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몇시간씩 사라졌던 민수. 그곳은 민수가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었다. (AI생성 이미지)
오마이뉴스
그날 이후, 민수와 나의 잦고 긴 상담이 시작되었다. 나는 낡은 교사의 언어로 아이를 붙잡았다.
"그래도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 해. 힘들다고 피하면 안 돼. 가혹하지만 이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도 삶의 한 과정이야."
아이의 어머니 역시 눈물을 흘리며 "선생님, 제발 우리 아이 좀 잡아주세요"라고 간곡히 부탁하셨다. 하지만 아이는 교실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너무 고통스럽다고 했다.
수업 시간에도 화장실에 간다며 사라져 몇 시간씩 돌아오지 않는 일이 잦아졌다. 처음엔 그저 몸이 아픈 줄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좁은 화장실 칸이, 질식할 것 같은 교실에서 도망친 아이가 숨을 고를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더 이상 나는 그 아이를 억지로 교실에 앉혀둘 명분을 찾지 못했다. 결국 민수는 자퇴 서류에 도장을 찍고 학교를 떠났다.
자퇴 후의 삶은 아이의 도서관 웃음처럼 평온하지만은 않았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전화를 걸어도 민수는 받지 않았다. 이따금 연락이 닿은 어머니는 "아이가 매일 방에만 틀어박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상담도 다 거부한다. 이러다 아이가 일상을 회복하지 못할까 봐 두렵다"며 통곡하셨다.
학교 밖으로 밀려난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깊은 부채감과 무력감이 나를 짓눌렀다.
학교를 떠난 아이가 걸어온 뜻밖의 전화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조차 그 아픈 기억을 일상 속에 묻어두고 살아가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민수였다.
몇 년 만에 목소리를 들려준 아이는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고 했다.
학교 밖의 삶이, 궤도를 이탈한 자들의 여정이 마냥 동화처럼 아름답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상의 서늘한 시선과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다는 막막함 앞에서 수없이 흔들리고 방황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화기 너머의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가끔 앞이 안 보여서 무섭긴 한데, 그래도 제가 선택한 거라서 하루하루가 지낼 만 해요."
트랙을 이탈했다고 해서 삶이 단숨에 완성되거나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는 타인이 쥐여준 채찍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겨우 살아남은 질문을 붙들고 숨 쉬는 법을 스스로 찾아가고 있었다.
등을 떠미는 손을 거두고, 질문의 방향을 틀다
지금 우리 교실을 둘러보면 쉬는 시간에도 수능문제집에 얼굴을 묻고, 어느 날은 원형탈모를 드러내며 쓴웃음을 짓는 아이들이 있다. 모의고사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이번 생은 망했다"며 자기 존재를 깎아내린다. 아이들은 자신을 한 사람의 삶이 아니라 '점수를 올려야 하는 투자 대상'처럼 다루며 겨우 버티고 있다.
그날 이후 나는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스스로 묻는다. 나는 아이들이 저마다의 방향을 발견할 시간을 견뎌주는 사람인가, 아니면 속도를 높이라며 채찍질하는 시스템의 부품인가.
우리는 불안에 떠는 아이들의 손에 차가운 목표의 목록을 쥐여주기 전에 물어야 한다. 우리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이 '몇 등, 어느 대학'이라는 성취표인지, 아니면 그 뒤에 가려진 한 사람의 고유한 삶인지 말이다.
나는 이제 아이들의 등을 떠밀던 손을 거두려 한다. 교육의 본질은 정해진 도착지에 아이들을 남보다 빨리 밀어 넣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 각자가 자기 보폭으로, 자신이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묻고 답할 수 있도록 질문이 머물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어야 한다.
"무엇이 되고 싶니?", "어느 대학에 갈 거니?"라는 추궁 대신, "어떤 삶을 살고 싶니?", "너는 언제 가장 숨이 편해지니?"라고 묻는 사회.
그 작은 질문의 틈이 열릴 때, 아이들은 남을 짓밟고 달려야 하는 숨 막힌 트랙에서 잠시 내려올 수 있다. 민수가 도서관의 고요 속에서, 그리고 화장실의 좁은 칸에서 간절히 원했던 것은 더 빠른 속도가 아니었다. "왜"라는 질문이 사라지지 않도록,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를 수 있는 작은 여백이었다.
* 학생 보호를 위해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3
대한민국 교육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걱정이 많습니다. 또한 교육의 본질 회복에 관심이 많습니다. 현재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공유하기
"화장실 다녀올게요" 몇 시간씩 사라지는 아이, 알고 보니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