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서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

함께 늙어가는 동료들에게 '한계'를 말하는 대신, 서로 대견해 하길 바라면서

등록 2026.05.07 17:31수정 2026.05.0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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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더니, 엊그제 환갑인가 싶었는데 벌써 예순 두 살이 되었다. 지금은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격증을 딴다는데도 막상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요양원. 정부는 우리나라에 체류하고자 하는 외국인들에게 그 문을 열었다. 최근 요양원에 28살 베트남 여성이 신입 요양 보호사로 등장했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의 요양보호사들은 50여 명. 50대에서 60대가 대부분이다. 우리 층의 팀장이 66세 돼지 띠로 요양원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축이라 한다. 40대 후반의 주부를 어리다고 해왔는데, 28살이라니 '아기' 같았다. 이 신입 요양 보호사는 한국에서 대학을 나왔지만 막상 취업이 어렵자, 체류 비자를 받기 위해 이곳을 선택했다며 능숙한 한국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어느 날 어르신들의 식사를 마치고 식기들을 담은 카트를 끌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나와 나보다 한 살 어린 요양보호사와 베트남 청년 신입 이렇게 세 사람이.

"부럽다. 20대 한참 좋을 때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나보다 한 살 어린 선생님이 감탄인지, 한탄인지 모를 한 마디를 던진다.

"그래? 나는 내가 늙어서 좋은데?"

"왜요? 늙은 게 뭐가 좋아요?"


"생각해봐, 28살 때를. 좋기만 했을까. 그때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선택과 고뇌의 시간을 지내왔는지, 그 시간을 또 다시 되풀이 하고 싶어?"

그러자 그 선생님도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 같은 나이가 된 그 시간의 여정이 그 역시 헤아려지는가 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그 찰나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지만, 긴 겨울을 이겨내고 꽃을 피워내는 그 꽃 나무의 사정을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젊음을 쉽게 부러워하고 찬탄 하지만 그 젊음이 가진 불투명함과 불안함은 간과한다. 나 역시 가끔 나의 스무 살 시절을 돌아보며 그 눈부시게 젊었던 시절을 만끽하지 못했음을 스스로 안타까워 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청춘의 아름다움을 미처 느낄 여유조차 없이 미지의 길만이 뻗어있는 그 아득함을 얼마나 두려워 했던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david_bxl on Unsplash

돌아보면 정말로 꽃보다 아름답던 나이였다. 스무 살의 그 시절은. 하지만 낭만을 느낄 사이도 없이 강의실 앞에 서성이던 사복 형사와, 건물 옥상에서 피를 뿌리며 절규하는 선배를 목도 하며 시작한 대학 생활은 늘 당위와 자유 사이에서 갈지 자를 걷도록 만들었다. '낭만'과 '사랑'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런 감정들은 언제나 죄책감이라는 이면의 감정을 배제하지 못한 채 주춤거리곤 했다. '운동하기 위해 연애 따위는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이 정당화되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적 부담만이 아니다. 특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난 이들만이 가진 시절의 압박으로 허겁지겁 그 시간을 살아내기에 급급하며 나이 들어가지 않았는가 말이다. 매일을 여는 클래식 라디오 방송에는 여러 사람들의 사연이 등장한다. 하루는 어느 엄마가 자신의 아들이 중간고사를 보는 날이라며 수학 시험을 잘 봤으면 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외계의 언어 같던 X니, Y니 혹은 사인, 코사인, 탄젠트 등의 미로를 학창 시절 내내 출구를 알려주는 실 타래 하나 없이 헤맸으며, 내 아이들이 그 미로에서 쉽게 빠져나오도록 함께 노심초사하며 지내온 시절이 얼마였던가. 그 한 문제가 운명의 당락을 가를 수 있는 제도 속에서 살아왔던 시절에, 그 낯선 숫자와 문자들 사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어디 수학 뿐일까, 영어라고 다를까, 아니 학창 시절의 모든 순간이,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던 시간의 모든 미션이 늘 그 순간에는 절박했다. 문득 그 엄마의 소망이 하잘 것 없음이 아니라, 이제 내가 그런 것들이 더는 중요하지 않은 시절이 되었음에 안도가 느껴졌다.

돌아보면 그랬다. 10대, 20대의 푸릇푸릇 하던 시절도, 서른, 마흔의 창창 하던 시절도 늘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미션에 허덕이며 그 시절을 허겁지겁 보냈었던 것 같다. 상대적으로 젊었던 50대에는 미리 늙었다며 한탄하며 주저앉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나는 이제 환갑을 넘기고 늙어서 안타까움이 아니라, 이제 더는 지나온 시절의 내가 겪었던 그 갈망과 선택의 기로에서 한결 자유로운 나이가 되었음에 평안함과 감사함을 느낀다. 두 아이를 껴안고 세상의 길 바닥에 나앉은 막막함에서 풀려났음에 안도감을 느낀다. 그리고 아직은 내가 나의 두 팔과 두 다리로 나의 삶을 책임질 만큼 젊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리하여 나와 같이 늙어가는 동료들에게 늙음의 한계에 절망하는 대신, 우리가 그래도 이만큼 살아냈음에 서로 대견해하고, 아직 젊은 이 시절을 만끽해보자는 취지로 이 글을 시작해 본다.
#나이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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