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요 카리요 작가와 워크숍 멕시코에서 판화가 어떻게 민중의 의사를 대변하고 현재 오악사카에서 여전히 예술적 어법으로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를 계속 낼 수 있는지에 대한 역사적 설명을 함께 들었다.
이안수
이곳의 매혹적인, 그러나 파괴적이기도 한 현상들에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나는 거리예술 작가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작가들을 만나기 위한 방법으로 그들의 거점이 되는 여러 판화작업실을 방문했다.
그중 한 작업실에서 거리에서 자주 보아온, 뛰어난 풍자와 은유로 권력의 모순을 비판하는 시각적 표현을 하고 있는 작품들을 마주했다. 그 작업실에서 마침내 그 작가와 대면하고 이름을 알아낼 수 있었다.
프리에토스 타예르(Prietos Taller) 작업실의 마요 카리요(Mayo Carrillo) 작가였다. 그녀는 기꺼이 나의 질문에 응했다. 긴 시간 대화를 마친 뒤, 그가 영어로 판화 워크숍을 진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아내는 직접 판화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다.
며칠 뒤, 우리는 그가 알려준 워크숍 시간에 맞추어 다시 공방을 찾았다. 작품과 작가를 더 깊이 이해하고 작품의 탄생 과정에 담긴 고충을 알기 위해서는 직접 해보는 것이 옳았다. 아내는 한국을 떠나기 전 민화 작업에 빠져지냈던 만큼 드로잉 정도는 문제없을 것이라고 여겼지만 판화를 위한 드로잉은 또 다른 문제였다. 판화는 잉크로 찍어서 최종 결과물을 내는 것인 만큼 표현이 반대로 되어야 했다.
그것은 국민학교(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고무 판화 작업에서 조각도를 잡아본 후 부엌칼 외에는 잡아본 적 없는 시간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작가는 아내의 구상과 드로잉을 보고 목판화 초보가 소화하기에는 벅찰 것이라고 했다. 선을 줄이는 것은 더하는 것보다 어려웠다. 작가의 충고대로 최대한 선을 줄인 드로잉을 나무판에 조각도로 표현했야 했다.
칼을 잡기 전, 작가는 멕시코 역사 속 판화가 거리예술의 무기로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오악사카에서 여전히 사회적, 정치적 발언의 도구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설명해 주었다.
조각도를 쥔 뒤에는 연습용 나무판에 선 긋기부터 시작했다. 젓가락을 처음 쥔 사람처럼 어색했다. 가로·세로선 새기는 연습을 하고 다시 면 파기를 연습했다. 깊게 파지 않으면 잉크가 묻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선의 밀도로 회색을 표현하는 법, 곡선을 다루는 법, 결을 살리는 법까지 익히고 드로잉에 칼을 댔다.
검은 면과 흰 면을 구분하는 것조차 혼란스러웠지만, 작가는 그때마다 조언과 시범을 보여주었다. 두 시간 넘게 칼을 다루자 힘을 주고 빼는 감각이 조금씩 손에 익었다. 쉼 없이 이어진 네 시간의 작업은 초보에게는 벅찼다. 결국 디테일에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잉크를 먹이고 프레스기를 통해서 나온 이미지에 환호하는 것으로 다섯 시간에 걸친 아내의 도전이 끝났다. 이미지에는 동지애를 가지고 함께 나라 밖 순례를 이어가자는 우리 부부의 결심이 담겼다.

▲판화워크숍 판화는 멕시코 역사에서 비판, 풍자로 사회운동과 민중예술의 중요한 도구로 자리 잡았다.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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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목판화 체험한 아내가 5시간 만에 완성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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