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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산을 없앤 빙수 가게 아저씨의 최후

정현진 작가의 <얼음산 빙수 가게>를 읽고

등록 2026.04.24 16:55수정 2026.04.2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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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 손자에게 그림책을 읽어줍니다. 그림책 속에서 나의 동심을 발견하기도 하고 삶의 지혜를 얻기도 합니다.[기자말]
봄인가 싶더니 금세 날이 더워지기 시작했다. 계절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요즘, 봄이 사라지고 여름이 그 자리를 잠식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스쳤다. 그런 생각 위에서 한 권의 그림책을 읽었다. 정현진 작가의 <얼음산 빙수 가게>(2024년 6월 출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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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진 작가는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온 창작자다. 특히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하면서도 어른에게 더 깊은 질문을 던지는 서사를 구축해 왔다. 단순한 이야기 구조 안에 인간의 욕망, 자본의 논리, 환경 문제를 겹겹이 포개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얼음산 빙수 가게> 역시 그러한 작가적 문제 의식이 응축된 작품이다.


달콤함이 앗아간 하얀 세계

거대한 얼음산 밑자락, 아저씨의 빙수 가게는 평화로운 공간이었다.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시작된 차갑고 달콤한 빙수는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가게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빙수 가게는 점점 확장되었다. 새 기계가 들어왔고, 생산은 빨라졌으며, '얼음산 아저씨 빙수'는 세계로 뻗어 나가는 프랜차이즈가 되었다. 아저씨는 얼음 말고도 많은 것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빙수가게가 점점 높아지며 풍요로운 이면에서 얼음산은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빙수가 더 화려해질수록, 더 많이 팔릴수록, 산에 기대어 살던 동물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떠나야 했다. 하얀 세계는 달콤함에 잠식되고 있었다. 함께 책을 보던 손자 로리가 묻는다.

"빙수는 카페에 가면 있는데 왜 얼음산을 쪼개서 만들어요?"

그렇다, 로리는 카페에서 빙수를 먹어본 적이 있다. 그러니 얼음산을 깨는 아저씨가 이상했을지도 모른다.


"카페에 있는 빙수도 사실은 얼음으로 만드는 거야. 그 얼음이 만들어지려면 물도 필요하고, 전기도 많이 써야 하고, 지구의 자원도 조금씩 쓰이게 돼. 그런데 책 속 아저씨는 그걸 더 많이, 더 빨리 만들고 싶어서 얼음산까지 쪼개버린 거야. 왜냐하면 사람들이 많이 사주면 더 많이 만들고 싶어지거든."

기울어진 해결책, 가속화되는 파괴


정현진 작가는 위기 앞에서 인간이 선택하는 방식이 얼마나 단순하고도 어리석은지를 날카롭게 보여준다. 얼음산이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아저씨는 '가격을 올리고 양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자본의 논리를 그대로 따랐던 것이다.

얼음산이 녹는 것을 막기 위해 선풍기와 에어컨을 쉼 없이 돌렸지만, 그 기계들이 내뿜는 열기는 오히려 얼음산을 더 빠르게 녹였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또 다른 문제를 키우는 역설이 반복되었다.

이 장면은 오늘날 기후위기를 대하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 더위를 막고, 더 많은 소비로 불편을 덮으려는 방식은 결국 위기를 가속화 시키는 선택이 되고 있었다.

"빙수를 만든 것처럼 얼음산을 만들 순 없나요?"

손자가 안타깝다는 듯 물었다.

"빙수는 만들 수 있지만 얼음산은 사람이 만들수는 없어. 자연이 만들어줘야 해. 사람이 얼음산을 만들려고 하면 더 많은 것들이 파괴가 될 걸? 그래서 자연은 아껴야 하는 거야."

아이가 알아들었을까. 눈만 깜빡이며 생각한다.

우리가 먹는 것은 빙수인가, 미래인가

얼음산이 거의 사라졌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더 아이러니해졌다. '마지막 자연산 빙수'라는 이름이 붙자 오히려 더 열광했다. 희소성이 가치가 되는 순간, 파괴는 상품으로 전환되었다.

북극곰 가족이 위태롭게 떠내려가는 장면조차 사람들에게는 '인증샷'의 배경에 불과했다. 고통은 소비의 장식이 되었고, 비극은 경험의 일부로 소비되었다. 얼음산이 사라지자 아저씨는 고민에 빠진다. 더 이상 빙수는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가 먹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고. 그것은 단순한 빙수가 아니라, 다음 세대가 살아갈 환경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사실이다.

이 이야기는 결코 허구로만 머물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지구 평균 기온은 계속 상승하고 있고, 북극의 빙하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이상기후는 일상이 되었고, 봄과 가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폭염과 폭우는 예외가 아니라 반복되는 계절의 일부가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도한 생산과 소비, 끝없는 성장 중심의 경제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얼음산 빙수 가게> 속 아저씨가 기계를 멈추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편리함을 내려놓지 못한 채 위기를 키우고 있다.

한정판이 되기 전에 멈춰야 할 것들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은 강하게 여운을 준다. 모든 것이 녹아버린 바다 위에서 아저씨는 작은 얼음 조각 위에 서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수많은 북극의 동물들이 눈물을 흘리며 바닷속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후회는 이미 늦은 것이다. 그러나 사업 수완이 특출난 이 아저씨는 이미 할아버지가 되어 다른 사업을 구상한다. 할아버지의 사업 구상은 얼음산에서 바닷물로 옮겨 간다. '씨솔트 할배 주스'를 만든 것이다. 과연 얼음산처럼 바닷물도 사라지는 날이 올까?

이 작품은 환경 이야기를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돌아보게 한다. 성장과 소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삶이 결국 무엇을 잃게 만드는지를 묻고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언젠가 '마지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 그것이 이 그림책이 던지는 가장 서늘한 경고다.

더 늦기 전에 멈춰야 한다. 손에 쥔 달콤함을 잠시 내려놓고,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바라보아야 한다. 얼음산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아직 남아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얼음산 빙수 가게

정현진 (지은이),
올리, 2024


#그림책 #빙수 #얼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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