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여래좌상 대불 일본 국보 고토쿠인 아미타여래좌상 대불. 높이 13.3m, 무게 121t에 달하는 대불은 800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임병식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건너간 관월당은 건축 기법과 단청 문양을 토대로 조선 후기 왕실 사당으로 추정한다. 정확한 원위치와 명칭은 규명해야 할 과제다. '관월당' 환수는 한일 양국에 상징적인 가교로 주목받는다. 건축물이 통째로 돌아온 건 처음이며, 민간 차원 반환이라는데 의미가 있다.
관월당 환수는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추구하는 실용 외교에도 부합한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그동안 관월당 환수에 각별한 정성을 쏟았다. 사토 주지의 반환 의지가 결정적이었으나, 치밀한 후속 작업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어려운 일이었다.
관월당 환수는 건축물에 그치지 않고 양국 우호에 디딤돌을 놓았다. 사토 주지는 관월당 반환과 함께 한·일 문화유산 학술교류에 사용해달라며 1억 엔을 쾌척했다. 사토 주지는 기금 사용처로 한일 국가유산 연구에 한정했다. 국가유산청은 젊은 연구자들을 지원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한·일 문화유산을 연구하는 신진 연구자를 지원하고, 한·일 문화유산을 다룬 저술 활동과 번역 작업, 관련 심포지엄 개최에 사용할 예정이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원금은 유지하면서 이자 수익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방식을 계획하고 있다"며 "단순한 학술 지원을 넘어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협약식에서 사토 주지는 "문화유산은 제자리로 돌아가는 게 당연하기에 관월당 반환을 결정했으며, 기금 출연은 화해와 신뢰 구축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토 주지는 게이오대학 교수(민족고고학)이기도 하다. 그는 홋카이도 아이누와 아메리카 인디언, 호주 아보리진 연구 경험을 언급하며 "불행한 과거 위에서 미래 세대가 학술교류로 새로운 신뢰를 쌓길 바란다"며 거듭 강조했다. 허민 청장 또한 "문화유산을 통해 협력 가능성을 보인 상징적 사례"라며 "신뢰 구축의 디딤돌로 삼겠다"고 화답했다.

▲관월당 빈터 조선 왕실 사당으로 추정하는 관월당은 100년 넘게 고토쿠인에 있었다. 지난해 한국으로 반환 이후 빈 공간으로 남은 관월당 터를 배경으로 사토 다카오 주지와 허민 국가유산청장
국가유산청 제공
우리 언론은 관월당 환수를 '100년만의 귀환'이라며 특별한 의미를 두었다. 관월당은 고토쿠인에서 일본 국보 아미타여래 대불과 함께 조선 건축미를 자랑하는 투톱이었다. 관월당은 서울에서 도쿄를 거쳐 가마쿠라까지 유랑했다.
1924년 (일본인 기업가)스기노 기세이(杉野喜精·1870∼1939)는 도쿄 자택에 있던 관월당을 고토쿠인에 기증했다. 지난해 반환 이후 대불 뒤 관월당이 있던 자리는 빈터다. 고토쿠인은 그 자리에 관월당의 유랑 역사와 건축미를 소개하는 아카이브를 구축할 계획이다.
고토쿠인을 출발해 도쿄로 돌아오는 길, 관월당 환수가 가져올 긍정적 후광을 기대했다. 일본에 소재한 우리 문화유산 환수에 촉매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른 한편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토 주지의 학자적 양심과 종교인으로서 신념은 감동적이지만, 모든 문화유산 환수에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모테산토 힐즈 인근 네즈(根津) 미술관은 좋은 사례다. 조선 범종과 석물 등 우리 문화유산을 다수 소장하고 있지만 우리의 대화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결국 선의에만 기댄다면 소극적이다. 문화유산 환수는 감정이나 선의에 의지하기보다 치밀한 명분과 전략, 그리고 분명한 원칙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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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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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만에 돌아온 '관월당', 한·일 관계 회복에 디딤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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