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25만 점이 아직도 외국에... '반짝 관심'으론 안 된다

[주장] 국외소재문화유산 환수, 오랜 시간 소요되는 고도의 협상 필요해... 지속적 관심과 지원 있어야

등록 2026.05.04 12:03수정 2026.05.04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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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 화첩 2005년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기증 반환한 겸재 정선 화첩
▲겸재 정선 화첩 2005년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기증 반환한 겸재 정선 화첩 국가유산청제공

해외 박물관에서 뜻하지 않게 우리 문화유산을 만나면 여러 생각이 든다. 뿌듯함과 함께 어떤 연유로 이곳까지 왔는지 궁금함이 우선이다. 우리나라 밖에 있는 국외소재문화유산은 얼마나 될까.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2026년 1월 기준 29개국 25만 6190점에 달한다. 파악한 것만 그렇다. 개인 소장 유물은 공개하지 않는 한 알 수 없다. 약탈 또는 불법 반출 유물 또한 음지에 있다. 국외소재문화유산은 공개된 수치를 훨씬 웃돌게 분명하다.

우리 문화유산이 해외로 흩어진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임진왜란, 병인·신미양요 등 개화기 침탈, 일제강점기, 6.25 전쟁, 미군정 등 외부 요인에 의한 것이다. 약탈이나 불법 반출이 주를 이룬다. 둘째는 외교관이나 성직자, 민간인 신분으로 왔다가 선물 또는 기증, 정상적 경로를 통한 수집 등이다. 이 경우는 무조건 돌려달라고 강제하기 어렵다. 국외소재문화유산은 예상하듯 일본이 11만 611점(43.1%)으로 가장 많다. 이어 미국 6만 8961점(26.9%), 독일 1만 6082점(6.2%), 중국 1만 4226점(5.5%) 순이다. 전쟁, 식민지 지배,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와 접촉이 잦은 나라들이다.

국외소재문화유산은 양가적이다. 하나는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유산으로써 긍정적 측면, 다른 하나는 약탈 역사를 환기하는 부정적 측면이다. 국외소재문화유산을 일괄적으로 불법 반출, 약탈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소장 경로에 따라 불법과 합법으로 갈린다. 국외소재문화유산은 꾸준히 늘고 있다. 2013년 15만 점에서 2026년 현재 70% 늘었다. 2012년 재단 설립 이후 꾸준히 실태를 파악하고 관련 정보를 축적한 결과다. 그러나 환수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지금까지 누적 환수율은 약 5%에 그친다. 의지가 없거나 역량 부족 때문이 아니다. 빈약한 예산과 반짝 관심 탓이다. 언론과 정치권은 환수 때만 환호할 뿐 근본적 고민은 소극적이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일본사무소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일본사무소는 가장 많은 유산(43.1%)에도 불구하고 상주 인력은 2명 뿐이다. 지난달 18일 일본사무소에서 업무 보고를 청취 중인 허민 국가유산청장과 국가유산청 관계자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일본사무소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일본사무소는 가장 많은 유산(43.1%)에도 불구하고 상주 인력은 2명 뿐이다. 지난달 18일 일본사무소에서 업무 보고를 청취 중인 허민 국가유산청장과 국가유산청 관계자들. 국가유산청 제공

부족한 예산 때문에 해외사무소는 도쿄와 워싱턴, 파리 등 세 곳만 있다. 그나마 상주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국외소재문화유산이 가장 많은 일본사무소 직원은 달랑 2명이다. 국정감사 때마다 낮은 환수율이 도마 위에 오르는 유럽사무소 역시 2명뿐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가유산청 국정감사에서는 저조한 환수율을 묻는 질타가 쏟아졌다. 문화유산 환수는 실태 파악, 유출 경로 조사, 외교적 교섭 등 오랜 시간과 고도의 협상이 필요하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환수율만 문제 삼는다면 근시안적이다.

환수는 외교 협상, 강제 환수, 자발적 기증, 경매 구매를 통해 이뤄진다. 성공적인 환수 사례는 외규장각 의궤, 조선 왕실 의궤, 북관대첩비, 겸재 정선 화첩, 김시민 선무공신 교서, 호조 태환권 인쇄 원판, 대한제국 국새와 조선 왕실 인장, 문정왕후 어보와 현종 어보, 대동여지도, 불화 시왕도, 경복궁 선원전 편액, 관월당 등이다. 이들 환수는 외교 협상과 국제 공조수사, 자발적 기증, 경매 시장에서 구매가 혼재돼 있다. 한마디로 문화유산 환수는 고도의 퍼즐 맞추기다.

외규장각 의궤 환수는 외교적 노력에 의한 결과물이다. 병인양요(1886년) 당시 프랑스 군대가 약탈한 외규장각 의궤가 수면에 떠오른 건 1975년 재불 학자 박병선 박사에 의해서였다. 이후 1991년 환수 요청, 1993년 정상회담 의제, 2011년 환수로 마무리됐다. 145년 만의 환수였으며, 우리 정부가 공식 요청한 뒤로도 20년이나 걸렸다.

대한제국 국새와 조선 왕실 인장, 호조 태환권 인쇄 원판, 효명세자빈 죽책은 한미 공조수사에 의한 강제 환수였다. 2014년 한국을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 정부에 국새와 인장을 반환하고 신속한 문화재 수사를 위한 양해각서도 체결했다. 조선시대 교통로와 군사시설 정보를 담은 희귀본 '대동여지도'는 구매 환수 사례다.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2022년 일본 고서점에 유물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현지 실사를 거쳐 복권 기금으로 구매했다. 합법적인 유물을 시장에서 구매하는 건 분쟁 없이 환수하는 가장 현실적 방식이다.


관월당 빈터 조선 왕실 사당으로 추정하는 관월당은 100년 넘게 고토쿠인에 있었다. 지난해 한국으로 반환 이후 빈 공간으로 남은 관월당 터를 배경으로 사토 다카오 주지와 허민 국가유산청장
▲관월당 빈터 조선 왕실 사당으로 추정하는 관월당은 100년 넘게 고토쿠인에 있었다. 지난해 한국으로 반환 이후 빈 공간으로 남은 관월당 터를 배경으로 사토 다카오 주지와 허민 국가유산청장 국가유산청 제공

자발적 기증은 외교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앞서 소개한 관월당은 좋은 예다. 고토쿠인(高德院) 사토 다카오 주지는 자비를 들여 건물을 반환하고 나아가 학술 기금(1억 엔)까지 기부했다. 한일 신뢰 구축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2005년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돌아온 '겸제 정선 화첩'도 마찬가지다. 오틸리엔 수도원 장로회는 만장일치로 반환(영구 임대 형식)을 결정했다. 슈뢰더 원장과 부산 왜관 베네딕트 수도원 선지훈 신부의 노력이 컸다. 당시 국제 경매 시장에서 50억 원을 호가했으나 '선한 기증'은 양국 우호 증진에 도움이 됐다. 우리 정부는 돌아온 화첩을 보물로 지정함으로써 화답했다.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 특별전 2022년 환수 문화재 40점을 공개한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 특별전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 특별전 2022년 환수 문화재 40점을 공개한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 특별전 국가유산청 제공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2022년 7월 개최한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은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환수 유산 40점을 공개한 특별전에 다녀간 관람객들은 국외유산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애틋함을 표했다. 환수 정책에 동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해졌다. 국가유산 환수를 반짝 이벤트로만 소비하는 언론과 정치권의 인식 부족 때문이다. 정부와 언론, 정치권의 대응이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임병식씨는 국가유산청 정책자문위원(순천향대 초빙교수)입니다.
#국외소재유산 #환수율 #겸재화첩 #오틸리엔수도원 #고려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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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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