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봇 임대료 폭락의 의미
이승환
15만 개 업체가 동시에 뛰어들다
중국 기업정보 플랫폼 치차차의 통계에 따르면, 2025년 한 해에만 중국에서 로봇 대여 관련 업체가 3만 8200곳 새로 생겼다. 전년 대비 55.7% 증가로, 최근 10년 새 가장 많은 수치이다. 지금 이 순간 중국 전역에서 로봇을 빌려주는 사업자만 15만 3000곳이 넘는다.
비교해보면 감이 온다. 우리나라 전국 편의점이 약 5만 5000곳이다. 그 세 배가 넘는 업체들이 단 한 가지 사업, 바로 '로봇 대여'에 뛰어든 것이다. 그 결과는 예상 가능했다.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 가격은 떨어진다.
2025년 초 하루 3만 위안(650만 원)을 호가하던 휴머노이드 대여료는 1년 만에 3000위안(65만 원)으로 내려앉았고, 저가 기본형은 1000위안(21만 원) 아래까지 떨어졌다. 로봇견은 하루 78위안, 우리 돈 약 1만 7000원짜리도 등장했다. 선전의 로봇 대여 집적지였던 화창베이, 세계 최대의 전자 부품 상가로 유명한 그곳에서 지난해 하반기에 가맹 점포의 90% 이상이 문을 닫았다. 한때 번성하던 거리가 채 1년도 되지 않아 텅 비었다.
설날에만 팔리는 로봇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점포가 90%나 폐업하는 와중에,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올해 춘절(설) 기간, 중국 로봇 대여 플랫폼 징톈주의 주문량은 전월 대비 70% 급증했고, 누적 주문은 5000건을 넘겼다. 징둥닷컴의 로봇 대여 매출은 설 연휴 동안 전월 대비 130% 뛰었다.
그런데 조금만 들여다보면 문제가 보인다. 수요가 설날, 개업식, 기업 행사, 쇼핑몰 이벤트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3월, 4월, 여름철 비수기에는 그 비싼 로봇이 창고에서 잠을 잔다.이것은 마치 '핼러윈 의상 대여점'과 비슷한 구조이다. 10월에는 줄을 서서 빌려가지만, 나머지 11개월은 옷걸이만 가득하다. 고정 자산인 로봇 구입비, 유지비, 인건비는 365일 나가는데, 수익은 특정 시기에 몰린다. 손익분기점을 맞추기가 구조적으로 어려운 사업이다.
"대여료는 미끼다"라는 고백
항저우의 한 로봇 대여 업체 관계자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하루 대여료는 주문을 끌어오기 위한 미끼에 가깝습니다. 실제 수익은 부가 서비스에서 나옵니다."
로봇 한 대를 보내려면 엔지니어 한 명이 함께 가야 한다. 원격 조작, 현장 운용, 문제 발생 시 즉각 대응을 위해서다. 그러니 인건비, 물류비, 정비비를 합치면 저가 대여료로는 도저히 남는 게 없다. 결국 살아남는 사업 모델은 '로봇 대여'가 아니라 '로봇을 포함한 서비스 패키지'이다. 오퍼레이터 교육, 행사 기획, 유지보수 계약, 커스텀 퍼포먼스 설계까지 묶어서 파는 것이다.
로봇은 그 패키지를 팔기 위한 '눈에 보이는 도구'에 불과하다. 이 구조는 낯설지 않다. 과거 드론 항공촬영 시장도 똑같은 과정을 거쳤다. 드론 가격이 폭락하자 드론 장사는 망했고, '드론 + 촬영감독 + 편집 + 납품'을 패키지로 파는 회사들이 살아남았다. 역사는 반복된다. 하드웨어는 상품화되고, 서비스와 운영 역량이 진짜 경쟁력이 된다.
이 현상이 주는 의미를 살펴보자
첫째, 가격 붕괴는 실패가 아니라 '학습 비용'이다
여기서 시각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로봇 대여 시장이 과잉 경쟁으로 수익성이 무너지는 현상을 단순히 '거품 붕괴'로 보면 절반밖에 못 보는 것이다. 지금 중국에서 15만 곳이 넘는 업체들이 로봇을 들고 거리로 나가 행사장과 쇼핑몰과 산업단지에 투입하면서,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쌓이고 있다. 로봇이 사람 곁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떤 지형에서 넘어지는지, 어떤 명령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수십만 시간의 실전 데이터가 지금 이 순간에도 수집되고 있다.
AI 로봇을 더 똑똑하게 만들려면 이 데이터가 필수이다. 시뮬레이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진짜 세상, 진짜 사람, 진짜 환경에서 부딪히며 얻은 데이터라야 로봇의 두뇌를 진화시킬 수 있다. 가격이 폭락한 로봇 대여 시장은 사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피지컬 AI 실험장'이다. 중국은 지금 돈을 잃으면서 데이터를 사고 있다. 그리고 그 데이터는 나중에 훨씬 비싼 값을 받게 될 것이다.
둘째, 상위 두 기업이 시장의 80%를 먹는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2026년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생산량이 전년 대비 최대 94%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런데 이 엄청난 생산량 중 약 80%를 단 두 회사가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도 함께 나왔다. 유니트리와 지위안(애지봇)이다. 업체 수는 15만 곳이지만, 생산·기술·브랜드는 극소수 상위 기업으로 빠르게 집중되고 있다.
이 구조는 스마트폰 초기 시대와 닮아 있다. 2007~2010년 사이 전 세계 수백 개 휴대폰 제조사가 있었지만, 결국 애플과 삼성이 이익의 대부분을 가져갔다. 중국 로봇 시장도 같은 경로를 걷고 있다.유니트리는 이미 공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2026년 3월 상하이 증권거래소에 약 9100억 원 규모의 IPO를 신청했다. 2025년에 휴머노이드만 5000대 이상 출하했고, 2026년에는 최대 2만 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금 화창베이에서 90%가 폐업하는 동안, 이 회사는 반대로 생산라인을 늘리고 있다.
셋째, 지금의 '행사 로봇 쇼'는 미래의 공장을 준비하는 리허설이다
지금 중국에서 로봇이 가장 많이 투입되는 곳은 설날 행사장, 쇼핑몰 개업식, 기업 홍보 이벤트이다. 솔직히 말하면 '구경거리' 용도가 크다. 그런데 바로 이 과정에서 중요한 일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사람 많은 공간에서 로봇이 부딪히지 않고 움직이는 법, 다양한 바닥 재질과 경사로를 극복하는 법, 명령을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표준적인 방식이 자연스럽게 정립되고 있다. 안전 사고가 발생하면 규제가 만들어지고, 유지보수 방식도 표준화된다.
이 모든 것이 향후 공장과 물류센터와 병원에 로봇을 투입할 때 필요한 기반이다. 지금 중국에서 벌어지는 '싸구려 행사 로봇 쇼'는 겉으로는 재롱잔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거대한 파일럿 테스트이다. 2028년, 2030년 이후 공장에 투입될 로봇들이 지금 이 행사장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것이다.
넷째, 결국 플랫폼이 이긴다
징톈주의 공동 의장 리리헝은 이렇게 말했다. "대규모 응용의 열쇠는 개별 프로젝트의 성공이 아니라, 전국 단위로 지속 작동하는 서비스망 구축이다." 이 한 문장에 미래 로봇 산업의 승부처가 담겨 있다. 로봇 한 대를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전국 어디서든 빌리고, 관리하고, 업그레이드하고, 수익을 나눌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더 큰 게임이다.
이건 마치 우버가 '자동차 제조사'가 아니라 '이동 플랫폼'으로 돈을 번 것과 같은 논리이다. 에어비앤비는 호텔을 짓지 않았지만 숙박업의 지형을 바꿨다. 로봇 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로봇 하드웨어 제조사보다 로봇을 연결하고 운영하고 서비스하는 플랫폼 사업자가 장기적으로 더 큰 가치를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다섯째, 진짜 혁명은 소리 없이 온다
1990년대 말, 인터넷 붐 시절에 수천 개의 닷컴 기업이 생겨났다가 대부분 망했다. 그때 "인터넷은 거품이었다"고 결론 낸 사람들은 그 이후 20년을 설명하지 못했다. 거품은 터졌지만, 인터넷은 세상을 바꿨다. 지금 중국의 로봇 대여 시장도 똑같은 국면에 있다. 15만 업체가 난립하고, 90%가 폐업하고, 가격이 95% 폭락하는 이 혼돈 속에서 로봇 산업의 인프라가 조용히 쌓이고 있다. 데이터가 쌓이고, 표준이 만들어지고, 플랫폼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혁명은 늘 이런 식으로 온다. 요란하게 등장했다가 한바탕 혼란을 일으키고, 살아남은 것들이 세상을 바꾼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로봇 산업의 '닷컴 버블 1단계'이다. 그리고 그 다음 장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지금 이 소음 속에서 무엇을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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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기계, 가상과 현실, 데이터와 의미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변화를 읽고, 미래를 연구하는 디지털 개척자(Pathfinder). 삼성경제연구소, KT 전략기획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SW정책연구소, 국회미래연구원을 거쳐 현재 경기연구원에서 AI연구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AI, 피지컬 AI, 공간지능, 공간컴퓨팅, 멀티버스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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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로봇은 망했다? 대여료 95% 폭락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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