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24년 1월 10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원각사 노인 무료급식소 인근 식당가에서 점심식사를 위해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23년 말 기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70대 이상 인구는 631만 9402명으로, 20대(619만 7486명) 인구를 넘어섰다.
연합뉴스
일본이 먼저 겪은 것, 평균의 함정
일본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깊은 초고령사회를 살고 있다. 일본 내각부의 2025년 고령사회백서에 따르면 2024년 10월 기준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는 3624만 명, 전체의 29.3%다. 75세 이상 인구도 2078만 명으로 전체의 16.8%에 이르렀다. 노인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본의 노년은 내부에서 다시 갈라지고 있다.
겉으로 보면 일본 노인은 한국 노인보다 나아 보인다. 집을 가진 노인도 많고, 장기간의 고도성장과 기업 복리후생을 누린 세대도 있다. 그러나 평균은 고통을 숨긴다. OECD는 일본의 65세 이상 상대적 빈곤율을 약 20%로 제시한다. OECD 평균보다 높다.
아사히TV는 2025년 10월 연금 지급일을 맞아 은행 앞줄을 선 고령자들의 생활을 보도했다. 81세 남성이 월세를 먼저 내야 쫓겨나지 않을까 걱정하고, 80세 여성은 빠듯한 생활을 호소했다. 물가가 오르면 평균 자산은 방패가 되지 못한다. 현금 흐름이 약한 노인은 바로 흔들린다.
여기서 일본 실패학의 교훈이 드러난다. 실패학은 누가 잘못했는지를 묻기보다 왜 그런 구조가 반복됐는지를 묻는다. 일본의 실패는 노인이 절약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고령화를 오래 예측하고도 그 부담을 개인의 저축, 가족의 돌봄, 지역의 선의에 너무 오래 맡긴 데 있었다. '하류 노인'이라는 말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유행어가 아니다. 버블 붕괴 이후 비정규직과 저임금, 기업 복지 축소가 이어졌고, 그 세대가 늙자 가계부의 적자가 사회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한국이 일본의 길을 천천히 따라가고 있다면 그나마 시간이 있다. 문제는 속도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3%로 처음 20%를 넘어섰다. 2036년에는 30%, 2050년에는 40%를 넘어설 전망이다. 일본이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가는 데 약 11년이 걸렸다면, 한국은 7년 만에 그 문턱을 넘었다는 분석이 많다.
더 아픈 숫자는 빈곤율이다.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연구원이 발간한 '한국의 사회동향 2025'에 따르면 66세 이상 노인의 소득 빈곤율은 39.7%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OECD 평균 14.8%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75세 이상 노인은 건강과 빈곤이 동시에 덮친다. 75세 이상 노인 가운데 만성질환을 3개 이상 가진 비율은 46.2%에 달했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 고령자 통계는 또 다른 현실도 보여준다. 2023년 65세 이상 고령자의 연금 수급률은 90.9%였지만, 월평균 수급 금액은 69만 5000원이었다. 같은 해 65세 이상 1인당 진료비는 530만 6000원으로 집계됐다. 연금을 받는다는 사실과 연금으로 살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다르다. 한국 노인의 가계부는 이미 병원비, 식비, 주거비, 교통비 앞에서 얇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 청구서는 청년에게도 날아든다. 고물가 속에서 한국의 2030은 외식 대신 간편식, 커피 대신 할인 쿠폰, 여행 대신 통장 잔고를 선택한다. 런치플레이션은 단순한 소비 트렌드가 아니다. 오늘 저축하지 못하는 청년은 내일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다. 일본의 70대가 현재 가계부 앱으로 버티는 모습은 한국 청년에게 너무 가혹한 비유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 비유를 피해 가지 않는다.

▲ 일본 고령층의 디지털 가계관리는 단순한 지출 기록을 넘어 안부 확인 기능과 결합하는 방향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일본 가계부 앱 '자임(Zaim)'의 웹 홍보 화면으로, '돈의 흐름과 자산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 Zaim
Zaim
일본 실패학의 결론: 절약은 미덕이지만 안전망은 아니다
일본 정부는 고령자의 사회참여와 계속 고용을 강조해 왔다. 일본 내각부 백서는 65세 이상 고령자의 취업 비율이 높아지고 있으며, 일하려는 이유로 '수입이 필요해서'가 가장 많다고 설명한다. 건강한 고령자가 더 오래 일하는 것은 분명 긍정적이다. 그러나 '일할 수 있으면 일하라'는 말이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현실로 바뀌는 순간, 초고령사회는 안전 사회가 아니라 생존 경쟁장이 된다.
일본의 실패는 바로 이 경계선을 흐린 데 있다. 고령자의 활력을 말하면서 빈곤 노인의 현금 부족을 충분히 보지 못했고, 평균 자산을 말하면서 단신 노인과 후기 고령자의 취약성을 과소평가했다. 가계부 앱은 유용한 도구다. 할인 시간에 맞춘 장보기 역시 생활의 지혜다. 하지만 그 지혜가 제도의 빈틈을 메우는 유일한 수단이 될 때, 국가는 이미 늦게 움직이는 것이다.
'안전혁명' 관점에서 보면 초고령사회는 느리게 다가오는 재난이다. 지진처럼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을 뿐, 소득·돌봄·의료·주거·고용·지역공동체가 사슬처럼 연결되어 무너진다. 미래리스크 관리는 거창한 국제 위기만을 뜻하지 않는다. 한 가구의 식비가 매달 적자로 바뀌는 순간, 그 가계부는 사회 전체의 위험 신호가 된다.
한국은 이미 한 번 연금 개혁을 통과시켰다. 2025년 국회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단계적으로 올리고, 명목 소득대체율을 2026년 42%로 높이는 개혁안을 처리했다. <로이터 통신>은 이 개혁이 기금 고갈 시점을 약 15년 늦출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의미 있는 출발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의 숫자 싸움만으로는 노인의 한 끼와 청년의 미래 저축을 동시에 지킬 수 없다.
KDI는 기초연금의 지급 기준을 단순히 노인 하위 70%로 고정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취약한 노인을 더 정확히 겨냥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분석했다. 재정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가난한 노인에게 더 두텁게 지원하자는 취지다. 이는 단순한 복지 기술이 아니라 제도 전환이다. 넓게 뿌리는 돈에서 꼭 필요한 곳을 두껍게 지키는 돈으로 바꾸는 일이다.
초고령사회에서 안전 사회는 세 가지 가계부를 동시에 봐야 만들어진다. 첫째, 이미 빈곤한 75세 이상 노인의 현금 흐름이다. 둘째, 50대와 60대가 불안정 노동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하는 노동 준법과 고용 안정이다. 셋째, 2030이 고물가와 주거비에 눌려 저축 능력을 잃지 않도록 하는 청년 가계부다. 이 셋을 따로 보면 세대 갈등이 되지만, 함께 보면 국가의 미래 리스크 관리가 된다.
일본 70대의 앱과 한국 30대의 도시락이 묻는 것
일본 초고령사회의 가계부 분투기는 우리에게 절약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말한다. 개인의 절약이 너무 오래 버텨야 하는 사회는 이미 제도가 뒤처진 사회다. 노인이 앱으로 한 끼를 쪼개고, 청년이 도시락으로 하루를 버티는 장면을 미담으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성실한 시민의 노력인 동시에 국가가 읽어야 할 위험 신호다.
한국은 일본보다 더 빠르게 늙고, 노인 빈곤은 이미 더 심각하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한국의 초고령사회는 일본의 실패를 복사하면서도 더 가혹한 버전이 될 수 있다. 안전혁명은 재난이 터진 뒤 복구하는 일이 아니라, 재난이 되기 전 생활의 균열을 제도로 메우는 일이다.
한 끼 식비를 묻는 앱 알림이 노후 전체의 경보음이 되기 전에, 우리는 가계부를 국가의 미래 설계도처럼 읽어야 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현재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로 있으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주된 관심분야는 글로벌 위기관리 및 재난·안전학, 일본의 정치경제, 동아시아 국제관계, 국제기구론, 국경학 등이다.
공유하기
'월 4만엔 적자' 일본 노인... 한국은 더 빨리, 더 가난해진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