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록도에서는 감염을 우려하여 미감아들을 보육소에 격리하여 생활하게 하고 한 달에 한 번 면회를 허락했다. 서로 쳐다만 보며 통곡하는 장면을 보는 사람들이 '탄식의 장소' 라는 의미에서 '수탄장'이라 불렀다.
오문수
"아! 저 사진 속 어딘가에 혹시 아버지가? 반대쪽 어딘가에 얼굴도 모르는 할머니가 계시는 건 아닐까?"
그러나 한센인 역사를 철저히 공부하면서 수탄장 한쪽에 서있는 아이들은 보육원에 수용된 '미감아'들이라는 걸 알았다.
글을 쓰기 시작하다
시민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내가 다음으로 선택한 것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였다. 홀로 외치는 고독함에서 벗어나 타인과 공감대를 형성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글쓰기 책을 30여 권 읽고 나니 글이 보였다.
내게는 세상에 둘도 없는 고향 친구가 있다. 소아과 의사인 조성익. 선친은 일제강점기 독립 투사인 최익현 지사와 함께 독립 운동하다 일경에 잡혀 옥고를 치른 후 고향인 우리 동네에 서당을 세운 우국지사의 후손이다. 친구와 나는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한 시간씩 전화로 대화했다. 일제강점기 기구한 가족사를 지닌 친구와 나는 통하는 게 너무 많았다.
친구가 어느 날 내게 할머니 이야기를 소설로 써보라고 했다. "20년간 <오마이뉴스>에 1500여 기사를 썼으니 기사는 자신 있는데 소설은 불가능하다"며 거절했다. 친구는 한 달간 끈질기게 재촉했다. 어느 날 지인인 이민숙씨와 식사하며 친구가 권한 얘기를 들려줬더니 "선생님은 할 수 있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용기를 얻은 나는 소록도를 방문해 <소록도 80년사>, <소록도 100년사>와 환자들의 말을 기록한 녹취록 다섯 권을 다섯 번씩 읽었다. 3권의 주인공 이야기를 읽다가 엉엉 울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이런 삶이 있었다니. 도전하기로 했다.

▲ 스페인 출신으로 산청 성심원에서 한센인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유의배(Uribe) 신부 모습. 올해로 50년째 한국에서 봉사활동 중이다. 4장에는 부모님과 주고 받은 서간문이 기록되어 있고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 모습도 기록되어 있다.
오문수
그분들의 삶이 어느 정도 이해됐지만 소설로 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어 교보문고를 방문해 <소설쓰기의 모든 것> 시리즈 다섯 권을 사서 다섯 번씩 꼼꼼히 읽으면서 정리했다. 소설에 관한 자료 4만 페이지를 읽었다. 소설 쓰기 시리즈 중 내 가슴속 깊이 와 닿은 말은 시리즈 1권의 저자 제임스 스콧 벨의 "작가는 타고난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라는 말이었다. 그의 말은 내심 불안했던 나에게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와바다 야스나리가 추천한 한센병 문학의 최고봉은 일본 동경 전생원에서 세상을 떠난 호조 다미오가 쓴 <생명의 초야>이다. 책 속에는 격리와 불치가 업인 한센병 환자의 피 맺힌 절규와 지옥 같은 삶 속에서 그가 느낀 삶의 관조가 녹아있다. 그의 책에는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인간 생명의 보편적 명제가 그려져 있다. 그의 책을 읽다 보면 인간 실존의 보편성을 돌아볼 수 있다.
일본 나가사키에서 만난 기무라 선생님은 한국말이 유창하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기무라 선생님은 <태백산맥>을 두 번이나 읽고 나와 동행해 소설의 배경이었던 벌교 일대를 돌아보았다. 한센병 소설을 쓰고 있던 나는 기무라 선생님을 모시고 소록도를 돌아보며 자세히 설명해줬다. "일제강점기에 이런 일이 있었냐"며 깜짝 놀란 기무라 선생님한테 "(일본) 전생원을 안내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한센인의 삶

▲ 일본 동경에 있는 전생원 모습으로 소록도의 전신이랄 수 있다.
오문수
그렇게 2024년 4월, 기무라 선생님과 함께 동경에 있는 한센인 요양소인 전생원을 구경하던 중 한반도 출신 환자인 김하일씨의 사연을 접할 수 있었다. 기무라 선생님의 여동생 집에서 기무라 선생님으로부터 한반도 출신 환자였던 김하일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김하일의 이야기를 한글로 해석해 주시던 기무라 선생님이 눈시울을 적시자 내 눈에서도 눈물이 났다.
책을 완성해 가는 도중에 초안을 읽어보던 여러 명이 눈물을 흘렸다. 영문 번역하던 교사, 출판사 편집국 직원, 초임 교사시절 소록도에서 봉사활동 했다던 교사도 울었다. 어느 날 9장 초안을 읽은 분이 책을 읽다가 울었다며 전화가 왔다.
"선생님 이 소설은 한국인만 읽기에 너무 아까운 글이에요. 영어로 번역해 전 세계에 알렸으면 좋겠어요"
해서 나를 포함한 영어 교사 셋이 번역 작업에 도전했다. 소설 원본을 AI로 번역해 틀린 부분을 교정하고 영어권 독자가 읽었을 때 어색한 부분은 원어민 교사 레이첼(Rachel Crisp)에게 감수를 부탁했다. 30년 동안 영어를 가르쳤지만 영어는 바로 눈에 들어오지가 않아 애를 먹었다. 모르는 전문 용어가 많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국과 영어권 문화가 다른 부분이 있어 애를 먹기도 했다.

▲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발병해 동경 전생원에 입원했던 김하일 모습으로 실명했을 뿐만 아니라 손까지 마비되자 혀로 글자를 읽고 있는 모습. 일명 설독 모습이다.
오문수
한글판은 금방 눈에 띄었지만 영어판은 정답이 보이지 않아 괴로웠다. "내가 미친 짓 한 게 아닐까?" 하며 애태우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한글판과 영문판이 출판됐다. 일본에서는 기무라 선생님이 AI를 이용해 일본어로 번역하셨다고 한다. 인생에서 남는 것은 기억 뿐이다. 글로 쓴 추억만 남는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저자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영원한 자유인이기를 열망하며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은 무덤이 아니라 내 기억 속에 묻혔으니 내가 죽지 않는 한 그들도 죽지 않고 살아 간다."
2001년 5월 25일,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과거 정책이 한센병 환자·회복자의 인권을 제한했고 큰 고통을 줬다"며 사과를 표명했다. 일본은 한센병에서 완치된 분들의 공식 명칭을 '회복자'로 부르고 대만도 비슷한 의미의 '강복자'로 부른다. 다음은 성심원에서 살았던 세례명 프란체스코씨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했던 말이다.
"이 병 걸려봐요. 살고 싶지 않아요. 이 병은, 부모도 형제도 자식도 다 떠나가게 만들어요. 신이 있습니까? 신은 정말 인간을 사랑합니까? 신이 인간을 구원합니까?
비인간 대접을 받으며 살았던 이 분들의 인권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

▲ 한센인의 아픔을 시로 쓴 한하운의 시가 벽화로 적혀있다. 오마도간척기념 공원 뒷편 벽에 있다.
오문수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공유하기
30년간 영어교사였던 내가 '한센인 소설'을 쓴 이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