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양념으로 만든 한국김치 아끼고 아낀 한국에서 가져온 양념을 꺼냈다.
전세정
그 때 먹은 김치 맛을 아직 기억한다. 한 입 먹으면 부담 없는 담백한 맛이 흐르다가, 씹다 보면 묵직한 젓갈 맛이 올라오고, 마지막에 기분 좋은 매운 기운이 혀 끝에 남는다. 그런데 시원하기까지 하다. 한 가지가 아니라, 차례로 오는 맛이었다.
결혼 후, 휴가로 1년에 한번 한국에 가는 날은 그 맛을 다시 만나는 시간이다. 내가 그렇게 잘 먹으니, 딸도 자연스럽게 김치를 먹게 됐다. 유아식이 시작될 무렵부터 같이 먹었고, 이제는 도시락에도 꼭 김치를 넣어야 밥을 먹는다.
어머님은 그런 우리를 보시고 김장철마다 양념만 따로 얼려두신다. 한국을 떠나본 사람은 알 것이다. 짐 중에 제일 무거운 게 뭔지. 그래도 트렁크 한 편은 늘 그 양념 자리다. 다른 짐을 줄여서라도 기어코 가져 와야 한다.
그러니 그 양념은 쉽게 쓰지 못한다. 원래 아무 김치나 다 잘 먹는 사람이었다. 김치가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맛이 기준이 되어버렸다. 손으로 길게 죽죽 찢어 먹고, 들기름에 볶아서 먹고, 두부를 부쳐 곁들이고, 김밥을 쌀 때도 쫑쫑 썰어 꼬옥 짠 김치를 넣어야 만족이 됐다. 김치 없이는 못 살게 되었으니 이 정도면 저주가 아니냐고 남편이 농담을 하기도 했다.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어머님 양념은 아껴야 했다. 처음엔 그 양념으로 한 번 담그고, 다음엔 여기서 산 재료로 비슷하게 따라 해봤다. 처음엔 많이 틀렸다. 너무 짜거나, 텁텁하거나, 뭔가 하나가 빠진 맛이었다. 그래도 계속 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다. 한국 음식이 그리운데 그 맛이 그리우면 결국 만들게 되어 있다. 나만의 방식으로 따라 만들기 시작한 것이 김치와의 시작이었다.
김치 만드는 날 부른 이웃
그렇게 아끼고 아끼다 지난주 수요일, 마지막 남은 양념 한 덩어리를 꺼냈다. 냉동실에서 냉장고로 옮기면서부터 설레기 시작했다. 남편은 그게 아직도 남았냐고 어차피 김치는 다 김치지 뭐 했다. 못 들은 척 하고, 배추를 살폈다. 역시 어머님 양념이 들어간 김치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냥 그 자체로 한 그릇이 되는 맛이었다.
김치를 하는 날에는 돼지고기를 삶는다. 6년째 옆집에 사는 일본인 이웃에게 연락을 한다. 처음 만났을 때는 영어와 인도네시아어를 섞어 소통했는데, 그녀가 한국어를 배운 이후로는 한국어만 한다. 그동안은 내가 만든 김치만 줬다. 이번엔 진짜 한국 김치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오늘 김치를 조금 만들었는데, 저녁으로 같이 드실래요?"
잠시 뒤 답장이 왔다. 먹고 싶다고 했다. 그날 저녁, 우리는 김치를 나눠 먹었다. 사쿠라는 돼지고기에 김치를 올려 한 입 먹더니 김치맛이 그전과 다르다고 했다. 나는 진짜 한국 김치라고 강조했다. 나눔도 끝났다. 그제야 어머님께 사진을 찍어 보낸다. 여러 각도로 찍으며 한참 골랐다. 잠시 뒤 , 답장이 왔다.
"윤기가 흐르네 색깔도 괜찮고. 맛있게 먹어."
뚜껑을 닫고 냉장고에 넣었다. 식탁에 앉았다. 김치 앞에서 잠시 경례를 하고, 손으로 쭉 찢어 밥 위에 올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
자카르타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습니다. 낯선 도시에서 살아가는 일상의 장면들을 기록합니다.
공유하기
시어머니표 양념 김치, 일본인 이웃에게 맛보여 줬더니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