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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걸 그렸다고?" 뾰족한 돌로 새긴 7천 년 전 호랑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경주 석장동 암각화에 등장하는 호랑이

등록 2026.04.17 11:57수정 2026.05.15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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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 학예연구사이자 20여 년 동안 문화유산을 연구하고 탐방해 온 문화유산 전문 여행작가입니다. '거룩한 장도, 한국 호랑이를 찾아서'라는 주제를 지속적으로 다룹니다.[기자말]

반구천의 전경 반구천은 태화강의 지류로 물길, 산, 초목으로 선계의 풍경을 자아낸다.
▲반구천의 전경 반구천은 태화강의 지류로 물길, 산, 초목으로 선계의 풍경을 자아낸다. 정재학

문자 기록이 없었던 시대를 통상 선사시대라고 부른다. 최초의 문자가 약 기원전 32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 탄생했다고 하니, 그 이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보통 구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까지라고 보면 무방하다. 그런데 문자가 없었다고 기록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인류의 기록 본능은 단순히 잊지 않기 위한 것을 넘어, 스스로를 나타내고 존재를 남기려는 표현 욕구로 유구하다.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에 남기진 벽화로, 중앙아시아 암석에 새겨진 그림으로, 인류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기록을 남겼다. 우리 또한 바위에 새긴 그림을 남겼다. 그것도 호랑이를 새겼다고 하니, 인류가 지켜야 할 암각 호랑이를 만나기 위해, 지난 5일 울산으로 향했다.


암각 호랑이를 만나러 가는 길

길을 나서 남쪽으로 쭉 내려가다 추풍령을 넘다 보니 창문 너머 백두대간 산맥이 마치 오래된 파도처럼 굽이쳤다. 겹겹이 이어진 능선은 시간의 층위를 닮았고, 그 속 어딘가에 선사인의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있을 것만 같았다. 4월 초 도로변 풍경은 온통 벚꽃으로 단장해 마음을 설레게 했다. 바람 따라 흩날리는 꽃잎은 장관으로 눈부셨다. 장거리 운전이 힘들지 않을 정도로 봄날의 탐방은 축복 그 자체였다.

울산에 다다르자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구불구불 강줄기였다. 바로 반구천이었다. 공식 명칭은 대곡천으로 울주군 두서면에서 발원해 두동면, 언양읍을 거쳐 범서읍에서 태화강에 합류한다. 또 한 지류인 반곡천은 언양읍 다개저수지에서 발원하여 동류하다가 반곡리에서 대곡천으로 흘러 만나는 지점에 목적지인 반구대 암각화가 자리하고 있다.

걸어 들어가는 탐방길은 감탄사를 연발하게 했다. 물길과 산, 초목이 자아내는 풍광은 흡사 선계를 방불케 했다. 이러한 물길 위에 중생대 공룡 집단 서식지임을 증명하는 발자국 화석과 천전리 각석 암각화 등을 품고 있었다니 대자연의 서사에 경외감이 든다. 어떻게 이런 곳을 알았을까.

반구대암각화 전경 반구대암각화는 너비 약8m, 높이 약4.5m 규모로 총312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반구대암각화 전경 반구대암각화는 너비 약8m, 높이 약4.5m 규모로 총312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정재학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동국대학교 교수진이 지역 주민의 제보로 확인되어 학계에 알려졌다. 평상시에는 수위가 높지 않아 비교적 접근이 수월했다고 하는데 1965년 사연댐의 건설로 수위 변화에 따라 물에 잠기고 드러나기를 반복하는 등 훼손의 위협 속에 놓여 있다. 그래서 현재는 강 건너편 멀리서 관람할 수밖에 없다. 날씨가 좋은 날, 그나마 관람 망원경을 통해서만 겨우 그림의 형상을 관찰할 수 있다.


암각화는 너비 약 8m, 높이 약 4.5m 규모의 중심 바위면과 10여 곳의 주변 바위면에 그림이 새겨져 있다. 바위면 위쪽이 2~3m 정도 처마처럼 튀어나와 있어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는 구조로 암각화를 오늘날까지 이렇게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너비야 그렇다고 치고 4.5m의 높이라. 제작하기 결코 쉽지 않은 조건이다. 사다리를 이용한다고 해도 결코 만만치 않은 높이다. 어떻게 제작할 생각을 했을까. 이는 그들의 기록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울산암각화박물관 전경 반구대암각화를 자세히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창구다.
▲울산암각화박물관 전경 반구대암각화를 자세히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창구다. 정재학

암각화를 충분히 바라본 뒤, 울산암각화박물관으로 향했다. 이곳은 반구대 암각화를 자세히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창구다. 실물은 접근과 보존의 문제로 제한되지만, 박물관은 그 의미를 확장시킨다. 박물관으로 들어서자 하늘에서 찍은 반구천 일원의 전경 사진이 눈길을 끈다.


하지만 그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특별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반구천의 암각화는 창의적으로 빚어진 걸작이요, 이미 사라진 문명의 독보적인 증거 등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해 7월 16일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록인증서 반구천의 암각화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5년 7월16일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록인증서 반구천의 암각화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5년 7월16일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정재학

몇 년 전 몇 번에 걸쳐 답사한 적은 있었지만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는데 이런 경사가 있었다니 이를 위해 노력한 많은 분들에게 경의의 박수를 보낸다. 그동안 훼손과 보존 등의 논쟁으로 설왕설래가 많았는데 이젠 인류가 지켜야 할 존재가 되었으니 논쟁은 일단락되었고 이젠 어떻게 이를 지키고 활용해야 할지 고민할 지점인 것 같아 반가웠다.

반구대암각화 모형 박물관에는 반구대암각화 모형과 도면 등 자세히 관찰할 수 많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반구대암각화 모형 박물관에는 반구대암각화 모형과 도면 등 자세히 관찰할 수 많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정재학

반구대 암각화는 총 312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바다동물의 대표인 고래, 육지동물의 대표인 호랑이를 중심으로 약 20여 종의 동물이 새겨져 있다. 아울러 사람들이 배를 타고 고래를 잡거나 활과 화살을 이용해 동물을 사냥하는 모습 등 선사시대의 생활 모습을 담고 있다. 그리고 울산 및 동남해안의 신석기시대 유적 출토품 등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지금으로부터 약 7000년 전 신석기시대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마디로 신석기시대 생활상을 대변하는 그림 역사책인 셈이다.

호랑이 그림은 현재 알려진 바로는 줄무늬 호랑이 20마리, 점박이 표범 2마리로 총 22마리로 추정된다. 호랑이의 형상은 또 어떤가. 뾰족한 돌로 어쩌면 그 특징을 잘 표현했는지 혀를 내둘 정도다. 특히 화장실 칸막이 유리에 프린트 되어 있는 호랑이 탁본을 보면 포효하는 호랑이 모습을 흡사 사진 찍어 놓은 것처럼 사실적이다.

암각 호랑이 모습 암각화에는 줄무늬 호랑이 20마리, 점박이 표범 2마리로 총 22마리가 새겨져 있다.
▲암각 호랑이 모습 암각화에는 줄무늬 호랑이 20마리, 점박이 표범 2마리로 총 22마리가 새겨져 있다. 정재학

포효하는 호랑이 탁본 화장실 칸막이 유리에 프린트된 포효하는 호랑이 탁본, 표현이 사실적이어서 흥미롭다.
▲포효하는 호랑이 탁본 화장실 칸막이 유리에 프린트된 포효하는 호랑이 탁본, 표현이 사실적이어서 흥미롭다. 정재학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새긴 그림

울산을 뒤로 하고 경주로 향했다. 길은 다시 산을 넘고, 평야를 가르며 이어졌다. 도착한 곳은 삼기팔괴(3가지 보물과 8가지 기이한 풍경)의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금장대다. 금장대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풍경 때문에 기러기도 쉬어간다는 금장낙안으로 유명한 곳으로, 경주의 형산강과 북천이 만나는 곳이다. 실제로 여기서 바라보니 경주 시내가 한눈에 보였고 벚꽃으로 단장한 하천길은 상춘객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금장대에서 바라본 경주 시내 풍경 금장대는 형산강과 북천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고, 벚꽃으로 단장한 하천길이 상춘객을 설레게 했다.
▲금장대에서 바라본 경주 시내 풍경 금장대는 형산강과 북천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고, 벚꽃으로 단장한 하천길이 상춘객을 설레게 했다. 정재학

공교롭게도 반구대와 마찬가지로 이곳 경주 석장동 암각화도 두 물길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선사인들의 뛰어난 위치 선정 감각 때문이었을까. 반구대 만큼 화려하거나 방대한 규모는 아니지만, 이곳의 암각화는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암각 호랑이 발자국 석장동암각화에는 호랑이는 없고 발자국 그림만 새겨져 있다. 존재의 증명으로 자연을 인식하는 방식의 변화가 보인다.
▲암각 호랑이 발자국 석장동암각화에는 호랑이는 없고 발자국 그림만 새겨져 있다. 존재의 증명으로 자연을 인식하는 방식의 변화가 보인다. 정재학

이곳에는 호랑이는 없고 호랑이 발자국과 산이 그려져 있다. 발자국처럼 보이는 형상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존재의 증명이다. 보이지 않는 호랑이를 흔적으로 남긴 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차이를 말해준다. 반구대가 형상을 기록했다면 석장동은 존재를 기록했다. 이는 인간이 자연을 인식하는 방식의 변화이기도 하다. 직접 마주한 대상에서,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세계로 인식이 확장된 것이다.

경주 석장동암각화 전경 경주 형산강과 북천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경주 석장동암각화 전경 경주 형산강과 북천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정재학

호랑이는 이 두 암각화에서 공통으로 등장했다. 이것은 단순히 한 종의 동물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상징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두려움의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존중과 경외의 대상.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돌에 새겼다. 잊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기억하기 위해서.

기록은 시간을 이긴다. 그러나 기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을 이해하고 지키고 이어가는 것은 결국 지금을 사는 우리의 몫이다. 반구대와 석장동에서 만난 호랑이는 더 이상 숲 속의 맹수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존재였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묻는 오래된 질문이다. 울산과 경주를 잇는 이 순례는 단순한 탐방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과 기록,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되짚는 길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호랑이가 있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반구대암각화 #석장동암각화 #울산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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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학예연구사이자 20여 년 동안 문화유산을 연구하고 탐방해 온 문화유산 전문 크리에이터입니다. 김구 선생 탄생150년을 맞아 문화강국 프로젝트 일환, 2036년 전주하계올림픽 유치 및 국립한국호랑이박물관 건립 기원을 위해 기획한 연재로 "거룩한 장도-한국호랑이를 찾아서" 매주 금요일, 전국에 산재되어 있는 한국호랑이를 찾아 탐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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