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AI 정책은 이미 백업의 씨앗을 심었다." 과연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협의체가 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2025년 11월 13일 열린 제2차 인공지능책임관 협의회 회의. AI 정부 인프라 거버넌스와 대한민국 인공지능행동계획 관련 부처 협의가 논의됐다. 사진=대통령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COPYRIGHT ALL RIGHTS RESERVED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다행히 한국이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25년 9월 18일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는 인공지능책임관 협의회를 출범시켰다. 국가 최고인공지능책임관은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이 맡았고, 48개 부·처·청·위원회에 책임관 지정이 완료됐다. 협의회는 각 부처의 AI 전략 수립, 이행 점검, 데이터 개방과 연계, 범부처 사업 발굴을 맡는 구조로 설계됐다.
2026년 2월에는 '대한민국 인공지능행동계획'도 공개됐다. 이 계획은 2026년부터 2028년까지의 국가 AI 실행 전략으로, 99개 실행 과제와 326개 정책 권고를 담고 있다. AI 혁신 생태계 조성, 범국가 AI 기반 대전환, 글로벌 AI 기본사회 기여가 3대 정책축으로 제시됐다.
또한 인공지능기본법은 2025년 1월 21일 공포돼 2026년 1월 22일부터 시행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 법이 국가 AI 경쟁력을 높이고 안전한 활용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법이라고 설명했다. 법에는 기본계획 수립, 산업진흥, 고영향 인공지능 관리, 생성형 인공지능 투명성 확보 등이 담겼다.
여기까지는 진전이다.
그러나 진전이 곧 완성은 아니다. 회의체가 있다고 백업시스템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책임관 명단이 있다고 정책이 저절로 굴러가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실제 권한과 예산, 데이터 접근권, 부처 간 조정력, 승계 절차다. 누가 회의를 주재하느냐보다 누가 실행을 책임지는지가 더 중요하다.
가장 훌륭한 AI 수석은 자신이 없어도 돌아가는 체계를 남기는 사람이다. 하 수석이 청와대에 남는다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국가 최고책임관의 역할을 더 투명하게 나누고, 부처별 책임관이 실질적 권한을 갖도록 해야 한다. AI 안전연구소, 데이터 거버넌스, 공공 AI 조달, 지역 AI 혁신거점, 보안 점검, 인재 양성 체계가 따로 놀지 않게 묶어야 한다. 한 사람이 회의를 잘 이끄는 체계가 아니라, 사람이 바뀌어도 결론이 축적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과 일본은 사람보다 제도를 앞세운다
미국도 정권이 바뀌면 AI 정책 방향이 출렁인다. 그러나 논쟁은 개인의 거취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장에서 벌어진다. 2026년 3월 백악관은 주별 AI 규제의 파편화를 막고 단일한 국가 정책 틀을 만들자는 입법 프레임워크를 내놓았다. 아동 보호, 전력 비용, 지식재산, 표현의 자유, 인력 양성, 혁신 촉진 등이 함께 다뤄졌다. 이 방향에 동의하느냐와 별개로, 미국의 AI 논쟁은 행정부·의회·주정부·법원이 부딪히는 제도적 공간에서 진행된다.
일본도 참고할 만하다. 2025년 5월 일본 국회는 AI 연구 개발과 활용을 촉진하는 첫 AI 법률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유럽식 강한 규제보다 기본 원칙과 정책 체계를 세우는 데 무게를 둔다. 총리가 이끄는 AI 전략본부를 두고, 모든 각료가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방식이다. 즉
한 명의 천재 관료에게 국가 AI의 명운을 맡기는 구조가 아니라, 정부 전체가 책임을 나누는 구조다.
한국이 배워야 할 점은 여기에 있다. 미국은 다층적 제도 충돌 속에서 방향을 잡고, 일본은 느슨하지만 넓은 정부 체계 안에서 책임을 분산한다. 한국은 속도와 집중력이 강점이다. 그러나 그 강점은 쉽게 약점이 된다. 특정 인물, 특정 회의체, 특정 수석에게 힘이 몰리면 결정은 빠를 수 있다. 하지만 지속 가능성은 약해진다.
AI 시대의 국정 운영은 빠른 결정만으로 이길 수 없다. 더 어려운 것은 오래 버티는 실행이다. 예산이 바뀌고, 장관이 바뀌고, 수석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집행 구조가 있어야 한다.
소버린 AI 경쟁은 사람보다 플랫폼의 싸움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글로벌 AI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AI가 국가 주권과 안보를 강화하는 핵심 기술이 됐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자국 AI 기업을 보유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투자 규모와 강한 규제 환경 때문에 한계에 직면해 있다고도 지적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전략적 자원 배분, 규제 정비, 민관 협력을 통한 체계 전환이다.
이 말은 곧 소버린 AI 경쟁이 한 사람의 능력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뜻이다. 컴퓨팅 기반, 데이터, 모델, 인재, 보안, 전력, 법제, 시장이 함께 돌아가야 한다. 어느 한 축이 빠지면 전체 속도가 늦어진다. 수석 한 명이 아무리 뛰어나도 데이터센터를 혼자 짓고, 인재 10만 명을 혼자 길러내고, 규제 혁신과 안전 장치를 동시에 완성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번 논란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하 수석의 거취를 계기로 한국 AI 거버넌스가 얼마나 튼튼한지 점검해야 한다. 부처별 책임관은 실제 예산을 움직일 수 있는가. 국가AI전략위원회는 각 부처 사업을 조정할 권한을 갖고 있는가. AI 기본법은 선언을 넘어 현장에서 작동하는가. 국회는 후속 입법과 예산 심사로 이 전략을 떠받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국회로 무대가 바뀐다면 해야 할 일
만약 하 수석의 역할이 국회라는 무대로 옮겨진다면, 그 의미는 분명해야 한다. 선거용 상징이 아니라 AI 정책의 제도화를 위한 통로여야 한다. 행정부 참모는 정책을 설계하고 조정한다. 국회는 법을 만들고, 예산을 심사하며, 정부 조직이 정권 변화와 인사 이동에도 계속 작동하도록 장치를 박아 넣는다.
따라서 국회에서 해야 할 일은 구호가 아니다. 인공지능기본법의 빈틈을 메우는 후속 입법, AI 안전과 산업 진흥을 함께 담는 예산 구조, 공공부문 AI 조달 기준, 데이터 공유 원칙, 지역 AI 거점 육성, 소버린 AI 인프라 투자, 인재 양성의 지속성을 법과 제도로 굳히는 일이다. 청와대와 당, 정부와 국회가 같은 그림을 공유할 때 국가전략은 선거용 구호를 넘어선다.
정치가 사람을 부르는 것은 자연스럽다. 선거는 늘 상징을 원한다. 부산에는 미래 산업의 언어가 필요하고, 민주당은 새로운 인물을 찾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 AI 전략은 선거 포스터의 배경 이미지가 아니다. AI 시대에 더 중요한 일은 누가 어느 지역에 나서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어디에 있든 정책이 계속 굴러가게 만드는 것이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AI 수석이 없어도 한국의 AI 정책은 작동하는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AI 강국을 말하면서도 아직 낡은 방식으로 국가전략을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백업시스템은 비상시에만 필요한 장치가 아니다. 평상시에 권한을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고, 다음 책임자를 키우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절차를 만드는 일이다. 이름만 있는 협의회가 아니라 실제로 움직이는 협의회, 선언만 있는 법이 아니라 예산과 현장으로 이어지는 법, 한 사람의 판단이 아니라 여러 기관의 축적된 판단이 필요하다.
사람은 자리를 옮긴다. 임기가 끝나기도 하고, 더 큰 역할을 맡기도 하며, 때로는 정치의 부름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국가전략은 사람의 이동 경로를 따라 흔들려서는 안 된다. AI 주권 경쟁에서 살아남는 나라는 영웅 한 명을 가진 나라가 아니다. 영웅이 떠난 뒤에도 계속 학습하고 실행하는 플랫폼을 가진 나라다.
하정우 수석의 거취가 무엇으로 정리되든, 이번 논란은 한국 AI 정책에 중요한 질문을 남겼다. 우리는 과연 플랜B(백업시스템)를 갖고 있는가. AI 수석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답이다.
[관련기사] 이충재 칼럼: AI 수석이 국회의원보다 덜 중요한가(https://omn.kr/2ho7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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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로 있으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주된 관심분야는 글로벌 위기관리 및 재난·안전학, 일본의 정치경제, 동아시아 국제관계, 국제기구론, 국경학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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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수석보다 더 중요한 것, 우리에게 플랜B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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