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에너지환경부가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배포한 공식 홍보물. 오후 8시부터 10분간 진행되는 전국 소등 행사의 참여를 독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매년 4월 22일은 전 세계가 하나뿐인 행성의 안녕을 묻는 '지구의 날(Earth Day)'이다. 1970년 미국 게일로드 넬슨 상원의원과 하버드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시작된 이 민간 운동은 이제 단순한 캠페인을 넘어 과학적, 사회적 전환점을 시사하는 거대한 상징이 되었다.
과거 우리는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을 1.5℃ 이내로 억제해야 한다는 '파리 협정'의 목표를 미래의 과제로 여겨왔다. 그러나 최근 기후 과학의 지표는 훨씬 절망적이다. 2024년과 2025년을 거치며 이미 전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은 임계점인 1.5℃를 상회하여 1.55℃ 안팎을 넘나드는 '기후 비상사태'에 진입했다.
과학자들은 우리가 이미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의 초입에 서 있으며, 영구 동토층의 해빙으로 인한 메탄 방출과 해류 순환의 붕괴가 눈앞의 현실이 되었음을 과학적 데이터로 증명하고 있다. 지구의 날은 이러한 과학적 경고에 기반해 인류의 즉각적인 행동 변화를 촉구한다. 실제로 매년 이날 진행되는 '전국 소등 행사'는 실질적인 에너지 절감 효과를 거둔다.
환경부와 에너지시민연대의 통계에 따르면, 전국적인 10분 소등만으로도 약 50만 kWh 이상의 전력이 절감되며, 이는 약 25만kg에 달하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하는 효과와 맞먹는다. 이는 소나무 약 3만 8000그루가 1년 동안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량과 동일한 수준이다.
지구의 날은 현재 190개국 이상의 국가에서 매년 10억 명 이상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글로벌 환경 운동이다. 전 세계 인구의 약 12~13%가 이날만큼은 지구를 위한 행동을 약속한다는 뜻이다.
국내에서도 전국적으로 소등 행사가 진행되었다. 이날 오후 8시, 대한민국 곳곳의 랜드마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불을 껐다. 서울의 숭례문과 남산타워를 비롯해 부산 광안대교, 수원 화성행궁, 여수 돌산대교 등 전국 주요 상징물들이 10분간 암흑에 잠기며 기후 위기의 엄중함을 알렸다.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민간의 참여도 뜨거웠다. 롯데호텔앤리조트 등 대형 숙박 시설과 글로벌 패션 브랜드 에이치앤엠(H&M)을 포함한 주요 기업의 본사 건물 및 매장들이 이번 소등 행사에 대거 동참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드러냈다.
기후 위기보다 시급한 시험 위기
대한민국의 대학생인 내가 목격한 풍경은 이 거대한 통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구의 열기보다 뜨거운 것은 도서관의 열기였고, 기후 위기보다 시급한 것은 당장 내일 치러질 중간고사였다. 취재를 위해 캠퍼스 곳곳에서 동기들에게 "오늘이 지구의 날인 거 알아?"라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대부분 '무지' 혹은 '망각'이었다. 동기 A씨는 "지구의 날? 들어본 것 같긴 한데 오늘인 줄은 몰랐다. 지금은 전공 서적 훑어보기도 바쁘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동기 B씨는 "알고는 있었지만, 시험 기간에 소등 행사에 참여하거나 캠페인에 나갈 여유가 어디 있겠느냐"며 "지구 걱정은 시험 끝나고 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23일 오전 3시 29분, 동기들이 있는 단체 채팅방에 '지구의 날을 어떻게 보냈냐'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채팅방의 반응은 현실적이었다. 한 동기는 "학교라 불을 끌 수 없었다"며 멋쩍어했고, 고등학교 때까지는 소등 행사에 참여했다는 또 다른 동기는 "올해는 지구의 날이었는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갔다"며 반성 섞인 목소리를 냈다.
기숙사 소등 공지를 확인하고도 밖에서 공부하느라 참여하지 못했다는 답변도 있었다. 전 세계 10억 명의 참여라는 통계가 무색하게, 대학생들에게는 10분의 소등조차 허락되지 않는 '중간고사 기간'의 압박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 동기들과 함께 있는 채팅방에 '지구의 날을 어떻게 보냈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들이다.
김주은
사람들은 우리 세대를 흔히 '기후 세대'라고 부르며 환경 민감도가 높다고 치켜세우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대학생들에게 환경 보호는 '심리적 사치'에 가까워 보였다. 취업난과 학점 경쟁이라는 시스템 속에 갇힌 청년들에게 지구의 내일은 자신의 내일보다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무관심 사이로 보인 유일한 '진심'
이러한 무관심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구의 날을 지킨 동기도 있었다. 취재 중 학교에서 만난 동기 C씨는 항상 텀블러를 사용하는 등 환경 습관을 실천해 온 학생이다. 시험 기간임에도 '지구의 날'에 주목하여 지구의 날을 소개하는 SNS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렀다.
C씨는 "시험 기간이라 바쁜 건 모두가 마찬가지지만,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도 결국 안전한 터전에서 살기 위해서가 아니겠느냐"며 "거창한 운동은 아니더라도 오늘 하루만큼은 지구를 생각하여 텀블러를 쓰고, 불필요한 이메일을 삭제하는 디지털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실천을 할 것이며, 특히나 8시부터 진행되는 소등 행사에 최대한 참여할 것"이라며 자신의 계획을 밝혔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개인의 실천이 통계적으로는 미미할 수 있지만, 이런 데이터가 모여야 기업과 정부가 대중의 요구를 파악하고 시스템을 바꾼다"고 덧붙였다. C씨는 인터뷰 후 시험공부를 위해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 동기 C씨는 평소 텀블러를 사용하고 지구의 날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김주은
인식 확산과 홍보 전략의 부재
취재 결과, 대학생들의 낮은 참여도는 개인의 도덕성 문제라기보다 사회적 홍보와 시스템의 부재에서 기인한 측면이 컸다. 대학생들을 고려한 맞춤형 홍보나 학생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프로그램, 지구의 날을 맞이하여 환경 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법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보였다.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1.55℃라는 구체적인 숫자로 증명된 생존의 문제다. 대학교와 정부는 청년들이 학업 중에도 기후 행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인프라를 구축하고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지구의 날은 일 년에 단 하루지만, 우리가 발 딛고 선 지면의 온도는 365일 실시간으로 상승하고 있다.
"지구는 선조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후손에게서 빌려온 것이다."
이 격언은 2026년 현재 우리에게 더 이상 비유가 아닌 과학적 경고로 다가온다. 대학가의 지성이 단순히 개인의 성적을 넘어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행성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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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학교에서 의상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 기자입니다. 아름다운 옷만큼이나 아름다운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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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걱정은 시험 끝나고..." 지구의 날 '10분 소등'도 어려운 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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