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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6.04.24 15:01수정 2026.04.24 16:43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쇼펜하우어의 말을 글쓰기 교습소 아이들에게 읽게 했다. 초4부터 초6까지.
'인간성이란 인간다운 기능이다. 인간의 기능은 생식, 감각, 사유로 나뉜다. 생식은 식물도 하는 일이며, 감각은 동물에게도 있다. 하지만 사유는 오직 인간에게만 내재된 기능이다. 사유를 통해 인간은 인간다워지고, 사유를 인생의 본질로 삼았을 때 인간은 가장 인간다워진다. 따라서 행복은 사유다. 생각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선한 삶이고, 삶을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물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 한결같은 그러나 기특한 아이들의 대답이 이어졌다. 무슨 단어인지는 모르지만 사유를 할 때 인간은 인간이 된다는 말이요. 아이들이 깔아놓은 대답 위로 당연한 대답이 흘러갔다. 그렇다면 사유의 뜻은 무엇일까? 생각과 사유의 차이는 무엇일까?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간단하게 정리를 해주었다.
"애들아, 생각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 기능 중 하나야. 우리가 숨을 쉴 때 숨 쉬어야지 숨 쉬어야지 해서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호흡'을 하는 것처럼, 생각도 가만히 있으면 우리 머릿속에 물고기처럼 둥둥 떠다니는 그런 기능이지.
그렇다면 '사유'란 무엇이냐. 사유는 그 물고기처럼 둥둥 떠다니는 생각을 하나 딱 붙잡고 깊이 파고드는 거야. 이를테면, 아 두쫀쿠 맛있다 이건 생각이고, 두쫀쿠는 도대체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 두쫀쿠는 왜 이렇게 유행했던 걸까? 라고 붙잡고 파고드는 것이 바로 사유야."
아이들은 아하 하면서 끄덕거렸다. 문득 아이들에게 '사유'라는 단어를 가르칠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단어들은 그것을 아는 것만으로 삶을 몇 배나 풍성하게 아름답게 만들곤 한다.
내가 사유라는 단어를 알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실제로 그 단어를 알기 전과 후의 내 삶의 궤적은 선의 굵기가 달라졌다고 할 만큼 차이가 컸다. 이런 맥락인데, 초등학생 때부터 이 단어를 알게 되었다니, 알게 만들 수 있었다니, 행복이란 말이 꼭 들어맞았다.
이어서 간단한 도식을 세웠다.
"애들아, 사유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무지 간단한 방법을 알려줄게. 글을 쓰면 돼. 왜냐고? 글을 쓰려면 반드시 떠도는 생각을 붙잡아야 하거든. 글쓰기는 떠도는 생각을 낚시하듯이 붙잡고 언어를 통해서 건져내는 일이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어.
그러니까 사유는 해야지 해야지 해서 하는 게 아니라, 글을 쓰면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돼 있어. 내가 오늘 글을 썼다? 그러면 나는 오늘 사유를 했다라고 생각해도 좋아. 그리고 사유를 했으니 쇼펜하우어 아저씨의 말처럼, 나는 오늘 인간이 된 것이지."

▲글쓰기는 인간이 되는 길이다 내가 오늘 글을 썼다? 그러면 나는 오늘 사유를 했다 라고 생각해도 좋아. 그리고 사유를 했으니 쇼펜하우어 아저씨의 말처럼, 나는 오늘 인간이 된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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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습득은 그 속도를 헤아릴 수가 없다. 특별히 본질에 대해서 가르칠 때, 생각보다 빠른 결과치를 낸다. 여기서 가르치는 맛이 발생하는 것이다.
AI 시대라고 불리는 요즘, 나는 글쓰기야말로 아이들에게 소중한 해법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 시절에 가장 많이 보는 현상 중 하나는 '생각의 외주화'이다. '내 생각'이라고 하는 것이 발생하기도 전에 그냥 AI에게 맡겨버리는 것이다.
이건 많이 걱정스러운 행태다. 가뜩이나 스마트 기기나 미디어의 노출로 인해서 '생각하는 법'을 급속도로 까먹고 있는 아이들이 '생각 자체'마저 AI에게 맡겨버린다니, 이걸 과연 문명의 발달로 인한 혜택이라고만 해석할 수 있을까? 오히려 지금은 인간다움의 어떤 중요한 기능이 빠르게 약해지고 있는 상실의 시대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지점에서 글쓰기는 돌파구를 열어준다.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스킬이 아닌 '생각'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 생각'이다. 내 생각을 붙잡고 자기 언어로 끝까지 밀고 나가야 비로소 한 편의 글이 나온다. 글쓰기는 그 자체를 하는 것만으로 '생각의 외주화'가 아닌 '생각의 내주화'를 가져오는 행위인 것이다.
이건 힘이 들어가는 일이다. 그렇기에 올바른 일이다. 모든 올바른 일이란 힘이 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손석희의 질문들>에서 김애란 작가는 AI와 글쓰기에 관련된 질문에 대해서 인간에게 있고 AI에게 없는 것으로 '망설임'을 말했다. 누군가의 고민과 아픔 앞에서 말을 삼키고, 주저하고, 짐작하고, 헤아리는 그 찰나. 그 안에 어떤 배려와 품위가 있다는 말이 오래 남았다.

▲망설임 <손석희의 질문들>에서 김애란 작가는 AI와 글쓰기에 관련된 질문에 대해서 인간에게 있고 AI에게 없는 것으로 ‘망설임’을 말했다. 누군가의 고민과 아픔 앞에서 말을 삼키고, 주저하고, 짐작하고, 헤아리는 그 찰나. 그 안에 어떤 배려와 품위가 있다는 말이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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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란 수많은 '망설임'을 쓰는 과정 속에서 배우게 되는 일이다. 그래서 써낸 것보다, 쓰는 과정의 미학이 있다. 글쓰기는 '찰나'의 감각을 포착하게 만들어준다. 단어 하나를 쓸 때의, 문장 하나를 종결할 때의, 맥락의 흐름으로 말하게 되는 것들에 대한 짐작과 헤아림들을 체득하게 해준다. 이 모든 일은 투박한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글쓰기는 필히 인간이 되는 길이다. 그러니 글쓰기는 곧 인간이 되는 길이다라는 말은 과하지 않다. 글쓰기는 대학을 가는 데 필요해서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AI 시대의 중심에서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외치는 것이다. 아이들이 이런 글쓰기의 '맛'을 통해, 인간이 되는 '멋'을 알길 바란다. 이게 내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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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에게 '두쫀쿠'로 사유를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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