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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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정말로 꽃보다 아름답던 나이였다. 스무 살의 그 시절은. 하지만 낭만을 느낄 사이도 없이 강의실 앞에 서성이던 사복 형사와, 건물 옥상에서 피를 뿌리며 절규하는 선배를 목도 하며 시작한 대학 생활은 늘 당위와 자유 사이에서 갈지 자를 걷도록 만들었다. '낭만'과 '사랑'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런 감정들은 언제나 죄책감이라는 이면의 감정을 배제하지 못한 채 주춤거리곤 했다. '운동하기 위해 연애 따위는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이 정당화되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적 부담만이 아니다. 특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난 이들만이 가진 시절의 압박으로 허겁지겁 그 시간을 살아내기에 급급하며 나이 들어가지 않았는가 말이다. 매일을 여는 클래식 라디오 방송에는 여러 사람들의 사연이 등장한다. 하루는 어느 엄마가 자신의 아들이 중간고사를 보는 날이라며 수학 시험을 잘 봤으면 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외계의 언어 같던 X니, Y니 혹은 사인, 코사인, 탄젠트 등의 미로를 학창 시절 내내 출구를 알려주는 실 타래 하나 없이 헤맸으며, 내 아이들이 그 미로에서 쉽게 빠져나오도록 함께 노심초사하며 지내온 시절이 얼마였던가. 그 한 문제가 운명의 당락을 가를 수 있는 제도 속에서 살아왔던 시절에, 그 낯선 숫자와 문자들 사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어디 수학 뿐일까, 영어라고 다를까, 아니 학창 시절의 모든 순간이,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던 시간의 모든 미션이 늘 그 순간에는 절박했다. 문득 그 엄마의 소망이 하잘 것 없음이 아니라, 이제 내가 그런 것들이 더는 중요하지 않은 시절이 되었음에 안도가 느껴졌다.
돌아보면 그랬다. 10대, 20대의 푸릇푸릇 하던 시절도, 서른, 마흔의 창창 하던 시절도 늘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미션에 허덕이며 그 시절을 허겁지겁 보냈었던 것 같다. 상대적으로 젊었던 50대에는 미리 늙었다며 한탄하며 주저앉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나는 이제 환갑을 넘기고 늙어서 안타까움이 아니라, 이제 더는 지나온 시절의 내가 겪었던 그 갈망과 선택의 기로에서 한결 자유로운 나이가 되었음에 평안함과 감사함을 느낀다. 두 아이를 껴안고 세상의 길 바닥에 나앉은 막막함에서 풀려났음에 안도감을 느낀다. 그리고 아직은 내가 나의 두 팔과 두 다리로 나의 삶을 책임질 만큼 젊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리하여 나와 같이 늙어가는 동료들에게 늙음의 한계에 절망하는 대신, 우리가 그래도 이만큼 살아냈음에 서로 대견해하고, 아직 젊은 이 시절을 만끽해보자는 취지로 이 글을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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