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전화가 편한 사람, 전화가 불편한 사람... 왜 그럴까

언어학으로 읽는 소통 방식의 차이

등록 2026.04.20 16:01수정 2026.07.06 17:50
1
원고료로 응원
"전화는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카톡, 전화, 이메일 등 서로 다른 매체를 통한 소통 방식에 대한 콘텐츠를 보았다. 작가 박상영은 "전화는 때때로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내 영역이 침범당하는 느낌"이라 했고, 가수 이적은 "갑자기 누군가가 내 방 문을 확 열려고 하는 것 같다"고 받았다. 이메일은 다르다고 했다. "1층에서 초인종을 누르는 느낌"이라고. 내가 열어 줄지 말지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전화는 왜 불편할까 전화의 불편함에 대한 유튜브 화면 갈무리
▲전화는 왜 불편할까 전화의 불편함에 대한 유튜브 화면 갈무리 유튜브 사피엔스 스튜디오

그 콘텐츠를 보며 좀 부끄러워졌다. 나는 여전히 전화가 편한 사람이다. 작은 화면의 키보드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것보다 목소리로 말하는 게 편하다. 그렇다면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의 방 문을 허락도 없이 벌컥벌컥 열어젖혔던 걸까.

1990년대 초반, 십대의 나이에 러시아에서 한동안 머무른 일이 있다. 고향에 있는 가족과의 소통 수단은 편지였다. 부치고 나면 한 달은 기다려야 했고, 분실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전화를 하려면 우체국에 가서 먼저 예약을 해야 했다. 그리고 예약된 날짜와 시간에 다시 우체국으로 가서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렸다.

이름이 불리면 지정된 부스로 들어가 수화기를 들었고, 거기엔 이미 연결된 가족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화는 연결도 어려웠지만 요금도 비쌌다. 기껏해야 5분이었다. 처음에는 전화통을 붙들고 내내 울다가 시간을 다 보내는 친구들도 있었다.

울다가 끊기는 전화. 할 말은 태산인데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다음 사람이 기다리고 있어서 끊어야 했던 전화. 그 시절 전화 한 통은 연결 그 자체였다. 살아 있다는 확인, 보고 싶다는 고백, 잘 지내고 있다는 안도… 전화가 그 모든 것을 실어 날랐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도 비슷한 장면들이 있다. 공중전화 앞에 줄을 서고, 집전화는 온 가족이 공유하던 시절, 그때 전화는 사적인 도구가 아니었다. 기다림 끝에 겨우 닿는 것, 그래서 더 간절했던 것이었다.


동기적 소통과 비동기적 소통

언어학에서는 소통 방식을 시간의 관점에서 나누기도 한다. 동시에 반응해야 하는 동기적 소통과 시간을 두고 답할 수 있는 비동기적 소통이다. 전화는 전자, 문자와 이메일은 후자에 속한다.


전화는 두 사람을 같은 시간에 같은 대화에 묶는다. 상대의 시간을 점유한다. 이적의 표현대로라면, 문을 벌컥 열어버리는 것이다. 반면, 문자나 이메일은 비동기적이다.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같은 시간에 있을 필요가 없다. 받는 사람이 준비가 되었을 때 확인하면 된다. 울리는 초인종에 문을 열어 줄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글이 있기 전 말로 했던 인류의 소통은 원래 동시적이었다. 글은 그 시간적·공간적 제약을 넘기 위해 나중에 생겨난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쪽이 더 나은 소통이냐고 묻는 건 사실 잘못된 질문이다.

채널마다 실어 나를 수 있는 것이 다르다. 전화는 목소리, 호흡, 침묵, 떨림을 전달한다. 문자는 그것들을 잘라낸 대신 시간의 자율성을 준다.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느냐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문화마다 다르다.

이를 두고 세대 간에 차이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텍스트 중심의 디지털 환경에서 자란 젊은 세대가 전화를 낯설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금세 반례가 떠오른다. 이적은 나와 같은 또래다. 내 주변에도 비슷한 세대인데 전화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대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전화를 기피하는 현상을 '전화 공포증(telephobia)'이라 부른다. 전화보다 덜 부담스러운 텍스트 소통 수단이 생기면서, 전화는 점점 '침입적인 것'으로 느껴지게 됐다는 분석이다. 대안이 생기니 전화의 불편함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른 걸까. 우선, 소통 경험이다. 나에게 전화는 우체국 부스의 5분이 강렬했다. 간절하게 기다리고, 겨우 연결되고, 울면서도 붙들고 있어야 했던 것, 그런 기억이 몸에 새겨진 사람에게 전화는 온기와 연결의 상징이다. 반면 전화가 그저 일상적인 도구였던 사람에게는 그 무게가 다를 수 있다.

또 다른 것으로, 언어를 다루는 방식의 차이도 들 수 있다. 박상영은 소설가이고, 이적은 작사가다. 언어를 오래 다듬어 쓰는 사람들은 즉흥적인 구어 소통보다 텍스트의 통제감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전화는 준비할 시간도, 고칠 기회도 없이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한다. 언어를 정밀하게 다루는 사람일수록 그 즉흥성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리고 내향성과 외향성의 문제도 있다. 내향적인 사람에게 전화는 에너지를 많이 쓰는 일이다. 준비 없이 즉각 반응해야 하고, 상대의 감정과 맥락을 실시간으로 읽어야 한다. 이건 세대와 무관한, 기질의 문제가 되겠다.

서로 다른 소통 방식 해석 하기

결국 전화를 편하게 느끼느냐, 불편하게 느끼느냐는 그 사람이 어떤 소통 경험을 쌓아왔는지, 언어를 어떻게 다루는 사람인지, 어떤 기질을 가졌는지에 달린 문제다. 세대는 그 변수들 중 하나일 뿐이다.

박상영과 이적의 말이, 그리고 전화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감각은 진짜다. 다만 전화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감각도 진짜다.

언어학이 하는 일 중 하나는 서로 다른 소통 방식을 해석하는 것이다. 폭력이라고 느끼는 사람과 온기라고 느끼는 사람 사이에서, 어느 쪽이 더 옳은지를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다르게 느끼는지를 이해하려는 것이다.

전화가 폭력이라면, 나는 오랫동안 선의로 폭력을 저질러 온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선의만큼은(우체국 부스 안에서 울면서도 수화기를 붙들고 있었던 그 간절함) 진심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같은 층의 한 교수는 연구실 문에 이런 안내를 붙여 둔다. "노크 하지 말고 들어오세요." 그 문 앞에 선 학생의 마음은 조금 더 가벼울 것이다. 노크하고 기다리는 몇 초의 긴장을 미리 걷어내 준 것이다. 소통은 때로 이렇게 작은 선언 하나로 달라진다.

그래서 이제는, 전화를 걸기 전에 한 번 물어야겠다.

"혹시 전화 괜찮으세요?"
#소통 #언어학 #전화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언어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며, 사회와 일상에서 오가는 말들이 어떤 의미를 만들고 어떤 힘을 가지는지 늘 궁금한 사람입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32인치 초대형 캐리어를 끌고 79세 엄마가 왔다  32인치 초대형 캐리어를 끌고 79세 엄마가 왔다
  2. 2 "나는 친일파 이인직의 자손입니다" 어느 뮤지션의 고백 "나는 친일파 이인직의 자손입니다" 어느 뮤지션의 고백
  3. 3 하영은 사과했지만... 숨어서 웃고 있는 이들 있다 하영은 사과했지만... 숨어서 웃고 있는 이들 있다
  4. 4 고구마순 나물, 그래 이게 여름의 맛이지 고구마순 나물, 그래 이게 여름의 맛이지
  5. 5 들기름에 쯔유만 있으면, 국수 한 그릇 후루룩 들기름에 쯔유만 있으면, 국수 한 그릇 후루룩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