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표지 케이트 도피락(글) 크리스토퍼 실라스 닐 (그림)
나는별
책 속 아이의 하루 역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침부터 이어지는 분주함, "빨리빨리"라는 말 속에서 아이는 쉼 없이 움직인다. 학교로 향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또 다른 일상 속으로 밀려 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주변의 풍경은 점점 흐릿해진다. 물건들은 제자리를 잃고 흩어지고, 장면은 어지럽게 겹쳐진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아이의 세계는 선명함을 잃는다. 그림은 말없이 그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익숙해서 보지 못했고, 느끼지 못했던 장면들이다.
그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익숙해서 마음이 멈칫했다. 어쩌면 내가 로리에게 만들어주고 있던 하루가 이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한 문장에서 방향을 바꾼다. 의도된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만 멈춰!
천천히, 천천히 해도 괜찮아.
이 문장 이후, 모든 장면이 바뀐다. 아이의 걸음이 서서히 느려진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동안 스쳐 지나가던 세계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언덕 위에 서서 느긋하게 마을을 내려다보고, 잔디 위에 몸을 눕혀 하늘을 바라본다. 꽃과 나비, 바람과 물결, 이름 모를 소리들이 하나씩 또렷해진다.
주위를 둘러보렴.
천천히 바라보면 세상은 정말 아름다워!
아이는 더 이상 어디론가 급히 가려 하지 않는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숨을 들이 마시고 천천히 내쉬어 보며 느긋함을 즐긴다.
아이의 곁에는 강아지 한 마리가 친구처럼 붙어있다. 함께 달리고, 멈추고, 바라보는 존재. 그 둘은 누가 더 빠른지를 따지지 않는다.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비가 오는 날에도, 밤이 내려앉은 뒤에도, 아이의 하루는 점점 차분해진다.
그리고 별빛 아래에서 아이는 별을 세기도 한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빨리 빨리는 이제 그만.
대신 천천히, 처-언-천-히.
빠르게 지나간 하루에서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 감각이다.
책을 덮으며 나는 다시 로리의 질문으로 돌아왔다. "왜 우리는 항상 바빠?" 그 질문은 아이의 것이었지만, 결국 어른에게 향하고 있었다. 아이의 하루를 바쁘게 만든 것은 우리의 속도였다. 우리는 효율을 위해 서두르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 재촉한다. 그 과정에서 놓치는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돌아보지 못한다.
<천천히 천천히>는 그것을 조용히 짚어준다. 느림은 단순히 속도를 줄이는 일이 아니라, 감각을 회복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풀잎 위에 잠시 앉아보는 일,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 귀를 기울여 소리를 듣는 일 같은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하루를 다시 채운다.
어쩌면 우리는 아이에게 더 빠르게 사는 법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아이가 이미 알고 있는 속도를 잊지 않도록 지켜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 속도는 느린 것이 아니라, 삶을 제대로 바라보는 속도이기 때문이다.
천천히 천천히
케이트 도피락 (지은이), 크리스토퍼 실라스 닐 (그림), 김세실 (옮긴이),
나는별,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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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항상 바빠?" 손자의 질문 앞에서 멈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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