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마민주항쟁 답사는 대개 항쟁탑에서 마무리된다. 항쟁탑 주위엔 부산대학교 출신 민주화운동 유공자들의 자취가 선연하다.
서부원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한 기대감에선지 교사들의 학습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강의와 답사 내내 눈이 초롱초롱 빛났고,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종일 이야기꽃을 피웠다. 대화와 토론을 거듭하며, 부마 항쟁과 5.18을 한데 묶어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마 항쟁의 역사적 위상을 제대로 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부마 항쟁이 헌법 전문에 수록되면 교과서에서의 서술 비중도 자연히 커지게 될 거라면서도, 이를 대비한 교사들의 노력이 절실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여느 민주화운동에 견줘 지금껏 간과된 이유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고, 박정희의 갑작스러운 피살과 적은 희생자 수, 무엇보다 항쟁 관련 기록의 부족이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됐다.
당시 언론 기사가 온통 박정희의 사망 소식으로 도배되다시피 하면서, 정작 피살의 원인인 부마 항쟁이 덮여버렸다. 유신 독재정권에 철저히 주눅 든 기성 언론의 무능과 무책임이 부마 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훼손시켰다는 거다. 공식적 기록이 많지 않으니 말하기 조심스럽고, 언급을 꺼리다 보니 시나브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잊힌 셈이다.
박정희에 대한 호의적인 인식과 부마 항쟁의 위상이 '반비례' 관계인 탓도 크다. 박정희를 추앙하는 목소리가 클수록 그를 죽음으로 내몬 부마 항쟁은 일순간 난처한 처지가 된다. 특히 요즘 같은 선거철 특정 지역의 후보자들이 '박정희 팔이'에 여념이 없는 경우, 부마 항쟁은 함부로 입 밖에 낼 수 없는 '금기어'로 전락한다.
그러하기에 부마 항쟁은 유신이라는 시기와 부산, 마산이라는 공간의 범주를 넘어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이라는 커다란 물줄기의 하나로 해석되어야 한다. 부패한 이승만 정권을 4.19가 끌어내렸고, 전두환과 노태우로 이어지는 신군부 세력을 5.18과 6월 민주항쟁이 무릎 꿇렸듯, 부마 항쟁 역시 유신 독재정권에 맞서 국민 저항권을 행사한 대표적인 민주화운동이다.

▲ 부산 지역 프로젝트 그룹 '봄꽃'의 공연 모습.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전하는 부마 민주항쟁의 '미시사'에 교사들은 박수로 화답하며 울고 웃었다. 부마 민주항쟁에 관심 있는 이라면 반드시 들어야 할 필수 코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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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젝트 그룹 봄꽃의 공연을 마치고, 공연팀과 교사들이 무대에 올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모두가 감동의 도가니였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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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교류 프로그램의 압권은 '금지곡'을 주제로 한 음악극이었다. 부마 항쟁을 알리기 위해 부산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이 결성한 '봄꽃 프로젝트 그룹'의 공연이었다. 교사들 모두가 공감하고 함께 노래하며 의지를 북돋운 감동의 도가니였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풀어낸 '금지곡' 이야기에 괜스레 울컥하기도 했다.
이번 연수는 지역의 교사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부마 항쟁 알리기'에 의기투합하고 있음을 알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부마 항쟁의 위상을 되찾는 건 시간문제라는 확신이 든다. 6월 3일 국민 투표를 통한 개헌을 화룡점정이라고 표현한 한 교사는 연수를 매조지듯 이 질문을 던졌고, 모두가 이구동성 "두말하면 잔소리"라고 답했다. "(개헌안 통과의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과연 국민의힘 의원 중 10명이 돌아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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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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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 민주항쟁'의 위상 재정립은 시간문제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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