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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6.04.28 11:34수정 2026.04.28 11:34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실내 나들이 공간은 도서관이다. 서로 다른 점들도 많지만, 책을 좋아하는 취향 하나는 꼭 닮았다. 하나가 "도서관 가서 책읽다 올까요?" 하고 운을 떼면 다른 하나가 곧 바로 "오케이!"를 외친다.
은퇴 후 더욱 자주 드나들게 되니, 도서관은 책 읽고 글 쓰는 공간을 넘어 즐겁고 가볍게 오가는 동네 마실 집 같다. 다만, 산골에 사는 우리에게는 물리적으로 조금 먼 마실 집이라는 사실이 늘 아쉽다.

▲산골부부네 집 뒤, 개울가 정경 개복숭아꽃이 활짝 피다
유상신
"아무것도 부럽지 않아, 우리 곁에 자연이 있다면!"을 외치며 산골로 들어온 지 어느덧 12년 차.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최근 견고했던 마음에 질투가 날 만큼 부러운 대상이 생겼다. 얼마 전, 고창에 있는 황윤석도서관을 다녀온 후 부터다.
지인에게서 고창에 새로 생겼다는 도서관 이야기를 처음 듣는 순간, 자석처럼 강하게 끌렸다. '도서관에 사람 이름이 붙었네. 황윤석,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TV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건축가 유현준씨가 종묘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했다는 말까지 듣고 나자, 공간에 대한 궁금증까지 더해졌다.
결국 지난 9일, 비바람을 뚫고 고창으로 달려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후에야 궁금증은 풀렸지만 그 자리에 되레 '도서관 옆 우리 집 앓이'가 똬리를 틀고 앉았다.
유현준 건축가가 종묘에서 영감 받아 설계

▲황윤석 도서관(도로 쪽 모습) 유현준 건축가가 종묘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했다
유상신

▲주차장쪽에서 바라 본 황윤석 도서관 지붕 좌우 지붕의 높낮이가 다르다
유상신
도로 쪽에서 바라본 도서관은 옆으로 긴 단층 건물에 줄지어 나무 기둥이 서 있어 한눈에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인 '종묘'를 닮았다. 하지만 주차장 쪽으로 들어서니 전혀 다른 반전 매력을 보여주었다.
마치 2층인 것처럼 층고가 높고, 지붕 또한 가지런한 일자가 아니고 좌우 높낮이가 달라 현대적인 세련미가 느껴졌다. 특히 도서관 주차장 앞으로 박공 지붕을 한 단정한 주택들이 모여 있는 풍경은 마치 도서관과 마을이 하나의 공동체처럼 어우러진 평화로운 느낌을 주었다.

▲도서관 앞 주택가 창너머로 산골부부에게 도서관 옆 우리집을 꿈꾸게 한 집들이 보인다
유상신
도서관 입구에 들어서면 도서관 이름의 주인공, 이재(頤齋) 황윤석(1729~1791)을 소개하는 공간이 먼저 반긴다. 고창 출신인 그는 조선의 백과사전이라 불릴 만큼 방대한 기록을 남긴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실학자이다. 놀라운 점은 열 살 때부터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약 50년 동안 매일 일상을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실학자 황윤석의 기록물 '이재난고'의 일부 복사본 도서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황윤석의 '이재난고' 기록물의 복사본 전시공간이 있다
유상신
그의 기록물인 <이재난고(頤齋亂藁)>에는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은 물론 그날 먹은 음식의 가격과 사람들과 나눈 사소한 대화까지 담겨 있다. 그래서 그가 남긴 방대한 기록들은 당시의 생활사를 복원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고 한다.
한 사람의 성실한 기록이 그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 된 셈이다. 디지털 플랫폼에 일상을 기록하고 시민기자로 활동하는 나에게, 그의 지독한 기록 정신은 묵직하고 따끔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책을 읽고 생각을 쌓아 다시 기록으로 이어가는 공간으로서, 이보다 더 완벽한 이름이 또 있을까.

▲2층에서 바라 본 1층 모습 높은 천정과 목구조(나무아래에서 책읽는 풍경을 구현했다고 한다.)
유상신
도서관 설계를 맡은 유현준 건축가는 실내 공간을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서 책을 읽는 경험'으로 구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실제로 천장을 올려다보니 높은 층고에 나뭇가지처럼 뻗어 나간 목조 구조물이 장관이었다. 오래 전 우리 가족이 각자 책 보따리를 한 아름 안고 벚나무나 소나무 그늘 아래로 '책 소풍'을 가던 싱그러운 기억이 건축물 안에서 재현된 느낌이 들어 잠시 뭉클했다.

▲북마운틴 서가 1층 왼쪽 벽면에 위치해 있다
유상신

▲도서관 2층 팝업그림책 전시공간 다양한 팝업그림책들이 전시되어있다
유상신

▲황윤석 도서관 2층 공간 주차장입구로 들어오면 2층이지만 도로쪽 입구로 들어오면 1층에 해당한다
유상신
도서관 내부를 걷는 일은 마치 책장을 한 장 씩 넘기는 것 같았다. 한 눈에 모든 공간을 다 보여주지 않는다. 곳곳에 다채롭게 배치된 책상과 소파 덕분에 상황에 맞춰 자리를 골라 앉아 책을 읽거나 쉴 수 있다는 점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누구나 공짜로 아무 때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거실' 같은 공간이길 바랐다는 건축가의 진심이 곳곳에서 묻어 났다.

▲도로 쪽을 향한 창가 공간 바로 앞이 도로이고 비바람에 벚꽃 흩날리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유상신
너무 좋아서 하루 더... 숙소를 잡았다
남편은 벌써 아늑한 창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독서 삼매경에 빠진 듯 했으나 나는 공간 구성이 흥미로워 몇 번이고 산책하듯 기웃거리며 신이 났다. 한참 만에 남편 옆으로 돌아와 슬그머니 물었다.
"여보, 여기 너무 좋지요? 하룻밤 더 머물다 가면 안 될까요?"
말없이 번지는 남편의 미소를 'YES'로 확신하며 곧바로 근처 숙소를 검색한 후 예약을 마쳤다.

▲황윤석도서관 밤풍경 주택가 쪽에서 바라보다
유상신

▲책읽고 글쓰기 문을 닫을 때까지 도서관 공간을 만끽하다
유상신
숙소를 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어둠이 내리고 방문객들이 하나둘 빠져나가자 도서관은 노란 조명 아래 고요함이 깊어졌다. 남편은 2층에서, 나는 1층에서 각자의 책 읽기와 글쓰기에 집중했다. 그러다 가도 틈틈이 창밖으로 보이는 도서관 앞 주택들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저 집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이 날 때마다 도서관에 들러 내 집 서재처럼 책 읽고, 해질 무렵이면 거실처럼 잠시 앉아 쉬기도 하고, 밤늦도록 글을 쓰다가 몇 걸음이면 곧바로 집에 도착하는 하루…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부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그 마음 애써 누르며 폐장 안내 방송이 나올 때까지 최대한 공간을 누린 후 숙소를 향했다.

▲1층 도서관 내부모습 입구쪽에서 바라보다.
유상신
이튿날 아침, 개장 시간에 맞춰 다시 도서관을 찾았다. 하루 만에 다시 앉은 자리가 마치 오래전부터 내 자리였던 것처럼 편안했다. 이날은 도내 도서관 관계자들의 도서관 탐방이 있어 외부 방문객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황윤석 도서관은 개관 몇 달 만에 지역의 문화 명소로 확실히 자리 잡은 듯했다. '가족과 함께' 또는 '친구들끼리' 그리고 다양한 기관에서 탐방하러 오는 걸 보니, 고창의 '핫 플레이스'라는 말이 실감 났다. 내가 사는 장수에도 이런 도서관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러워하는 사이,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 하나가 마음속에 둥지를 튼다.
'도서관 옆, 우리 집.'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에게 건넨다. "여보, 이 다음에 우리가 이사할 기회가 생긴다면 '도서관 옆 우리 집' 은 어때요?" 남편이 말없이 빙긋 웃는다. '부러우면 지는 거' 라는데 , 이미 마음을 뺏겼으니 기꺼이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패배감 끝에 남아 있는 기분 좋은 설렘이라도 마음껏 즐겨 볼란다.
'도서관 옆 우리 집' 이라는 근사한 꿈을 품고 황윤석이 남긴 50년의 기록처럼, 나 또한 내가 머무는 공간과 일상을 부지런히 기록해 나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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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책과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은퇴 후 나의 하루는 내가 디자인하며 삽니다. 지금 여기에 사는 즐거움(기쁨이자 슬픔)을 글로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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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훔친 도서관, 고창 사람들이 부러워서 미칠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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