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작품을 보고 아이와 나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김선아
그림 앞에서는 '나도 이 정도는 그릴 수 있겠다'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나는 어른의 냉소를 살짝 섞어 답했다. "언젠가 네가 유명해지면, 아무 의미 없이 그린 그림에도 사람들이 의미를 붙여주고 훌륭한 작품이 되는 거야" 는 이야기를 건넸고, 장미셸 바스키아의 공책의 글씨와 낙서의 사례를 떠올리며 함께 웃었다.
다음 전시실의 소머리(작품명 : 천년, 1990)는 처음 왔을 때보다 훨씬 더 부패해 있었다. 처음엔 가죽이라도 남아 있었는데, 이제는 그마저 사라진 채 뼈만 남아 있었다. 순간 흠칫 놀랐다. 현대미술의 의도가 이런 것일까, 여전히 어렵게 느껴졌다. 아이는 소머리와 파리를 보고 진저리를 치며 상어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관람을 마치고 우리는 손을 잡고 북촌을 걸었다. 크고 작은 갤러리마다 개인 작가들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고, 아이에게는 그것 또한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더운 날씨에 카페에 들러 빵과 커피를 나누며 숨을 돌렸다. 거리에는 가족 단위 나들이객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긴 행렬이 이어졌다.

▲ <비주얼 캔디 페인팅> 1993, 데이미언 허스트
김선아
미술관을 다녀온 아이가 만든 작품
전시가 끝났다고 해서 아이의 관람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집에 돌아온 저녁, 아이는 아크릴 물감을 꺼내 본인만의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눈으로 보고, 발로 걷고, 온몸으로 느꼈던 것들이 아이 안에서 조용히 익어 결국 손끝으로 흘러나온 것이다.
완성된 아이의 작품 설명을 들어보니 "현대인이 다양한 모습으로 고통을 견디며 살아간다"는 의미까지 담겨 있었다. 우리는 웃으며 훌륭한 '오마주'라며 아이를 칭찬했고, 그 의미를 잊지 않게 꼭 기록해두라고 이야기했다.

▲ 전시회의 비주얼 캔디 페인팅을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들 아이의 작품
김선아
어쩌면 이것이 아이와 함께 미술관에 가야 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설명하지 않아도, 억지로 의미를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작품을 흡수하고 자기만의 언어로 다시 풀어낸다. 우리가 보여준 것은 전시 하나였지만, 아이가 가져간 것은 훨씬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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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보기 싫었던 전시, 아이에겐 영감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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