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긴밤 겉표지.
문학동네
<긴긴밤>(2021년 2월 출간)의 표지는 단번에 시선을 끈다. 파스텔톤이라기엔 짙고, 그레이가 섞였다고 하기엔 선명한 색감. 핑크빛 하늘과 초록빛 풀밭, 그 위에 마주 선 코뿔소와 펭귄. '긴긴밤'이라는 제목은 세련되면서도 차분하다. '책이 참 예쁘다'는 감성과 '(초등학생에겐) 글밥이 제법 되겠는데'라는 현실적인 생각이 동시에 스쳤다.
이 책은 지난 4월 29일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 두 명과 진행 중인 독서토론 수업의 필독서였다. 글로만 된 책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과연 잘 읽어올 수 있을까 우려했지만, 책을 펼쳐 드는 순간 걱정은 금세 무색해졌다.
이야기는 깊은 밤을 떠올리게 하는 짙은 남색 바탕 위, 흰 글씨로 시작한다. 이름 없는 한 새끼 펭귄의 시선이다. 긴긴밤을 묵묵히 살아낸 치쿠와 윔보, 그리고 노든의 돌봄 속에 태어나 마침내 바다에 이른 한 펭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지구상 마지막으로 남은 흰바위코뿔소 노든이 있다. 코끼리 고아원에서 자란 노든은 코끼리들의 돌봄 속에 불편함 없이 살아가지만, 동물원 밖에 자신과 닮은 존재들이 있다는 까마귀의 이야기를 듣고 동물원 밖으로 나갈 결심을 한다.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사실 그곳에 머무르려 했다.
"훌륭한 코끼리가 되었으니,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군 그래."
코끼리 할머니는 그의 갈망을 읽고 조언을 건넸고, 노든은 그 말에 용기를 낸다.
동물원 밖으로 나간 노든은 혹독하고 잔인한 시간을 겪는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얻지만 곧 뿔 사냥꾼들에 의해 가족을 잃는다. 분노와 절망에 갇힌 노든은 다시 동물원 생활을 하게 되고, 그곳에서 또 다른 코뿔소 앙가부를 만나 삶을 회복해 간다. 하지만 곧, 그마저도 잃고 만다.
어느 날 전쟁으로 동물원이 무너지고, 도망치는 길에 노든은 알이 담긴 찌그러진 양동이를 입에 물고 있는 치쿠를 만난다. 펭귄 윔보와 치쿠는 버려진 알을 품고 있었고, 치쿠는 죽어가는 연인과 새 생명을 바다에 데려다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홀로 길을 나서는 중이었다. 이 여정에 동참한 노든은 치쿠와 긴긴밤을 함께하며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새끼 펭귄이 태어나기 직전, 치쿠는 세상을 떠난다. 치쿠의 부탁을 받은 노든은 새끼 펭귄을 바다 가까이로 데려가기 위해 또 다른 긴긴밤을 견딘다. 그리고 마침내 바다에 닿기 전, 둘은 이별의 순간을 맞는다. 노든은 곁에 머물고 싶어 하는 펭귄에게, 자신이 들었던 말을 건네며 그를 떠나보낸다.
"너는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그러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 이리 와. 안아 줄게. 오늘 밤은 길거든."
마침내 홀로 바다에 도달한 펭귄은 바다가 보이는 절벽 위에 서서 긴긴밤 속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린다. 자신을 세상에 존재하게 한 치쿠와 윔보, 노든을 다시 살게 한 앙가부, 그리고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노든의 아내. 그들의 삶과 선택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코뿔소로서, 펭귄으로서 살아가기로 선택했던 이들의 여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상실과 두려움, 그리고 긴 시간의 어둠을 통과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책 제목인 '긴긴밤'은 바로 그 시간을 의미한다. 어두움이 쌓이고 쌓여 만든 긴긴밤을 묵묵히 살아간 노든의 이야기는 슬프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다. 없으면 가장 좋겠지만, 반짝이는 날보다 훨씬 더 많은 인생의 그 긴긴밤들을 꿋꿋이 살아내는 것의 가치를 떠올리게 한다. '살면 살아진다'라는 말처럼.
이 작품은 절망을 말하면서도 '돌봄'을 놓지 않는다. 노든을 살게 한 것은 앙가부였고,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을 끝까지 지켜낸 것은 치쿠와 윔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노든이 그 역할을 이어받는다. 삶은 혼자의 힘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손길이 이어지고, 그 손길이 또 다른 생을 살게 한다. 긴긴밤을 지나 마침내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서로를 돌보는 삶, '함께함'에 있음을 잔잔히 말한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금이, 창비)이 생각났다. 헤아릴 수 없는 인생의 굴곡을 살아낸 여자들의 이야기, 그 안에서 '살게 되는' 삶을 보았다. 그 여정 곳곳에 스며든 타인의 손길을 보았다. 1.5인분 같은 1인분의 우동으로 남편과 아빠를 잃은 세 모자에게 살 힘을 주었던 <우동 한 그릇>(구리 료헤이, 청조사)도 생각났다. 엄마와 아내를 잃은 세 부녀에게 19년 동안 매주 반찬을 나눠온 도시락 가게 사장님인 지인이 생각났다.
표지와 삽화만큼이나 아름다운 묘사와 이야기는 책을 덮고도 한동안 생각에 머무르게 했다. 초등학교 6학년 장난꾸러기 남학생들로부터 "재밌었어요. 근데 너무 슬퍼요"라는 최고의 찬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이야기는 쉽지만 깊다.
몇 주 전, 아이들과 함께 읽은 아티클에서 '혐오를 없애기 위해서는 누군가 혐오에 시달릴 때,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이 많으면 된다'는 문장을 읽었다. '굳어질 대로 굳어지고, 커질 대로 커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이렇게 왜소하다고?' 의심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덮으며 믿고 싶어졌다. 서로를 돌보는 일, 함께 살아가는 일. 어쩌면 이것이 인생의 긴긴밤을 건너는 나와 우리를 지켜내는, 가장 작지만 가장 강력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