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4.23 16:01수정 2026.04.2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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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전 서울역 인근 자살예방센터로 이직했다. 서울역은 화려한 빌딩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전철 노선이 여러 개 엮여 있는 서울역에는 매일 좀비 떼처럼 사람들이 쏟아진다. 종종 차를 운전해 출근하는 날이면 복잡한 서울역 광장 앞 도로 한복판에서 길을 잃기 쉽다.
남산도 바로 코앞에 있다. 마음만 먹으면 휴게시간에 후딱 올라갔다가, 수십 년 묵은 자연 속에 한 시간쯤 푹 잠겼다 내려올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는 곳은 그 화려한 시티도, 자연경관이 뛰어난 남산도 아닌 골목이다.
좁고 깊은 서울역의 뒷골목들을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닌다. 매일 새로운 것을 발견한 것처럼 감탄하며 사진을 찍는다. 그러면서 스스로도 의아해한다. 왜 하필 허름한 골목일까?

▲봄을 맞이하는 남산공원 눈을 돌리는 곳마다 그림인데 나는 골목에 더 눈길이 간다
김경옥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내가 살던 그 동네가 떠올랐다.
서울특별시 성동구 금호동1가 ○○번지. 유아기 시절부터 초등학교 2학년까지 내가 살던 동네의 행정적인 명칭이다. 지금은 시티뷰가 좋기로 알려진, 이른바 '금싸라기 땅'이 되었지만 내가 살던 금호동은 산 꼭대기까지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빽빽하게 집을 짓고 살던 산동네였다.
집과 길이 뒤엉킨 골목은 늘 예측이 어려웠다. 더 이상 없을 것 같은 길이 이어지고, 계속 이어질 것 같던 골목이 갑자기 막다른 길로 끝나기도 했다. 직접 가보지 않으면 그 골목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빛이 겨우 들어오는 길 양쪽 벽에 눌린 골목 사이로 햇빛이 얇게 스며든다. 사람 하나 지나가기 벅찬 길이 구불구불 이어졌다
김경옥
우리 집은 그중에서도 꽤 높은 곳에 있었다. 화장실은 집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 푸세식이었고,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백팔계단'이 있었다. 정확히 몇 계단이었는지는 세어본 적은 없지만 아버지가 연탄을 배달시킬 때마다 "백팔계단 지나 한참 더 올라가면 제일 먼저 보이는 초록 대문 집"이라고 설명하곤 했다. 우리 집은 높았고, 그보다 더 높은 곳에도 집들이 이어져 있었다. 삐뚤빼뚤 이어진 그 골목들은 너무 헷갈렸고 길눈이 어두운 나는 자주 길을 잃었다.

▲골목은 늘 위로 이어졌다 곧게 뻗은 길보다, 이렇게 꺾이고 이어지는 계단이 더 익숙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디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는 길을 올라가던 기억이 겹쳐진다.
김경옥
낮 동안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은 대부분 일을 나가고 없었고 아이들은 무방비 상태로 동네에 남겨졌다. 가난한 동네 뭐 훔쳐갈 게 있다고 도둑이 유난히 많았다. 도둑이 든 날은 장롱이 열린 채 물건들이 흩어져 있었고 가끔은 아빠의 카메라 같은 물건들이 사라졌다. 지나가다 낯모르는 아저씨에게 추행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삼남매가 고기를 사러 나갔다가 불량배에게 오천 원을 뜯겼던 기억도 있다. 눈치 빠른 언니가 그만 가자고 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소굴로 끌려 들어가 앵벌이를 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어느 날은 이웃집 '똘똘이 오빠'가 얼굴이 시뻘개진 채 경찰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본드를 불었다고 했다. '본드를 불어?' 예닐곱 살의 나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지독한 냄새와 똘똘이 오빠의 풀린 눈동자는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위험한 환경 속에 보호자 없이 아이들이 남겨져 있던 셈이다.
집 안도 평온하지는 않았다. 여덟 남매 출신의 오지랖 넓은 엄마와 여섯 남매 중 책임감 강한 장남이었던 아빠는 자주 다퉜다. 형제가 유난히 많은 두 사람은 우리 가족의 문제가 아닌 친척들의 문제로 더 많이 부딪혔고 싸움이 커지면 그 불똥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튀곤 했다.
그렇게 화가 난 부모님의 타깃은 내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소한 잘못에도 크게 혼나거나 괜히 눈에 띄었다는 이유로 화풀이를 당하곤 했다. 겁 많은 울보였던 나는 그럴 때마다 마당으로 나가 울었다.
울면서 바라본 세상에는 남산이 있었다. 지금은 사진 스팟이 된 남산이 당시의 나에게는 그저 나가면 보이는 길고 뾰족한 건물이었다. 높은 산동네에서 내려다보던 풍경에는 가난한 일상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나는 자주 훌쩍이며 그 풍경을 내려다보곤 했다.

▲골목 끝에 도시가 보였다 달동네였던 우리집 아랫 동네에는 평지였고 그 끝에는 번화한 도시가 있었다
김경옥
초등학교 3학년 무렵 평지의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를 갔고, 20대 이후로는 일산이나 덕양구의 신도시에서 지금까지 쭉 살고 있다. 멀리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정리된 탁 트인 공간 속에서 살면서 나는 구불구불한 산동네를 까맣게 잊었다.

▲익숙한 골목과 다른 도시의 풍경 서울역 인근 후암동 일대의 풍경. 정비된 도시 속에서도 과거의 골목과 닮은 모습이 남아 있다.
김경옥
그때 금호동 골목에서 자주 길을 잃어버렸던 아이는 이제 없다. 길을 잃지 않을 정도의 요령이 생겼고 길을 잃더라도 다시 찾을 수 있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제야 그때의 길과 닮은 골목들을 다시 걸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일들,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장면들, 그 안에서 느꼈던 두려움과 혼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그 시절은 힘들었고 떠올리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젠 적어도 피하지 않고 바라볼 수는 있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골목을 걷는다. 매일 구석구석 발길이 닿는 대로 돌아다닌다. 벗어나고 싶었던 골목을, 지금은 내가 찾아 걷고 있다. 길은 그대로가 아닌데, 이상하게도 나는 이제야 그 길을 알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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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암동 골목을 걷다 떠올린 금호동 산동네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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