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반 쌓기 종목에 집중하고 있는 이용인
최미향
4월 20일 오전, 서산장애인주간이용센터 잔디운동장에 12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중증발달장애인 이용인, 활동지원사, 교사 및 시니어일자리 어르신, 그리고 시니어 태권도 '청춘도복단' 등. 형광 연두, 주황, 노랑 조끼들이 운동장을 가득 채웠다.
행사 이름은 '우리들의 패럴림픽'. 종목은 모두 7개였다. 이날 경기는 장애물 이어달리기, 색판 뒤집기, 공 전달하기 등. 빠른 사람이 이기는 경기가 아니었다. 느려도 함께, 끝까지 같이 하는 것이 규칙인 운동회였다.
혜정 씨는 처음엔 떨렸다고 고백했다.
"처음에는 조금 떨렸는데 해보니까 하나도 안 무섭고 더 하고 싶었어요. 운동을 하다보니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어요. 많이 보고 싶었어요. 오늘 같이 운동하는데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어요. (청춘도복단 어르신들이) 아버지처럼 따뜻하게 말해주시고 옆에서 도와주셔서 그런가 봐요. 마음이 너무 좋았어요."

▲ 주황 조끼를 입은 청춘도복단 어르신들이 커다란 풍선공을 받아넘기고 있다.
최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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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산장애인주간이용센터에서 열린 패럴림픽 ⓒ 최미향
청춘도복단은 매주 금요일마다 이 센터를 찾는다. 이날은 자원봉사로 왔다. 응원석에서 박수만 치는 봉사가 아니었다. 같은 조끼를 입고, 같은 운동장에 서서 이용인들과 나란히 공을 밀고 함께 뛰었다.
정진주 회장은 말했다.
"어르신들도 노인이라 여기저기 불러줄 때가 없어요. 모든 것이 부족하지요. 그런데 이용인들이 같이 놀아주고, 같이 운동하니까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그러다 잠깐 먼 곳을 봤다.
"아이들 운동회 갔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까마득하니 잊고 지내고 있었네요. 오늘 여기서 같이 뛰니까 그때 일들이 다 생각납니다. 내년에도 꼭 또 불러주세요. 도움을 준 게 아니라, 되려 받은 것 같아서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봉사를 하러 온 사람이 한 말이다.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따로 없었다

▲ 주황과 연두색 조끼를 입은 이용인들과 어르신들이 짐볼을 앞에 두고 준비 동작을 하고 있다.
최미향
우리는 오랫동안 장애인을 '도움받는 존재'로 정의해왔다. 장애인의 날도 그 틀 안에서 35년이 흘러왔다. 기념식에 초대받고, 박수를 받고, 선물을 받는 날. 그런데 이날 잔디밭에서는 그 구도가 흔들렸다.
봉사자로 온 어르신들이 "내가 더 얻었다"고 했다. 잊고 살던 아이들 운동회 날을 이 잔디밭에서 되찾았다. 47년 만에 처음 운동회에 참석한 혜정씨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 어르신들에게서 찾았다.
어르신들은 이용인들에게서 잃어버린 시간을, 이용인들은 어르신들 덕분에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던 시간을 처음으로 가졌다.
정가을 사회재활교사는 이날을 이렇게 기억했다.
"청춘도복단 어르신들께서는 이용인분들을 가족처럼 다정하게 대해주시고 함께 웃고 뛰어주셨어요. 장애를 구분 짓는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바라보는 자연스러운 인식이 생겨난 하루였습니다. 저도 많이 느낀 하루였습니다."

▲ 경품 추첨에서 쌀을 받은 이용인들이 환하게 웃으며 브이를 그리고 있다.
최미향
행사 마지막엔 롯데케미칼(주)과 한화토탈에너지스가 후원한 쌀로 경품 추첨을 했다. 쌀 포대를 번쩍 들고 브이를 그리는 이용인들의 얼굴이 환했다.
혜정 씨는 말했다.
"이렇게 재밌는 운동회는 처음이에요. 다음에도 꼭 또 했으면 좋겠어요."
정진주 회장도 말했다.
"내년에도 꼭 또 불러주세요."
두 사람이 같은 말을 했다.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따로 없었다. 같은 잔디밭에서, 같은 조끼를 입고, 서로에게서 각자의 행복을 찾은 하루였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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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년 만의 첫 운동회... '혜정씨가 올해 처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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