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보기 싫었던 전시, 아이에겐 영감이 됐습니다

데이미언 허스트 전 보고 와서 아이가 만든 것... 모두 함께 즐긴 봄날의 북촌 나들이

등록 2026.04.20 17:56수정 2026.04.2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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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 죽음을 예술로 만든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 전시를 가다)

'데이미언 허스트'전을 지난 19일 다시 찾았다. 처음 혼자 다녀온 뒤 그 서늘한 여운을 떨쳐내느라 밝고 경쾌한 현대미술을 '맥스 시덴토프' 개인전 까지 다녀왔건만, 뜻밖의 계기로 다시 발걸음이 향했다. 아이가 핸드폰 화면에서 내 기사를 본 것이다.


"엄마, 나도 그 전시 상어 꼭 보고 싶어."

한 번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전시였기에 솔직히 망설였다. 하지만 평소 미술에 관심이 많은 아이의 간곡한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같은 전시를 두 번 보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 본 여러 전시들이 아이에게 자극이 된 건 분명하다. 얼마 전 본 인상주의 전시에서 본 그림이 미술학원 수업 시간에 나왔다며 반가워했고, 볼로냐 전시에 등장했던 작품이 온라인 기사에 실렸을 때도 본 거라며 눈을 빛냈다. 고전 미술과는 또 다른 일러스트 중심의 미술에도 관심이 커졌다. 이런 경험들이 아이에게 생생한 영감으로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2주 전에 가자고 이야기했지만 주말 예약이 쉽지 않아 겨우 일요일에 다녀올 수 있었다. 아이는 무료 입장이었지만 그 사실을 깜빡하고 표를 구입해 버렸다. 입장할 때 알아차리고 조금 아쉬웠지만, 그 또한 이날 나들이의 소소한 시작이었다.

알차게 채운 하루


 북촌길의 재미있는 벽화
북촌길의 재미있는 벽화 김선아

날 좋은 주말 오전, 다시 찾은 국립현대미술관은 혼자 왔을 때와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차 없는 길로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북촌 골목으로 이어졌다. 친구와 정문 앞에서 만나 들어가던 길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아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사진을 찍고, 후문을 통해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에는 봄꽃과 따뜻한 햇빛이 가득했다. 뒤로는 한옥과 어우러진 미술관이, 앞쪽으로는 경복궁과 국립민속박물관, 어린이박물관이 이어졌다. 전시를 본 뒤 그 주변까지 둘러보며 하루를 알차게 채웠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후문은 정문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후문은 정문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김선아

아이와 함께 본 전시는 확실히 달랐다. 같은 작품을 보면서도 전혀 다른 시선이 펼쳐졌다. 칼이 아래에 놓인 공을 보고 나는 '위험하고 기이한 작품'이라고 느꼈지만, 아이는 '공이 터지지 않도록 주변 환경을 이용해 버티는 것' 이라고 해석했다. 플라스틱으로 둘러싸인 구조물을 보고도 아이는 단번에 의미를 읽어냈다.

 같은 작품을 보고 아이와 나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작품을 보고 아이와 나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김선아

그림 앞에서는 '나도 이 정도는 그릴 수 있겠다'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나는 어른의 냉소를 살짝 섞어 답했다. "언젠가 네가 유명해지면, 아무 의미 없이 그린 그림에도 사람들이 의미를 붙여주고 훌륭한 작품이 되는 거야" 는 이야기를 건넸고, 장미셸 바스키아의 공책의 글씨와 낙서의 사례를 떠올리며 함께 웃었다.

다음 전시실의 소머리(작품명 : 천년, 1990)는 처음 왔을 때보다 훨씬 더 부패해 있었다. 처음엔 가죽이라도 남아 있었는데, 이제는 그마저 사라진 채 뼈만 남아 있었다. 순간 흠칫 놀랐다. 현대미술의 의도가 이런 것일까, 여전히 어렵게 느껴졌다. 아이는 소머리와 파리를 보고 진저리를 치며 상어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관람을 마치고 우리는 손을 잡고 북촌을 걸었다. 크고 작은 갤러리마다 개인 작가들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고, 아이에게는 그것 또한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더운 날씨에 카페에 들러 빵과 커피를 나누며 숨을 돌렸다. 거리에는 가족 단위 나들이객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긴 행렬이 이어졌다.

 <비주얼 캔디 페인팅> 1993, 데이미언 허스트
<비주얼 캔디 페인팅> 1993, 데이미언 허스트 김선아

미술관을 다녀온 아이가 만든 작품

전시가 끝났다고 해서 아이의 관람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집에 돌아온 저녁, 아이는 아크릴 물감을 꺼내 본인만의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눈으로 보고, 발로 걷고, 온몸으로 느꼈던 것들이 아이 안에서 조용히 익어 결국 손끝으로 흘러나온 것이다.

완성된 아이의 작품 설명을 들어보니 "현대인이 다양한 모습으로 고통을 견디며 살아간다"는 의미까지 담겨 있었다. 우리는 웃으며 훌륭한 '오마주'라며 아이를 칭찬했고, 그 의미를 잊지 않게 꼭 기록해두라고 이야기했다.

 전시회의 비주얼 캔디 페인팅을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들 아이의 작품
전시회의 비주얼 캔디 페인팅을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들 아이의 작품 김선아

어쩌면 이것이 아이와 함께 미술관에 가야 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설명하지 않아도, 억지로 의미를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작품을 흡수하고 자기만의 언어로 다시 풀어낸다. 우리가 보여준 것은 전시 하나였지만, 아이가 가져간 것은 훨씬 더 많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블로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데이미언허스트 #북촌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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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마주치는 장면, 문화와 예술, 요리, 사는 이야기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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