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르무즈 해협에 갇힌 선박들
AP/연합뉴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는 18일(현지 시각) 저녁부터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폐쇄했다고 발표하며, 미국이 대이란 해상 봉쇄를 해제하기 전에는 개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영국해사무역기구(UKMTO)는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유조선이 이란 혁명수비대와 연계된 고속정의 공격을 받았다는 신고를 접수했다"라고 전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제한적 개방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상황은 곧바로 다시 군사적 긴장 국면으로 되돌아갔다.
이 변화는 한국에도 결코 먼 일이 아니다. 정부는 한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원유의 약 70%를 들여오는 핵심 이해당사국이라고 설명해 왔다. 중동의 긴장은 단지 외교 뉴스로 끝나지 않는다. 선박 안전, 보험료, 물류비, 에너지 가격, 나아가 국내 물가와 산업 비용까지 한꺼번에 흔든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일 엑스(X, 옛 트위터)에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을 비판하는 취지의 글을 올렸고, 이스라엘 외무부는 이를 "용납할 수 없다"라고 반발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각국의 주권과 보편적 인권은 존중돼야 하고, 침략적 전쟁은 부인된다. 그게 우리 헌법정신이자 국제적 상식"이라고 다시 밝혔다. 이어 국무회의에서도 전쟁 당사국들이 인권과 역사의 교훈을 바탕으로 평화를 향한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고 당부했다.
외교부도 대통령의 글이 특정 사안에 대한 일방적 편들기가 아니라 "보편적 인권에 대한 신념을 표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점은 중요하다. 지금 논란의 핵심은 한국 대통령이 특정 국가를 자극했느냐만이 아니라, 전쟁과 민간인 피해를 어떤 언어로 말할 것인가에 있다.
국제여론은 이미 확전에 피로감을 드러냈다
실제로 국제여론은 이미 확전에 피로감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에서는 로이터 통신(Reuters)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Ipsos)가 실시한 조사에서 이란에 대한 군사공격 반대 응답이 43%로, 찬성 27%를 웃돌았다. 일본 <아사히신문> 조사에서 미국의 이란 공격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82%, 지지한다는 응답이 9%로 집계됐다. 이는 전쟁의 명분이 아무리 거창하게 제시되더라도, 시민들은 결국 생활비와 에너지 가격, 전쟁의 장기화 위험으로 그 문제를 판단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유럽의 반응도 무조건적인 군사 지지가 아니었다. 유럽연합(EU)은 민간인 보호와 국제법 존중을 촉구했고, 각국은 확전 자제와 외교적 조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시 말해, 전쟁을 멈추고 국제규범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는 한국만의 특이한 주장이 아니라 이미 국제사회 곳곳에서 확인되는 흐름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17일 프랑스·영국 주도의 호르무즈 해협 자유항행 화상 정상회의에서 한국이 해협 안정의 직접적 이해당사국임을 강조하며, 항행의 자유와 전후 안전 보장을 위한 국제공조 필요성을 제기했다. 정부도 선박과 선원 안전을 위해 관련국들과 협조를 진행하고,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와 물류 대안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이 이번 사안을 단순한 원론적 논평이 아니라 실제 경제·안보 현안으로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말은 더 조심스러워야 하지만, 동시에 더 분명해야 한다. 이해관계가 큰 나라일수록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안전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에너지 안보와 공급망 안정, 선박 안전, 국제규범이 한데 얽힌 상황에서 침묵은 결코 비용이 없는 선택이 아니다.
원칙과 국익은 따로 가지 않는다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7일 밤 청와대에서 ‘호르무즈 해협 자유항행’ 관련 화상 정상회의에 참석해 각국 정상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청와대 미디어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평화연대위원회는 대통령 발언과 관련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국제인도법은 준수되어야 하며, 인간의 존엄성은 타협할 수 없는 최우선 가치"라고 평가하며, 이번 발언이 한국 외교의 기본 기조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책브리핑에 실린 외교 관련 기고문도 한국의 국익과 보편적 가치에 따른 원칙을 분명히 하는 것이 외교적 자율성을 높이고 실용 외교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원칙과 실용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떠받치는 경우가 많다.
한국처럼 무역 의존도가 높고 에너지 수입 구조가 취약한 나라는 국제법, 항행의 자유, 민간인 보호, 분쟁 억제 같은 원칙에서 쉽게 물러설 수 없다. 그런 기준이 흔들리면 당장 눈앞의 거래는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다음 위기에서 기대야 할 질서 자체가 약해진다.
물론 대통령의 표현은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 외교적 메시지는 국내 정치용 구호와 다르고, 사실관계의 엄밀함도 훨씬 높은 수준으로 요구된다. 그렇다고 해서 신중함이 침묵의 다른 이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과 같은 위기 국면에서 필요한 것은 모호한 회피가 아니라, 보편적 인권과 국제규범이라는 기준 위에서 국익을 설득력 있게 연결하는 언어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 의미가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완벽한 문장이어서가 아니라, 확전 반대와 민간인 보호, 항행 안전이라는 국제사회의 커지는 요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국 외교가 해야 할 일도 분명하다.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 선박과 선원 보호, 국제 공조, 인도적 지원, 전후 해상 안전 보장을 하나의 일관된 전략으로 묶어 내야 한다.
원칙과 국익은 충돌하지 않는다. 제대로 세운 원칙은 국익을 지키는 가장 오래가는 방패이며,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축적하는 가장 현실적인 자산이다. 그 신뢰가 쌓일 때 한국은 다음 위기에서 단순히 영향을 받는 나라가 아니라, 필요한 해법을 먼저 제시할 수 있는 나라로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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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로 있으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주된 관심분야는 글로벌 위기관리 및 재난·안전학, 일본의 정치경제, 동아시아 국제관계, 국제기구론, 국경학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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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이익? 이 대통령의 중동 발언이 '국익'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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