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일 서울 중구 '림보 바(Bar)'에서 '제2회 죽음이야기주간'이 죽음문화기획 '디-톡스(Death-talks)'가 주최로 열린 모습. 백현주 디-톡스 리더가 사회를 보고 있다.
공익저널 차종관
"역설적이게도, 지도를 만들면 만들수록 저는 당장 죽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래서 제게 주어진 과제를 열심히 하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제까지 잘 살고 있고, 앞으로도 잘 살 거고, 잘 죽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따스한 봄 기운이 완연했던 지난 25일, 서울 중구 '림보 바(Bar)'에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평소라면 음악과 술잔 부딪치는 소리로 채워졌을 이 공간에 갓 성인이 된 20대부터 초고령 노인을 돌보는 60대까지 다양한 연령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빼곡히 모여 앉았다. 이들이 주말 아침부터 이곳을 찾은 이유는, 평소 입 밖으로 꺼내기 터부시되던 '죽음'에 대해 치열하게 수다를 떨기 위해서다.
이날 열린 '제2회 죽음이야기 주간'은 죽음문화기획 '디-톡스(Death-talks)'가 주최했다. 사회를 맡은 이초영 '디-톡스' 리더는 이승과 저승 사이의 연옥을 뜻하는 공간의 이름 '림보'에 대해 "현실과 환상 사이에 떠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이곳이 죽음 이야기를 나누기엔 제격"이라고 말하며 행사를 시작했다.
참가자들이 행사에 참석한 이유도 각양각색이었다. "억지로 끌려왔다"는 농담 섞인 답변부터, "내 인생의 가장 큰 숙제가 죽음이라서", "어둡다고 생각하는 죽음을 웃으며 준비한다는 상황이 궁금해서", "일상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는데 내게 필요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등 각자 나름의 사연과 궁금증을 안은 모습이었다.
"죽음의 노선도는 '관계와 사회'에 몰려 있다"
첫 번째 세션에서는 양재혁 미술작가가 '나도 죽을 지도 함께 그리기'를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지하철 노선도를 메타포로 삼아, '내가 내일 죽는다면 다른 이의 죽음에 비해 최적인 이유 5가지'를 정거장 이름처럼 적어 내려갔다.
참가자들은 "임플란트가 없어서 장기를 온전히 기증할 수 있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짐이 될 빚이 없어서 효율적이다", "자식이 없어서 깔끔하다" 등 다양한 답을 내놨다. 한 참가자는 "죽은 채로 발견됐을 때 구멍 난 팬티를 입고 있으면 부끄러울 것 같아 새 속옷을 챙겨 입는다"고 말해 장내를 웃음 바다로 만들었다.
이후 매핑 작업은 관계적 측면, 사회적 측면, 개인적 측면으로 나눠서 색상을 구분했고, 많은 이의 답변은 관계 및 사회적 측면으로 쏠렸다. 당장 '나의 죽음'을 상상했음에도, 사람들의 머릿속은 '남겨질 가족에 대한 걱정'과 '사회가 요구하는 절차'로 가득 차 있었다.

▲ 25일 서울 중구 '림보 바(Bar)'에서 '제2회 죽음이야기주간'이 죽음문화기획 '디-톡스(Death-talks)'가 주최로 열린 모습. 순서대로 ▲양재혁 미술작가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는 참가자들 ▲‘나도 죽을 지도’를 그리고 있는 한 참가자 ▲참가자들이 죽음에 대해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
공익저널 차종관
양 작가는 "우리가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조차 결국 사회가 강제하는 합의적 관계에 얽매여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죽음에 대한 사회의 효율적 강제가 우리의 상상력을 가로막고 있다"며 "사회적 규칙에 의해 짜인 대본이 아니라 내가 주도하는 진정한 죽음이란 무엇일지 생각해보자"고 화두를 던졌다.
4250만 원의 청구서, "보호자 데려오라"는 상처
두 번째 세션 '죽어보니 알아차린 준비사항들'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의 임종을 직접 겪어낸 두 작가가 현실 속 문제를 드러냈다.
<엄마의 죽을 복>을 쓴 신문자 작가는 파킨슨병과 췌장암 3기 진단을 받은 어머니를 돌본 3년에 가까운 시간을 이야기로 풀어냈다. 그는 "슬픈 건 슬픈 거고 묵은 때는 닦아야 했다"며 "5개월간 4250만 원이라는 막대한 비용이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아픈데 돈이 문제냐고들 하지만, 응, 돈이 문제더라"라며 "돌봄의 차가운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 작가는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슬픈 건 슬프지만 당장 치러내야 할 일들도 너무 많았다"며 치열했던 간병 생활을 털어놓았다. 또한 "1인 가구인 나는 훗날 늙고 병들었을 때 누가 돌봐줄 것인지, '나답게 늙고 병들 준비'가 과연 혼자만의 결심으로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현실적인 물음이 들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신 작가를 괴롭힌 것은 '어머니의 의사'와 '가족의 바람' 사이의 충돌이었다. 항암 치료를 원치 않던 어머니를 끝내 설득해 주사를 맞게 했던 선택들에 대해 그는 "만약에 항암 치료를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라며 끝없는 죄책감의 구덩이를 파고 산을 쌓았다고 고백했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의 캔디(본명 윤다림) 작가는 난소암 4기 판정을 받은 동성 파트너를 떠나보낸 경험을 나누었다. 그가 마주한 장벽은 병원 직원의 차가운 시선이었다. 파트너가 아파 병원에 갔을 때 "누구세요? 좋은 친구네요. 보호자 모시고 오세요"라는 말을 들어야 했던 경험은, 그에게 여전히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작가는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 결정에 온전히 개입할 수 없는 현실은 참담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캔디 작가는 혈연을 넘어선 '퀴어 공동체'의 연대에서 희망을 찾았다. 걷지 못하게 된 파트너를 위해 공동체의 친구가 아파트 방을 내어주었고, 수많은 친구가 찾아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줌(Zoom) 미팅으로 곁을 지키며 편지를 써주었다.

▲ 25일 서울 중구 '림보 바(Bar)'에서 '제2회 죽음이야기주간'이 죽음문화기획 '디-톡스(Death-talks)'가 주최로 열린 모습. 순서대로 ▲신문자 작가와 윤다림(캔디) 작가 ▲윤 작가의 <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와 신 작가의 <엄마의 죽을 복> ▲자신이 그린 ‘나도 죽을 지도’를 발표하는 참가자 ▲발표를 경청하고 있는 송추향 아키비스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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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 작가는 "혼자 조용히 죽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1인 가구일수록 사전 장례 의향서를 작성하고 스마트폰 잠금 해제 등 디지털 유산 정리를 명확히 해두어야 내 의지대로 떠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나아가 자신의 장례 방식과 사후 정리에 대해서도 주변과 적극적으로 논의할 것을 강조하며 "내 장례식에는 미러볼을 달아달라,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건식을 대접하라 등 평소 주변에 자신의 장례식 형태를 명확히 이야기해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1인 가구 시대에 걸맞게 죽음과 애도의 방식에도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죽음을 상상했더니 삶이 뚜렷해졌다"
송추향 아키비스트의 진행으로 마지막 세션 '나도 죽을 지도 발행하기'가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온종일 듣고 나눈 타인의 이야기를 양분 삼아, 오전에 그렸던 자신의 붉은색 지도를 수정하고 구체화했다. 갓 성인이 된 청년 참가자는 "역설적이게도 지도를 만들면 만들수록 당장 죽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내게 주어진 과제와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며 환하게 웃었다.
'오디'라는 별명을 가진 참가자는 지도를 구체적으로 그리는 대신, 한 장의 그림으로 자신의 통찰을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죽음과 삶은 연결되어 있고 계속 다른 형태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에 도달했다"며 "나라는 것을 지우고 내 몸에 서로 다른 이질적인 것들을 계속 흡수하는 과정이 매일의 죽음 연습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98세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60대 참가자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 살던 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를 꿈꾼다"며 "요즘 어머니를 곁에서 모시다 보니 노인으로 사는 게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걸 배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가 훗날 초고령 노인이 되었을 때, 우리 어머니처럼 '명랑한 노인'으로 살고 싶다"며 "내 임종을 지킬 딸에게 내 죽음이 짐이 아니라 힘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죽음 교육을 수년째 받아왔다는 한 참가자는 "90세가 되던 해 모든 것을 정리하시고 6년을 더 사시다 가신 친정어머니를 회상하며, 내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 25일 서울 중구 '림보 바(Bar)'에서 '제2회 죽음이야기주간'이 죽음문화기획 '디-톡스(Death-talks)'가 주최로 열린 모습. 참가자들이 각자 그린 ‘나도 죽을 지도’를 들고 단체 사진을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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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데이터 시각화에 관심을 가져왔다는 참가자는 "죽음이라는 측정하기 힘든 감정과 관계의 영역이 지도로 구현되는 과정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며 감탄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지도를 완성한 후 내일부터 당장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가족과 지인들에게 내 목소리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백현주 '디-톡스' 리더는 "우리가 함께 마주한 죽음의 다양한 모습들이, 앞으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문득문득 떠오르는 의미 있는 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마무리 인사를 전했다. 취재진을 만난 한 참가자는 "막연한 공포였던 죽음을 직면하고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과정은, 결국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며 "이 깨달음 덕에 앞으로의 삶을 생생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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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 저널리스트 차종관입니다. 시민사회·사회연대경제·임팩트생태계 등을 출입하며 사회변화를 기록합니다. 대학언론의 위기, 주체적인 죽음 설계, 취약계층 주거권 보장 등 사회문제 해결에 나서는 활동가이기도 합니다. 대학원에서는 당사자언론을 연구합니다. 대학 내 언론자유 및 민주주의, 지속가능한 시민공익활동에 관한 정책 제안에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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