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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민으로 꼭 한번 가고 싶었던,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소설 <랑월> 작가와 함께 한 역사 답사 '랑월로드'... 동춘당·대전형무소·군시제사공장터·골령골 방문

등록 2026.04.29 08:44수정 2026.04.29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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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넘은 호연재 고택에 활짝 핀 영산홍이 분홍분홍하다. 동춘당 공원의 연둣빛 버드나무 하얀 솜털이 민들레 홀씨처럼 날리는 지난 26일, 대전을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그려낸 소설 <랑월>의 길을 따라 걸어보는 '랑월로드'에 참여하게 되었다. 작가가 직접 해설해 준다 하니 놓치면 아까운 기회이지 않겠는가!

집결지는 대전지하철 시청역 1번 출구 앞이다. 버스 2대가 기다리고 있다. 가까이 가보니 결혼식에 가는 버스다. 그래 결혼 하기에도 참 좋은 계절이지.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랑월로드 투어 버스도 오고 참여자들도 온다. 감귤색 모자를 쓴 초등학생부터 지팡이를 짚으신 어르신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소설 <랑월>의 여자 주인공 송혜인의 아버지 송정재의 집이자 은진송씨 종택인 동춘당. 조선 성리학의 대가인 문정공 송준길이 지은 집이다. 이곳 송촌동은 유학자 송시열 가문인 은진 송씨 집성촌이라고도 한다. 동춘당 옆 호연재 고택에 앉자 참여자들의 간단한 자기소개와 박현주 작가의 해설이 있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의 이름은 어떻게 짓느냐는 어느 참가자의 질문에, 박 작가는 소설 속 서북청년단 고기춘과 방시호를 예로 들면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회자되던 김기춘과 장시호의 이름을 참고로 했다고 한다.

동춘당 소설속 송헤인(송정재)의 집
▲동춘당 소설속 송헤인(송정재)의 집 김용국

다음 답사지는 중촌동 대전형무소였다.

일제가 영등포 이남의 독립운동가 사상범을 수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식민지 시기에는 안창호, 여운형, 김창숙 선생 같은 독립운동가들이, 해방 후에는 제주 4·3항쟁과 여순사건 관련자 등 좌익사상범들이,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에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 신영복 선생과 같은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갇혀 있던 곳이다.

대전지역의 저명한 정치인 송좌빈 선생과 얼마 전 작고한 이해찬 전 총리도 이곳에서 옥살이를 했다. 도심 확장으로 대전형무소 건물은 다 헐리고 이제는 망루 한 개와 일부 담장, 우물 한 개가 남아 있다. 소설속 임표와 정세영, 송혜인이 수감된 곳이다.


대전형무소 망루 마지막 남은 대전형무소의 망루와 태극기,
▲대전형무소 망루 마지막 남은 대전형무소의 망루와 태극기, 김용국
망루 옆에 있는 자유총연맹 건물은 대전 학생들이 필수적으로 들렀던 반공교육의 장이었다고 한다. 태극기와 자유총연맹 깃발 옆으로 이제는 수명이 다한 망루가 있는 풍경. 그리고 보복이 보복을 낳듯 우물에는 1950년 9월 학살 흔적이 있다. 그리고 우물을 돌아 왼쪽으로 가면 오래된 왕버들 나무가 있다. 거기에 안내판이 나무에 기대어 있다. 글씨는 많이 퇴색했고 받침대도 세월을 이기지 못해 나무에 기대게 된 것이다.

나는 기억하네
1950년 7월 산내골령골로
오랏줄에 묶여 끌려가던 수많은 사람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아직도 진실은 밝혀지지 못했어

나는 기억하네 1950년 9월 수많은 이들이 참혹하게 죽어간 모습
짐승처럼 학살된 사람들...
그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

나는 보고 있네
사방에서 돋아나는 푸른 새싹들
재잘거리는 아이들
우렁우렁 유쾌한 청소년들
여유롭게 산책하는 노인들

나는 바라네
이 평화가 오래도록 계속되기를

2010년 12월 25일
자립형지역공동체사업단 중촌마을역사탐험대 그루터기

평화의 나무 왕버들 2010년 12월 25일 중촌마을 역사탐험대 그루터기에서 세우다
▲평화의 나무 왕버들 2010년 12월 25일 중촌마을 역사탐험대 그루터기에서 세우다 김용국

세 번째 들른 답사지는 군시제사 대전공장 터. 가족 중 한 명이 이 공장에 취직하면 굶어 죽을 일은 없다며 온 가족이 기뻐했다던, 일제강점기 대전에서 취업 경쟁 높던 공장이다. 그러나 10대 여공들이 마주한 노동 현장은 듣던 것과 달랐다. 장갑도 없어 뜨거운 물에 직접 손을 담그고 일을 해야 하고 하루 1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 그리고 사용자의 일상적인 성희롱이 있었다고 한다.


이제 '골로 간다'는 말을 낳은 대표적인 장소 대전 산내 골령골로 간다. 이번 '랑월로드' 기행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골령골'이었다. 제주도민으로서 꼭 한번은 골령골에 들려 고개 숙여 고인들의 명복을 빌고 싶었다.

식민지 시기에 제주도내 경찰은 101명 뿐이었다. 자체적인 감옥도 없던 제주였다. 도민들이 서북청년단과 경찰의 탄압에 맞서 통일정부수립을 외치며 남한 만의 단독 선거 반대를 위한 저항이 4·3항쟁으로 이어졌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는 강경 진압으로 일관해 3만여 명이 죽고 수감 대상자가 넘쳐나 전국의 형무소에 갇히게 된다. 대전형무소도 4·3항쟁 관련자들이 이감된 형무소 중에 하나였다.

고요했다. 너무나도 고요했다. 이토록 고요할까 싶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풀은 풀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자라고 있었다. 누군가 여기가 골령골이다. '여기가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다'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7000여 명이 트럭에 실려와 총 맞아 죽어 구덩이에 던져진 곳이라고 알 수 있을까!

서로 총을 들고 죽고 죽이는 전쟁터에서 잡힌 포로도 죽이거나 학대하면 전쟁범죄인데 하물며 군인도 아닌 민간인을 죽인 곳이다. 젖먹이 아기 엄마인 소설속 송혜인이 생을 마감한 곳이기도 하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4월의 산야는 연초록으로 찬란하다.

대전스토리투어 이토록 평범한 곳에서~ 골령골 '골로 간다'의 어원
▲대전스토리투어 이토록 평범한 곳에서~ 골령골 '골로 간다'의 어원 김용국
덧붙이는 글 ‘랑월로드’는 박현주 작가의 장편소설 '랑월- 대전에 살다 골령골에 묻히다' 속 장소를 답사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지난 4월 26일 대전체험여행협동조합의 스토리투어 중 테마투어로 진행되었습니다.
#투어 #랑월로드 #골령골 #제주43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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