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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다녀올게요" 몇 시간씩 사라지는 아이, 알고 보니

질식할 것 같은 교실에서 도망쳐 유일하게 숨 고르던 공간...아이들의 등을 떠밀던 손을 거두려 한다

등록 2026.05.04 06:39수정 2026.05.04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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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8월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D-100일을 하루 앞두고 부산 수영구 덕문여자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수험생들이 자율학습을 하고 있다. (기사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자료사진)
지난해 8월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D-100일을 하루 앞두고 부산 수영구 덕문여자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수험생들이 자율학습을 하고 있다. (기사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자료사진) 연합뉴스

민수(가명)가 학교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던 그날, 나는 교문 앞에 서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급히 부모에게 연락하고 실종 신고를 한 뒤, 동료 교사들이 흩어져 학교 인근을 뒤지던 긴박한 시간은 이상하게도 지금 기억 속에서 흐릿하다.

그날 우리는 아이가 있을 만한 곳을 하나씩 찍어가며 찾았다. 인근 편의점과 공원은 물론이고, 교사 몇 명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 피시방들까지 들어가 수색하러 다녔다.

오히려 내 뇌리에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장면은, 해가 붉게 기울 무렵 민수가 교문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던 순간이다.

반나절 전, 멍하고 지쳐 있던 얼굴과는 전혀 달랐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가볍고 환했으며, 교실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투명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어디에 다녀왔느냐는 물음에 아이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냥 인근 도서관에 있었어요."

학교를 발칵 뒤집어놓은 아이치고는 너무 평온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아이는 그곳에서 대단한 공부를 한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저 열람실 구석 자리에 가만히 앉아 창밖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누군가 연필을 굴리는 사각거림과 책장 넘기는 소리를 들으며 반나절을 보냈다고 했다.

그 건조하고 고요한 고백을 듣는 순간, 안도감과 함께 설명하기 어려운 서늘함이 가슴을 쳤다.


"세상이 모래처럼 바스라져 보였어요"

나는 오랫동안 '목표'가 삶을 이끄는 가장 확실한 동력이라고 믿어왔다. 성적, 등급, 명문대 진학. 숫자로 증명되는 이 명확한 목표들은 학교를 운영하고 아이들을 관리하기에도 분명 편하다. 그래서 어른들은 불안해하는 아이들에게 늘 같은 말을 건넨다.


"조금만 더 참아. 대학이라는 목표만 보고 가."

그 말이 거친 세상을 버티게 할 동아줄이 될 거라 굳게 믿었다. 그러나 상담실에 마주 앉은 민수는 내가 맹신해 온 '목표의 신화'가 어떤 순간에는 얼마나 폭력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선생님, 수업을 듣는데 갑자기 세상이 다 모래처럼 바스라져 보였어요. 미래에 행복해지기 위해 꾹 참고 열심히 해서 대학 가고 취직하고… 그렇게 하면 정말 행복해질까요? 당장 현재가 너무 고통스러운데, 언제 올지도 모르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고통을 참는다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었어요. 갑자기 목이 졸린 것처럼 숨이 안 쉬어졌어요. 그런데 도서관 구석에서 가만히 하늘을 보고 있으니까, 그때야 비로소 숨이 트이더라고요."

민수는 목표를 잃어버려서 방황한 것이 아니었다. 맹목적인 목표만 남고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삶의 이유, 즉 방향이 지워진 현실 앞에서 숨이 막혀가고 있었던 것이다.

목표 자체가 문제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문제는 목표가 삶의 전부가 되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회복할 여백과 "왜"라는 질문이 사라질 때 목표가 사람을 붙드는 끈이 아니라 목을 조이는 밧줄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화장실 칸에서 겨우 숨을 쉬던 아이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몇시간씩 사라졌던 민수. 그곳은 민수가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었다. (AI생성 이미지)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몇시간씩 사라졌던 민수. 그곳은 민수가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었다. (AI생성 이미지) 오마이뉴스

그날 이후, 민수와 나의 잦고 긴 상담이 시작되었다. 나는 낡은 교사의 언어로 아이를 붙잡았다.

"그래도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 해. 힘들다고 피하면 안 돼. 가혹하지만 이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도 삶의 한 과정이야."

아이의 어머니 역시 눈물을 흘리며 "선생님, 제발 우리 아이 좀 잡아주세요"라고 간곡히 부탁하셨다. 하지만 아이는 교실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너무 고통스럽다고 했다.

수업 시간에도 화장실에 간다며 사라져 몇 시간씩 돌아오지 않는 일이 잦아졌다. 처음엔 그저 몸이 아픈 줄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좁은 화장실 칸이, 질식할 것 같은 교실에서 도망친 아이가 숨을 고를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더 이상 나는 그 아이를 억지로 교실에 앉혀둘 명분을 찾지 못했다. 결국 민수는 자퇴 서류에 도장을 찍고 학교를 떠났다.

자퇴 후의 삶은 아이의 도서관 웃음처럼 평온하지만은 않았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전화를 걸어도 민수는 받지 않았다. 이따금 연락이 닿은 어머니는 "아이가 매일 방에만 틀어박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상담도 다 거부한다. 이러다 아이가 일상을 회복하지 못할까 봐 두렵다"며 통곡하셨다.

학교 밖으로 밀려난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깊은 부채감과 무력감이 나를 짓눌렀다.

학교를 떠난 아이가 걸어온 뜻밖의 전화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조차 그 아픈 기억을 일상 속에 묻어두고 살아가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민수였다.

몇 년 만에 목소리를 들려준 아이는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고 했다.

학교 밖의 삶이, 궤도를 이탈한 자들의 여정이 마냥 동화처럼 아름답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상의 서늘한 시선과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다는 막막함 앞에서 수없이 흔들리고 방황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화기 너머의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가끔 앞이 안 보여서 무섭긴 한데, 그래도 제가 선택한 거라서 하루하루가 지낼 만 해요."

트랙을 이탈했다고 해서 삶이 단숨에 완성되거나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는 타인이 쥐여준 채찍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겨우 살아남은 질문을 붙들고 숨 쉬는 법을 스스로 찾아가고 있었다.

등을 떠미는 손을 거두고, 질문의 방향을 틀다

지금 우리 교실을 둘러보면 쉬는 시간에도 수능문제집에 얼굴을 묻고, 어느 날은 원형탈모를 드러내며 쓴웃음을 짓는 아이들이 있다. 모의고사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이번 생은 망했다"며 자기 존재를 깎아내린다. 아이들은 자신을 한 사람의 삶이 아니라 '점수를 올려야 하는 투자 대상'처럼 다루며 겨우 버티고 있다.

그날 이후 나는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스스로 묻는다. 나는 아이들이 저마다의 방향을 발견할 시간을 견뎌주는 사람인가, 아니면 속도를 높이라며 채찍질하는 시스템의 부품인가.

우리는 불안에 떠는 아이들의 손에 차가운 목표의 목록을 쥐여주기 전에 물어야 한다. 우리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이 '몇 등, 어느 대학'이라는 성취표인지, 아니면 그 뒤에 가려진 한 사람의 고유한 삶인지 말이다.

나는 이제 아이들의 등을 떠밀던 손을 거두려 한다. 교육의 본질은 정해진 도착지에 아이들을 남보다 빨리 밀어 넣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 각자가 자기 보폭으로, 자신이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묻고 답할 수 있도록 질문이 머물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어야 한다.

"무엇이 되고 싶니?", "어느 대학에 갈 거니?"라는 추궁 대신, "어떤 삶을 살고 싶니?", "너는 언제 가장 숨이 편해지니?"라고 묻는 사회.

그 작은 질문의 틈이 열릴 때, 아이들은 남을 짓밟고 달려야 하는 숨 막힌 트랙에서 잠시 내려올 수 있다. 민수가 도서관의 고요 속에서, 그리고 화장실의 좁은 칸에서 간절히 원했던 것은 더 빠른 속도가 아니었다. "왜"라는 질문이 사라지지 않도록,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를 수 있는 작은 여백이었다.

* 학생 보호를 위해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목적과목표 #교육의본질 #자퇴 #입시경쟁 #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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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교육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걱정이 많습니다. 또한 교육의 본질 회복에 관심이 많습니다. 현재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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