한 걱정. 우리는 어느 순간, 자식이면서 동시에 부모의 보호자가 되어 있었다.
언니와 함께 친정에 간 지난 11일, 날씨가 좋아 외식을 하자고 했더니 엄마가 말했다.
"오리죽을 끓였는데… 맛있을지 모르겠다."
우리는 몇 번이나 밖에서 먹자고 했다. 그런데 엄마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가시오가피까지 넣어서 끓였어."
결국 집에서 먹기로 했다. 엄마는 느린 걸음으로 냉장고에서 반찬통을 하나씩 꺼냈다.
"아휴, 맛이 없을지도 몰라."
식탁 위는 금세 정성으로 가득 찼다. 사과와 배를 넣어 익힌 물김치, 된장에 무친 방풍나물, 손으로 썬 투박한 무채김치.
"너희는 이런 거 잘 안 먹지?"
머위쌈을 떼어 입에 넣어주시는 손끝에서 봄의 쌉싸름한 맛과 엄마의 마음이 함께 전해졌다. 그날의 백미는 새벽 3시부터 끓였다는 오리죽. 엄마는 낡은 양푼에 오리고기를 담아 내셨다.
서로를 먹이며 살아간다
나는 한동안 젓가락을 들지 못했다. 보지 않아도 보이는 장면이 있었다.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새벽, 불 꺼진 부엌. 엄마는 벽을 짚고 식탁 모서리를 붙잡으며 아주 천천히 부엌으로 향했을 것이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 짧은 거리가 얼마나 멀게 느껴지셨을지.
그렇게 겨우 도착한 부엌에서 가스레인지를 켜고, 무거운 냄비를 올리고, 물을 부었을 엄마. 딸들이 도착하기 전에, 엄마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을 것이다. 이 재료들을 사기 위해 엄마는 보행기를 밀고 시장을 몇 번이나 오갔을까.
그 시간을 모른 채 언니와 나는 '밖에서 먹자'고만 했던 것이다. 온전히 엄마만의 반찬으로 차려진 밥상은 자그마치 6년만이다(그동안은 대부분 배달 음식이나 외식, 또는 딸들이 만들어간 반찬으로 해결해 왔다).
"엄마, 진짜 맛있어. 뭐 넣으셨어?"
"넣긴 뭘 넣어. 액젓이랑 마늘 좀 넣었지.…너희 먹일 생각에 정성을 좀 넣어서 그런가 보다."
우리의 웃음소리가 깨소금처럼 뿌려졌다.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부모는 몸은 비록 늙어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줄어들어도, 해주고 싶은 마음은 더 커진다.

▲ 양푼에 담긴 오리.
이수정
나는 서둘러 사진을 찍었다. 엄마는 '(음식을) 양푼에 담아서 부끄럽네' 하시면서도 핸드폰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셨다. 엄마의 표정은, 큰일 하나를 해낸 아이처럼 환하고 가벼웠다. 그날 엄마는 '다시 해냈다'는 마음으로 가슴이 벅찼을 것이다.
"다음 주에는 찰밥 해 놓을게."
평소에도 자주 해주시는 찰밥은 엄마의 긍지. 집으로 돌아가는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엄마는 골목이 울리도록 말씀하셨다. 그날 엄마의 웃음은 세상 어떤 봄꽃보다 환했다.

▲엄마의 입맛을 돋워드릴 내가 만든 부추 달래장 엄마에게 받기만 하던 마음을, 이제는 조금씩 돌려드리기 시작했다.
이수정
나는 그날 찍은 엄마의 밥상 사진을 자주 들여다본다. 그 안에는 음식 뿐 아니라 보행기를 밀고 시장을 오갔을 엄마의 시간과 마음이 함께 담겨 있다. 사진 속에는 그날의 냄새와 웃음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다.
다음 주말에도 나는 반찬 몇 가지를 준비해 친정에 갈 것이다. 달래를 송송 썰고, 부추를 다듬어 엄마가 드실 달래부추장을 만들어 갈 생각이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먹이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자식을 향한 마음으로, 나는 또 그 마음을 받아 다시 엄마를 향한 마음으로. 그렇게 이어지는 밥상 위에서 우리는 또 한 번 사랑을 확인한다.
그날의 엄마의 밥상이 단순한 한 끼가 아니었다. 다시 살아내겠다는 다짐이고 여전히 우리를 향해 흐르고 있는 사랑이었다. 겨울을 건너온 사람만이 차릴 수 있는, 엄마의 봄이었다.

▲6년 만에 차려주신 온전한 엄마의 밥상 보행기를 밀고 준비한 엄마의 밥상. 오리죽과 봄나물 반찬 위에 자식을 향한 시간이 담겨 있다.
이수정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처럼 요망지게(야무지게), 똘망똘망하게, 유쾌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게 살아온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23
아동상담센터 원장이자 언어치료사 심리상담가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뜻한 치유의 글을 쓰고 싶습니다. 공동저서 '글루미릴레이' 공동저서를 출간했습니다.
공유하기
보행기 밀어 차려낸 엄마의 오리죽... 젓가락을 들지 못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