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 오후 경남 진주시 정촌면 BGF로지스 진주센터 일대에 마련된 화물연대 사망 조합원 임시 분향소에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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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직후 운전자는 특수상해 혐의로 체포됐다가 수사 과정에서 살인 및 특수상해 혐의가 적용돼 구속됐다. 수사와 재판을 통해 최종 책임이 가려져야 하지만, 그 이전에 분명한 사실이 있다. 이 죽음은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 교섭 공백, 다단계 외주화, 대체 수송 강행, 현장 안전 통제 실패가 한꺼번에 겹친 결과였다는 점이다.
사고 이틀 뒤인 4월 22일 BGF로지스와 화물연대의 교섭 상견례가 열렸다. 4월 29일 새벽 잠정합의가 나왔고, 조인식은 고인의 명예회복 문구 조율로 하루 늦춰져 4월 30일 최종 체결됐다. 합의에는 운송료 7% 인상, 분기별 1회 유급휴가, 대차비용 상한 기준 마련, 손해배상 청구와 가처분 신청 취하, 사측의 책임 통감과 유가족 사과 등이 담겼다. 죽음 이후에야 열린 문이었다.
법은 바뀌었지만, 책임의 문턱은 남았다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원청 사용자성이다.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개정 노동조합법은 근로계약을 직접 체결하지 않았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를 사용자로 볼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임금, 노동시간, 작업 방식, 휴식권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교섭 책임을 회피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그러나 정부는 사고 직후 이번 사안을 노란봉투법상 원·하청 교섭 문제와 구분했다. 화물연대가 노조법상 별도 설립 신고를 마친 노조가 아니고, 노동위원회의 사용자성 인정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노동계는 이를 법 취지의 협소한 해석이라고 반박했다.
절차는 중요하다. 그러나 절차가 생명보다 앞설 수는 없다. 법이 보호해야 할 사람을 보호하지 못하고, 교섭 테이블이 열리기까지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법의 목적은 다시 물어야 한다. 진주 사고는 개정법의 조문 문제가 아니라, 그 법이 현장의 다단계 물류 구조와 만날 때 어디서 멈추는지 보여준 사건이다.
일본 과로사방지법이 남긴 교훈
일본은 과로사 문제를 한국보다 먼저 사회적 의제로 겪었다. 2014년 일본은 과로사 등 방지대책추진법을 제정했다. 과로사와 과로자살을 개인의 건강 문제로만 보지 않고, 사회가 예방해야 할 구조적 문제로 인정한 법이었다.
하지만 법이 생겼다고 죽음이 저절로 줄지는 않았다. 과로사방지법 시행 10년을 돌아본 일본 논의에서 메이지대학 구로다 겐이치 명예교수는 기업의 노력이 부족하고, 기업들이 경제 원리를 우선시하며 법 준수를 등한시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법이 선언에 머물고 기업문화와 현장운영이 바뀌지 않으면 과로와 과로자살은 반복된다는 교훈이다.
한국의 물류 현장도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사고가 날 때마다 운전자, 현장 경찰, 개별 관리자만 따지고 구조를 묻지 않는다면 비극은 다른 이름으로 돌아온다. 실패학의 핵심은 "누가 실수했는가"보다 "왜 그런 실수가 반복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묻는 데 있다. 진주가 던진 질문도 바로 그것이다.
정부와 공공기관도 산업안전의 '디지털 전환(DX)'을 추진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은2026년 4월 AI·스마트 산업안전기술 우수사례 챌린지를 공고했다. 인공지능과 센서, 영상 분석, 웨어러블 장비, '디지털 트윈'을 활용해 위험을 사전에 감지하고 사고를 줄이려는 방향은 옳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최근 추산도 매년 약 293만 명의 노동자가 업무 관련 사고와 질병으로 숨진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기술 도입은 안전의 출발일 뿐이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이 4월 29일 발표한 점검 결과는 뼈아프다. 최근 3년간 약 800억 원이 투입된 스마트 안전장비 지원사업에서 표본장비 345개 중 60%가 안전기능 미사용, 고장, 방치 등으로 제대로 활용되지 않았다. 보조금 부정수급도 81건, 약 94억 원 규모로 적발됐다. 장비는 설치됐지만 안전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진주 물류센터에도 첨단카메라와 충돌방지센서가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것만으로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까. 위험구역에 사람이 감지되면 출차가 자동 중지되는 시스템, 대체수송 투입 전 노사·경찰·사업주가 함께 확인하는 안전 프로토콜, 운전자의 피로와 압박을 줄이는 배차기준, 위험 상황에서 누구나 멈춤을 요구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이 없다면 센서는 경고음을 낼 뿐이다.
AI가 해야 할 일은 노동자를 더 촘촘히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더 일찍 드러내는 것이다. 장시간 야간운전, 휴무 반납, 과도한 대차비, 대체 수송 강행, 현장대치 상황 같은 위험 변수를 데이터로 묶어 "이 출차는 멈춰야 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의 목적은 효율이 아니라 생명이어야 한다.
노동절의 약속은 분향소 앞에서도 유효해야 한다

▲ 이재명 대통령이 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노동절 기념식에서 기념사하고 있다. 청와대가 노동절 기념식을 개최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202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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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처음으로 노동절 기념식이 열렸다. 63년 만에 '근로자의날'이 '노동절'이라는 이름을 되찾고 법정공휴일이 된 첫해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일터의 안전만큼은 결코 타협하지 않겠다", "모든 노동자가 노동 기본권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 "노동과 기업이 함께 가는 상생의 길을 열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이 진주 물류센터 앞 분향소의 국화꽃 앞에서도 유효하려면, 원청 책임과 교섭권, 휴식권, 작업중지권을 제도 안에 분명히 넣어야 한다. 다단계 하청 구조를 단순화하고, 원청이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영역에 대해서는 실질적 책임도 지도록 해야 한다. BGF로지스와 화물연대의 4월30일 합의가 의미 있는 첫걸음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 합의가 개별 사건의 봉합으로 끝나면 같은 구조는 다른 현장에서 되살아난다.
보호 밖 노동자의 규모는 기준에 따라 다르게 잡힌다. 정부는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의 실질 인원을 약 210만 명으로 추산하지만, 국세청 인적용역 사업소득 원천징수 자료로 본 비임금 노동자는 2024년 869만 명에 육박했다. 숫자의 폭은 넓지만 메시지는 같다. 한국 사회에는 계약상 사장님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노동자인 사람들이 너무 많다.
산업안전 AI는 이들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기술이 책임 회피의 장식물이 아니라 위험을 멈추는 권한과 결합해야 한다. 알고리즘이 노동강도를 높이는 도구가 아니라 휴식과 교섭, 나아가 안전을 보장하는 근거가 되어야 한다.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장비는 켜져 있어도 안전은 꺼져 있다.
죽음의 외주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편의점 냉장고가 새벽마다 채워지는 동안, 누군가는 여전히 법의 바깥과 책임의 가장자리에서 일한다. 노동절의 이름을 되찾은 2026년, 우리가 되찾아야 할 다음 이름은 안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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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로 있으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주된 관심분야는 글로벌 위기관리 및 재난·안전학, 일본의 정치경제, 동아시아 국제관계, 국제기구론, 국경학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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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노동절의 약속은 분향소 앞에서도 유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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