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4.22 16:13수정 2026.04.2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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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고 새 지저귀는 아름다운 계절, 나들이나 여행하기 딱 좋은 날들이 이어진다. 들로 산으로 자연을 즐기는 지인들의 봄꽃 사진이 화려하게 전해질 때, 나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 매일 꽃나무를 즐기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식물 바보로 살아온 나는 안타깝게도 흐드러진 벚꽃도 겨우 50이 넘어서야 눈에 담은 듯하다. 왜 그랬을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나, 아마 20대는 그 자체가 꽃송이어서? 30~40대는 출산, 육아, 살림에 지쳐서? 그럴지도 모른다며 헛웃음을 짓는다. 아리송한 일이나 이제라도 봄꽃을 즐길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진달래, 개나리 밖에 몰랐던 내가 복사꽃, 라일락, 조팝나무, 황매화, 모과나무 꽃, 겹벚꽃, 박태기나무꽃, 때죽나무, 박달나무, 꽃사과 나무 등을 줄줄이 꾀고 있다. 강아지와 산책하며 나무들을 쳐다보고, 꽃들을 다시 보며 걷는 산책 길이 얼마나 즐겁고 감사한지 모른다.

▲ 복사꽃이 이리 예쁜 줄 몰랐다. 올 여름 복숭아를 먹을 때 많이 생각날 것 같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한현숙
시시각각 느끼는 자연의 아름다움
우리 아파트는 재건축한 곳이라 30여 년 전에 심은 나무들이 즐비하다. 2000세대 이상이 사는 단지 내, 차 없는 길이 조성되어 산책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나, 사실 강아지를 입양하기 전에는 우리 동 주변을 벗어나지 못했다. 출퇴근을 하거나, 마트를 갈 때 빼고는 굳이 아파트 구석구석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강아지와 산책을 하게 되면서, 이길 저길이 이어져 동산이 나오고, 광장의 분수를 지나치면 정자 위 소나무가 펼쳐지고, 아름다운 꽃향기가 흩어지고, 화사한 햇빛이 쏟아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오래된 나무들이 보여주는 사계절을 시시각각 느낄 수 있어 정말 좋았다.
꽃나무에 빠져 하루가 즐겁고 감사한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강아지의 발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세상 부러울 게 없을 정도로 마음이 채워진다. 계절이 바뀜을 꽃으로, 이파리로, 열매로, 낙엽으로 시시때때로 보여주니 청량한 아침 공기와 함께 충만한 행복을 느낀다.
목련과 벚꽃이 무성한 꽃잎을 날리며 사라진 지금, 좀 더 적극적으로 꽃나무에 관심을 기울여 보았다. 꽃이 너무 예뻐 발돋움하여 사진을 찍고, 이름 모를 꽃의 이름을 찾아보니 그저 1시간 산책을 했을 뿐인데, 아주 좋은 곳을 여행하고 온 듯 '힐링'이 되었다.
처음 마주한 꽃은 황매화이다. 어쩜 이리 달걀노른자처럼 선명하고, 병아리처럼 귀여운 꽃이 나풀거릴까 싶어 검색하니 황매화라 알려준다. 두꺼운 식물도감을 가지고 다니는 듯 스마트폰으로 궁금증을 바로 해소할 수 있으니 참 좋은 세상이다. 금매화라고도 불리는 황매화는 숭고, 고귀, 왕성의 꽃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일본이 원산지이며 음지와 양지를 가리지 않고 잘 자라는 식물이라 관상용으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 황매화, 겹벚꽃, 복사꽃, 조팝나무 꽃들이 나에게로 와 의미 있는 향기를 풍긴다.
한현숙
우리 동 분리배출장 앞에 서 있는 나무, 매년 보며 예쁘다만 연발했지 복사꽃인 줄은 몰랐다. 이름만큼 정겨운 복사꽃이 이리 예쁘다니...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솟아 오른 꽃잎이 그저 귀엽고 아름다웠다. 복숭아가 정말 열리려나 기대감이 가득 찼다. 가을에 잊지 않고 눈여겨봐야겠다. 복사꽃나무 한 그루지만 복숭아꽃이 만발한 무릉도원을 떠올릴 만큼 곱다.
내가 애정하는 겹벚꽃도 인사를 한다. 송이송이 귀여운 벚꽃이 꽃비로 흩날리고 나면 그 섭섭함을 언제나 겹벚꽃이 채워준다. 얇은 화선지를 여러 장 말아 꽃잎을 채우듯 꽃잎이 여러 겹으로 둘러싸 꽃송이를 만다. 수년 전, 이 나무에 꽃이 필 때 지인이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돌아가셨다. 그 후 나는 해마다 이 꽃이 피면 그 선생님을 만난 듯 꽃처럼 아름다웠던 그분을 추모하게 되었다. 한 그루의 겹벚꽃나무이나, 나에게는 겹벚꽃으로 유명한 그 어떤 곳보다 남다른 의미를 지닌 꽃이 피었다.
또 다른 꽃을 보고 무슨 꽃인가 찾으니 조팝나무꽃이었다. 그 유명한 조팝, 이팝나무를 이름만 알고 있었다니... 쌀알처럼 퍼져 있는 모양이 튀긴 좁쌀을 붙여놓은 것 같다 하여 조팝나무라 불린다. 산기슭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란다고 한다. 산책 길 곳곳에 무더기로 핀 모습이 정말 소담스럽고 예뻤다.
조팝나무 옆 라일락도 못 알아본 나는 식물바보가 맞았다. 알싸한 라일락 향기가 고교 시절을 소환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라일락 향기 맡으며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가! 나는 그동안 무엇에 바빠 라일락도 잊었던가. 키 작은 연한 보랏빛의 라일락 꽃말이 젊은 날의 추억이라니 우연의 일치가 놀라웠다. 라일락 향기가 추억과 함께 오래 머물렀다.
산책길에서 만난 민들레
산책 길에서 본 민들레도 제각각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같은 꽃, 다른 장소. 가리지 않고 생명력을 발휘하는 민들레가 기특했다. 풀밭, 나무 옆, 심지어 시멘트 사이에서도 민들레는 피어났다. 혼자 있든, 무리 지어 있든 그 존재감을 알리는 민들레! 기어코 뿌리내려 꽃을 피워낸 민들레에게 박수를 보낸다.
민들레의 꽃말은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척박한 곳에서 살아내면서도 이런 꽃말을 가지고 있다니, 대단한 꽃이다. 생전 민들레 뿌리를 약용으로 쓰시던 엄마가 생각났다. 기관지염, 위염, 간염 등을 치료하는 약재로 사용된다고 한다. 요즘에는 민들레의 꽃과 뿌리를 말려서 차로 마시기도 한다는데, 기침으로 고생하던 엄마 생각에 마음이 저렸다.

▲ 어디에 자리를 잡든 강인한 생명력으로 피어나는 민들레, 기특하고 귀엽다.
한현숙
다시 걸음을 옮기니 박태기나무, 때죽나무, 꽃사과나무가 줄을 서 있고 그 끝에 자주목련이 잎을 떨구고 있다. 목련이 인사하며 떠난 지 꽤 오래되었는데 자주 목련이 이제야 잎을 떨구고 있다. 같은 나무라도 꽃 빛깔이 다르고, 꽃송이가 또 다르고 역시 자연은 어느 하나 똑같은 게 없어 신비롭기만 하다.
박태기나무는 정말 왕성한 느낌이 든다. 다닥다닥 붙은 꽃이 멀리서 보면 꽃방망이처럼 보인다. 밥을 튀겨 놓은 밥티기를 닮았다고 하고, 꽃봉오리가 구슬을 닮았다 하여 북한에서는 구슬꽃나무로 불리고, 유다의 죽음과 관련 지어 유다나무로도 불린다고 한다. 꽃자루가 없어 꽃이 가지를 감싸 안은 모양인데 꽃에는 독성이 있다 하니 유의해야 한다.
내가 복사꽃 다음으로 예뻐하는 꽃을 검색하니 벚나무, 때죽나무 등 때마다 다른 이름을 알려준다. 꽃사과나무와 더 비슷한 모습인데 위로 모여 하늘로 쭉쭉 향한 가지에 핑크 물이 떨어진 듯한 꽃잎이 정말 마음에 든다. 눈여겨보았다가 가을에 열리는 열매로 나무의 이름을 기억해야겠다.

▲ 라일락, 박태기나무, 사과꽃나무, 자목련이 눈길을 끈다. 이름을 알게 되니 꽃들이 더 정답게 느껴진다.
한현숙
눈으로만 즐겨도 예쁜 꽃인데, 그 이름을 찾아 관심을 기울이니 김춘수의 시처럼 '나에게로 와서 아름다운 꽃'이 되었다.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눈짓이 되어 잊히지 않는 의미가 된 것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곳곳이 행복과 기쁨으로 가득하다. 오늘도 가까이에 행운의 날이 펼쳐지고 있으니 정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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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 국어 교사, 다음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 가족여행, 반려견, 학교 이야기 짓기를 좋아합니다. <엄마를 잃어버리고>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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