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쫓아내지 않고 함께 산다"... 베트남 사찰이 보여준 백로 공존법

[베트남 백로와 공존을 위한 비행] 1980년대부터 번식지로 자리잡아... 악취·소음 감수하며 생명 존중

등록 2026.04.29 10:43수정 2026.04.29 10:43
0
원고료로 응원
기자말
대전환경운동연합과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전북환경운동연합은 백로 집단번식지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도심 속 백로 번식지는 악취와 소음, 배설물 민원으로 '쫓아내야 한다'는 극단적인 목소리로 이어지곤 합니다. 그러나 백로는 갑자기 나타난 침입자가 아닙니다. 세 단체는 사람과 백로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번식하는 백로는 중국과 베트남을 지나며 아시아 생태계의 실핏줄을 연결합니다. 백로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지난 4월 18일부터 23일까지 베트남 현장을 찾았습니다. 베트남에서 백로가 머무는 습지와 그 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현장의 기록을 하나씩 써 내려가려 합니다. 자연이 인간에게 건네는 따끔하면서도 소중한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 프로젝트는 환경재단이 주최하고, 현대자동차와 사랑의열매가 지원하며, 세 환경운동연합이 공동 주관합니다.

짬침 국립공원에서 광활한 습지를 확인한 뒤, 두 번째로 찾은 곳은 뷔(Vy) 박사의 안내로 방문한 Cave Pagoda(이하 동굴사찰)였다. 짬침 국립공원에서 5시간을 이동해 도착한 곳이다. 베트남의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150km 남짓한 거리를 이동하는 데도 꼬박 5시간이 걸렸다.

출발 전, 뷔 박사는 "백로가 잠만 자는 곳이고, 지금 시기에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로는 번식을 마친 뒤 번식지와는 별개로 공동 잠자리를 만든다. 한 그루의 큰 나무가 되기도 하고, 하천의 특정 지점이 되기도 한다. 동굴사찰 역시 그런 잠자리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장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동굴사찰의 정문은 독특했다. 이름처럼 터널처럼 이어진 입구는 일반적인 사찰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뷔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은 베트남전쟁 당시 폭격을 피해 몸을 숨기던 장소였다고 한다. 전쟁의 흔적을 지나 절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묘한 긴장감과 경건함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사찰 안에서는 여러 명의 스님이 내부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국내 사찰과는 구조도 분위기도 달랐지만, 공간이 주는 엄숙함은 오히려 더 깊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백로가 있었다. 우리가 찾아온 목적지가 바로 그곳이었다.

절 중심부에는 오래된 회화나무와 매우 유사한 큰 나무 여섯 그루가 서 있었다. 그 위에 수많은 백로가 둥지를 틀고 있었다. 황로, 쇠백로, 해오라기 그리고 가마우지류까지 함께 번식하고 있었다.

멀리서도 활발한 움직임이 보였다. 둥지를 고치고, 가지를 물어 나르고, 자리를 잡고 포란을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해오라기는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일부 개체는 이미 알을 품고 있었고, 일부는 본격적인 번식을 준비하는 단계였다.
 자리 다툼을 하는 해오라기 3마리
자리 다툼을 하는 해오라기 3마리 이경호

"잠만 자는 곳"이라던 설명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가장 놀란 사람은 오히려 뷔 박사였다. 그는 나무 위를 올려다보더니 급하게 차로 뛰어가 카메라를 들고 돌아왔다. 잘못 알고 있던 사실 때문에 뜻밖의 촌극이 벌어진 것이다. 뷔 박사도 이곳은 처음 방문한 곳이라고 했다.

뷔 박사는 본격적인 번식이 진행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 장면은 오히려 중요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베트남 역시 아직 백로에 대한 연구와 기록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절에서 번식 중인 모습을 통해 베트남의 백로 역시 일부는 텃새로, 일부는 이동성 개체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내와 마찬가지로 텃새와 철새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사전 정보가 부족했다.

현장에서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방문이었다. 결국 백로 모니터링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다.


 번식하는 모습
번식하는 모습 이경호

정밀한 조사는 아니었지만 현장에서 확인한 규모만 해도 적지 않았다. 쇠백로 약 30쌍, 작은 가마우지 10쌍, 황로 100쌍, 해오라기 100여 쌍으로 추정됐다. 상당한 규모의 집단번식지였다. 높은 곳까지 직접 확인할 수는 없어 육추가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본격적인 새끼 기르기가 시작되면 상황은 훨씬 더 복잡해질 것이다. 먹이인 생선이 떨어지며 비린내가 심해지고, 배설물과 소음도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도 악취는 분명히 있었다. 국내였다면 이미 민원이 수없이 들어왔을 상황이고, 벌목이 진행되고도 남았을 환경이다. 악취, 소음, 배설물, 분진, 가지 부러짐. 익숙한 갈등이 떠올랐다.

이곳은 달랐다. 사찰은 그 모든 불편을 감수하며 백로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주지 스님은 이곳에 처음 백로가 자리 잡은 것이 1980년대부터라고 설명했다. 이후 개체 수가 점차 늘어나 지금과 같은 대규모 번식지가 되었다고 했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곳은 백로들의 안정적인 쉼터이자 번식지가 되어온 것이다.

사찰에서는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와 "살생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중요하게 여긴다.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종교적 가치가 백로에게는 가장 안전한 보호막이 된 셈이다.

40여 년 이상 버텨온 회화나무도 여전히 건재했다. 일부 황로는 그 가지를 잘라 둥지 재료로 사용하고 있었다. 나무는 새를 지탱하고, 새는 그 위에서 삶을 이어간다. 불편함 속에서도 생태계는 그렇게 지속되고 있었다.

 주지스님 인터뷰 모습
주지스님 인터뷰 모습 이경호

주지 스님은 백로 배설물 문제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관련 기관과 협약을 맺어 정기적으로 배설물을 제거하고 있으며, 관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다. 무조건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을 위한 현실적인 관리가 함께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곳의 번식 구조였다. 국내 백로 번식지에서는 왜가리, 중대백로, 중백로, 황로, 쇠백로, 해오라기 등이 함께 대규모 집단번식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동굴사찰에서는 황로, 쇠백로, 해오라기와 함께 가마우지류가 함께 번식하고 있었다.

 알을 품는가마우지류의 모습
알을 품는가마우지류의 모습 이경호

국내에서는 가마우지류와 백로류가 대체로 분리된 공간에서 번식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한 공간 공유를 넘어, 서로 다른 종이 하나의 공간에서 안정적으로 번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단지 새를 보호하는 기술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주지 스님은 우리의 방문을 계기로 앞으로 법회에서도 백로 보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번식지 보전과 활성화를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미 40년 넘게 공존해온 곳이다. 그런데도 스님은 "더 보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로와 가마우지류의 모습
황로와 가마우지류의 모습 이경호

우리는 늘 무엇을 없애야 할지부터 고민한다. 민원을 줄이고 불편을 없애기 위해, 조용하게 만들려 장애물을 제거한다. 하지만 이곳은 반대로 무엇을 지켜야 할지를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공존하며 살아가는 모습조차 배워야 하는 상황이다. 베트남의 작은 사찰에서, 백로들은 오늘도 안전하게 잠들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아주 작은 씨앗을 보았고, 그 씨앗을 함께 받았다. 백로를 지키는 일이 결국 사람의 태도를 바꾸는 일이다. 어쩌면 이번 베트남 일정은, 그 작은 씨앗을 함께 심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CAVEPAGODA #베트남 #멸종 #백로공존 #대전환경운동연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날로 파괴되어지는 강산을 보며 눈물만 흘리고 계시지 않으신가요? 자연을 위한 활동이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대전환경운동연합 회원이 되시면 함께 눈물을 흘리고 치유 받을 수 있습니다. 회원가입하기! https://online.mrm.or.kr/FZeRvcn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고3 조카가 툭 던진 다섯 글자, 책 제목이 될 줄은 몰랐죠"  "고3 조카가 툭 던진 다섯 글자, 책 제목이 될 줄은 몰랐죠"
  2. 2 [영상] 조현욱 위원장 "투표용지 부족 사태, 참정권 침해한 헌정질서 위기 사안" [영상] 조현욱 위원장 "투표용지 부족 사태, 참정권 침해한 헌정질서 위기 사안"
  3. 3 "드라마 '참교육' 바라보는 심정 씁쓸하다" 교장 통신문 화제 "드라마 '참교육' 바라보는 심정 씁쓸하다" 교장 통신문 화제
  4. 4 거실 누비는 로봇 청소기의 실체, 당신은 괜찮으신가요? 거실 누비는 로봇 청소기의 실체, 당신은 괜찮으신가요?
  5. 5 삼전·하이닉스 '호남 반도체 공장'의 실체... 마냥 기뻐할 수 없다 삼전·하이닉스 '호남 반도체 공장'의 실체... 마냥 기뻐할 수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