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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가 권리 주체가 될 때 사망 사고 줄어든다

노동부 안전보건격차개선과에 바란다

등록 2026.04.29 18:17수정 2026.05.06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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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위험의 이주화'라는 표현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용어가 되어 버렸다. 중대재해로 희생되는 노동자의 얼굴이 하청·비정규직·청년에서 이주노동자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정주노동자가 떠난 대한민국의 일터, 공급사슬의 가장 말단에 위치한 뿌리산업의 곳곳에는 국가가 주도하여 이주노동력을 공급하는 '고용허가제'가 자리잡은 지 22년이 되고 있다.

그 세월 동안 이주노동자가 산업재해 희생자의 중심부에 서게 됐다. 이주노동자 산재사망은 2022년 108명, 2023년 112명, 2024년 114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다행히 2025년에는 77명으로 일정 수치상 감소세를 보였지만, 여전히 안도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2026년 4월 26일 이주노동자 메이데이(노동절) 행사에서 이주노조는 올해 들어서만 벌써 16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이 단순히 산재 사망의 희생자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2월 화성의 한 공장에서 사업주가 장기에 에어건을 쏴 장기 파열에 이른 사건과 4월 말 인천의 한 섬유공장에서 기숙사에 머물지 않았다는 이유로 관리자가 머리채를 잡고 폭력을 가한 사건은 이주노동자가 일터에서 일상적으로 괴롭힘과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주노동자의 노동 환경은 단순한 안전 문제를 넘어, 인간의 존엄과 기본권이 침해되는 구조적 문제이다.

 2026.3.17 전국이주노동인권단체들이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주노동자 중대재해를 규탄하고, 근본대책을 요구했다.
2026.3.17 전국이주노동인권단체들이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주노동자 중대재해를 규탄하고, 근본대책을 요구했다. 사람이왔다

정부의 안전보건격차개선과 신설과 이주노동자 안전대책

정부 역시 '위험의 이주화'의 심각한 현실을 인지하고 있다. 지난해 출범과 동시에 산재와의 전쟁을 대대적으로 선포한 이재명 정부는, 고용노동부와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발표한 '9.15 노동안전종합대책'에서 이주노동자를 대표적인 안전보건 취약계층으로 꼽으며 여러 정책 과제들을 제시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고용허가제와 연계하여 이주노동자 사망사고 발생 시 해당 사업장에 대한 3년간의 고용허가 제한을 포함하여, 부상·질병 발생 시 안전 의무 위반이 확인되면 1년간 고용허가를 제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와 함께 모국어 안전교육 확대, VR(가상현실) 안전 교육, 장기근속 등 역량 있는 이주노동자를 '안전리더'로 지정해 현장에서 안전교육·작업 노하우 전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하겠다는 방향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이어 이번 4월 10일에는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본부 산하에 '안전보건격차개선과'를 신설해 이주노동자, 고령노동자, 여성노동자 등의 안전보건 격차를 줄여나가겠다고 발표했다.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이 이주노동자 차별철폐 네트워크 '사람이왔다'와 추진한 간담회를 계기로 안전보건격차개선를 신설해 제도와 정책을 보완해 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그 자체가 반가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이주노동자의 안전보건 정책이 보다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주노동자도 '보호의 대상'이 아닌 '예방의 주체'로


이재명 정부가 작년 9.15 노동안전종합대책에서 내세운 역대 정부와의 안전 정책 차별성의 핵심은 노동자가 일터에서 '보호의 대상'이 아닌 '예방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고 정책 방향을 설정한 것에 있다. 이를 위해 비록 제한적이지만, 위험성평가 노동자 참여,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의 활성화, 작업중지권의 일터 정착을 위한 여러 법제도의 정비가 동반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정책방향은 예외없이 이주노동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또한 노동안전종합대책에서 대책의 일부로 제시한 이주노동자 안전리더 양성과 업무 노하우 전수 등의 정책 방향이 현실에서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냉정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에서, 업무 노하우 전수는 위험으로부터의 예방으로 기능하기보다는 위험을 감수하도록 강요하고, 위험을 내면화하는 방식으로 변질되어 왔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지난 3월 이천의 자갈 가공업체에서 사망한 베트남 이주노동자 '뚜안'은 가동되는 컨베이어 벨트를 멈추지 않은 채 이물질을 제거하고, 정비하는 '업무 노하우'를 선배 노동자들로부터 업무 방법으로 교육받았다. 지난해 8월 화성의 플라스틱 사출공장에서 죽음에 이른 이주노동자 '디와즈 타망'의 사건과 판박이처럼 닮았다. 그도 롤러를 가동하며 청소하고, 정비해야 작업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업무 노하우'로 교육받았고 청소 작업 중 롤러에 팔이 말려들어가 사망했다.

이렇듯 설비를 멈추지 않고 작업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위험천만한 작업 관행'을 '업무노하우'로 버젓히 둔갑하는 일터에서 어떤 교육도 예방 대책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이주노동자 안전 정책의 중심은 '숙련 강화'가 아니라 '권리 보장'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해야만 한다.

이주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위험을 감내하며 일하는 '업무 노하우'가 아니다. 위험하다면 위험하다고 말하고, 제기하며, 개선을 요구하고, 위험 작업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이다.

 2026년 4월 12일 경기이주평등연대가 경기도 화성에서 이주노동자 메이데이를 앞두고 순회 집회를 열었다.
2026년 4월 12일 경기이주평등연대가 경기도 화성에서 이주노동자 메이데이를 앞두고 순회 집회를 열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안전 교육 강조만으로 이주노동자 사고 막을 수 없다

이주노동력의 국내 유입과 함께 역대 정부는 안전대책으로의 일환으로 안전교육의 내실화를 반복적으로 강조해 왔다. 물론 노동재해 예방을 위해 안전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모든 노동자가 예외없이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원칙이 교육의 핵심으로 전제되지 않으면, 이주노동자를 산업재해로부터 예방한다는 것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일터에서 어떻게 위험이 현실화될 수 있는지를 예측·평가해, 개선해 나가는 위험성평가의 작은 사업장 정착과 이주노동자 참여 보장, 위험한 작업을 거부할 권리, 사고가 예견될 때 작업을 중지할 권리, 위험한 사업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권리로서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권리 행사가 어떠한 불이익으로도 이어지지 않도록 법·제도가 보호하고 뒷받침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더 나아가 이주노동자가 정주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일터에서 안전에 대해 말할 수 있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사업주에게 종속된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관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사업주 종속적인 고용구조를 그대로 둔 채 안전교육과 업무노하우 전수만을 강화해서는 안전보건 격차를 해소하는데 근본적인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설되는 안전보건격차개선과에서 고용허가제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필수로 시작하기를 바란다. 이는 단지 제도 개선의 문제가 아니라, 더 이상 죽지 않고 일하겠다는 이주노동자의 절박한 요구에 우리 사회가 응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손진우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입니다.
#산업재해시민 #이주노동자 #안전보건격차개선과 #차별금지 #고용허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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