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수 전 보건복지부 차관의 가톨릭관동대 행정학과 초빙교수 임용은 책임과 원칙이 어떻게 희미해지는 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 속에서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원칙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지 않았 듯, 우리 사회의 공정이라는 가치 또한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서서히 침식되고 있다.
<동물농장>에서 권력은 언어와 규칙을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며 원칙을 무너뜨린다. 이처럼 '교묘한 원칙의 수정'은 부조리를 정당함으로 둔갑시키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이번 임용을 바라보는 의료계의 시선이 서늘한 이유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의대교수협의회와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박 전 차관의 임명 철회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의대 정원 2천명 증원 정책을 주도하며 의료 교육의 붕괴와 현장의 혼란을 초래한 당사자가 대학의 교수로 취임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라는 문제 제기다.
의대교육 현장의 우려, '해부학' 수업만의 문제일까?
이번 임용은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이 충분히 검증되기 전에, 그 기억을 희석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는다. 가톨릭관동대 측은 임명 경위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대체로 고위 공직자의 경력을 학교 성장과 학생 교육에 활용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그러나, 박 전장관의 공적 책임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강행된 이번 결정은 가톨릭관동대학의 교수 임용에 대한 신뢰의 기준을 흔들고 있다. 대학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 행동으로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현재 의학 교육 현장의 우려는 지속되고 있다. 박 전 차관은 과거 의대 증원에 따른 교육 질 저하 우려에 대해 '카데바(해부용 시신) 수입 가능성' 등을 언급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던 바가 있다.
해부학 실습은 6명당 1구의 카데바를 기준으로 삼는다. 익명을 요구한 지방 사립대 의대생은 "본인이 참여했던 10명이 카데바 1구를 사용하는 수업에서조차 기대했던 학습이 안 되어 어려웠는데, 올 2월에 일부 대학에서 진행했다는 20명 1구 사용 실습 보도를 접하고 과연 올바른 교육이 되었겠느냐"며 24·25학번 학생들의 교육 파행 가능성을 경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단지 해부학 수업의 부실함에 그치지 않는다. '카데바 수입 고려' 발언은 박 전 차관이 쏘아 올린 의대 교육 현장에 대한 전문성 부족을 드러낸 대표적 상징일 뿐, 그 이면에는 수습 불가능한 교육 인프라의 심각한 한계와 의료 시스템의 균열이 산적해 있다.
이처럼 의학교육 환경의 붕괴를 초래한 정책 책임자가 대학강단에 서는 것을 대학 구성원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강단은 단순한 '직업적 자리'가 아니라, 한 개인의 이력이 '사회적 권위'로 승인받는 자리다. 금번 임용에 대해 비판이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공적 신뢰, '가능한 결정'과 '적절한 결정' 사이에서
이번 논란은 우리 사회가 책임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묻고 있다. 공직자의 결정은 시간이 지나도 책임의 기준에서 재평가 되어야 하며, 그 과정이 생략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평가가 채 내려지기도 전, 심지어 혼란이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 대중의 기억을 희석하고 개인의 커리어 전환을 위해 '교수'라는 권위 뒤로 숨는 관행이 반복된다면, 우리 사회의 공적 기준은 하향 평준화 될 수밖에 없다.
원칙의 훼손은 작은 타협의 반복에서 비롯된다. 더 큰 문제는 그 변화가 반복될 때 대중이 이를 더 이상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무감각의 상태'에 빠진다는 점이다. 대학은 사회적 신뢰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다. 따라서 '법적으로 가능한 결정'과 '사회적으로 적절한 결정'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가톨릭관동대의 이번 선택은 단순히 한 개인의 임용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공적 신뢰에 깊은 균열을 내고 있음을 대학과 사회 모두가 성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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